원숭이 발 /제이콥 단편소설 감상하기

2008. 2. 26. 11:17마음의 양식 독서

원숭이 발

윌리엄 위마르크 제이콥

william wymark jacobs / English(영국) / 1863~ 1943

비가 내리는 스산한 저녁이었다. 하지만 창문의 블라인드를 내리고 벽난로에 불을 한껏 피워놓은 집안의 작은 거실은 아늑했다. 이글대는 불빛이 체스를 두고 있는 아버지와 아들을 감싸고 있었다.

갑자기 게임을 역전시킬 좋은 수가 생각났다고 여긴 아버지가 왕의 위치를 용감하게 옮겨 놓았다. 벽난로 옆에서 뜨개질을 하고 있던 백발의 아내가 그 쓸떼없고 위험한 수를 보고 참견을 하자,

“저 바람소리 좀 들어 봐라.”

자신의 치명적인 실수를 뒤늦게 깨달은 화이트 씨가 그것을 자식이 눈치채지 못하게 하려고 딴소리를 했다. “듣고 있어요.아버지.”

아버지의 의도를 눈치챈 듯 아들 허버트가 체스판의 상황을 샅샅이 분석한 뒤 미소를 머금더니 이내 손을 쭉 뻗으며 소리쳤다. “장군이요!”

아무래도 그 친구가 오늘밤에 도착하기는 힘들 것 같구나.“

어디다 두어야 할지 난처해진 아버지는 여전히 엉뚱한 쪽으로 아들의 관심을 돌리려 했다. “체스 두는 사람 어디 가셨나?”

허버트가 천연덕스레 대답했다. “이건 최악이군, 그래.”

화이트 씨가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머리를 감싸쥐며 분통을 터트렸다.

“빌어먹을 비는 억수같이 쏟아지고, 길은 온통 진창이야. 이건 정말 최악의 사태야. 집이 떠내려갈 판인데 도대체 사람들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 수가 없군 그래. 신경도 쓰지 않고 있잖아.”

“그만 하세요,여보.” 그의 아내가 남편을 달래주었다.

“아마 이번에는 당신이 이길 수 있을 거예요.”

아내와 아들 사이에 오가는 회심의 미소를 목격하고 아버지가 따가운 눈총을 보내며 헛기침을 몇 번 했다. 아버지는 무슨 말인가를 꺼내려다 멈칫하고는 회색 턱수염을 아래로 쓸어내리며 쑥스러운 미소만 지어 보이고 있다가 반색을 하며 일어났다.

“이제야 도착했군.”

무거운 발자국 소리에 이어 요란하게 문 두드리는 소리가 들리자 아버지는 때 맞춘 손님의 방문에 반가운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서둘러서 문으로 달려간 아버지가 손님을 맞이하는 소리가 들렸다.


손님이 날씨에 대해서 몇 마디 투덜거리자 그 소리를 듣고 부인이 쯧쯧 하고 혀를 차며 동정했다. 화이트 씨가 키가 크고 억세 보이는 남자를 데리고 방으로 들어왔다. 작고 반짝이는 두 눈에 혈색이 붉은 남자였다. “상사 모리스입니다.”

모리스는 가족들과 악수를 나눈 다음 자신에게 주어진 난로가 의자에 앉더니 화이트 씨가 위스키와 큰 잔을 꺼내고 불 위에 주전자를 올려놓는 모습을 흡족한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세 번째 잔을 비우자 모리스는 눈을 더욱 반짝거리며 본격적으로 이야기를 꺼내기 시작했다. 주위에 둘러앉은 가족은 먼 곳에서 온 자기 방문객의 말에 큰 호기심을 느꼈다.

모리스는 널찍한 어깨를 벌리며 자기가 경험한 야생 세계, 용감무쌍한 행동, 전쟁, 전염병, 특이한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들을 하나하나 풀어 나가기 시작했다.

“이십일 년이란 긴 세월이었지.”

화이트 씨가 아내와 아들에게 고개를 끄덕여 보이며 한마디 거들었다.

“우리가 헤어질 무렵에는 도매상에서 일하는 꺽다리 젊은이였는데 말이야.지금 이 친구를 한번 보라구.”

“그 동안 많이 다치신 것 같지는 않아 보이는군요.”

화이트 씨의 아내가 공손하게 말했다.

“나도 인도에 한 번 가보고 싶어.” 화이트 씨가 말했다.

“그저 한 번 둘러봤으면 해서 말이야.”

그 상사가 고개를 저으며 말하더니 빈 잔을 내려놓고 나서 가벼이 한숨을 쉰 뒤 다시 고개를 저어 보였다.

“인도에 가면 오래된 사원을 둘러볼 수 있고 고행자나 마술사를 만날 수도 있지 않은가.” 화이트 씨가 말을 이었다.

“그건 그렇고 며칠 전 나에게 말하다가 만 원숭이 발인가 뭔가 하는 것에 대해서 다시 듣고 싶네, 모리스.‘

“아무것도 아니야.” 상사는 요청이 끝나기가 무섭게 잘라 말했다.

“들을 가치도 없는 쓰레기지.” “원숭이 발이라구요?”

화이트 씨의 아내가 호기심에 차서 끼어 들었다.

“예, 굳이 말하자면 그저 요술 비슷한 어떤 건데요.”

상사가 무심코 말해버렸다.

둘러앉은 가족 모두 모리스 쪽으로 귀를 기울였다. 방문객은 아무 생각 없이 빈 잔을 자신의 입술로 가져갔다가 다시 식탁 위에 올려놓았다. 화이트 씨가 뒤적거리면서 말했다.

"겉으로 보기엔 미이라처럼 말라붙은 그저 작은 발에 불과할 뿐이죠.“

그는 자기의 주머니에서 무언가 꺼내어서 내밀어 보였다. 화이트 씨의 아내는 눈살을 찌푸리면서 뒤로 물러났지만 아들이 그것을 받아서 살펴보기 시작했다. “여기에 뭐 특별한 것이라도 있는 건가요?”

“이 발에는 한 늙은 수행자가 불어놓은 주문의 힘이 들어있죠.”

상사가 말했다. “인도에 대단히 성스러운 수행자 한 사람이 교만에 가득찬 우리가 잘 믿으려 하지 않 는 운명이라는 것이 분명히 존재한다는 사실을 보여주기 위해서 이것을 만들었답니다.

그 운명을 방해할 경우에는 커다란 슬픔을 맛볼 수밖에 없음을 깨닫게 해 주고 싶었던 것이지요. 이 원숭이 발은 이것을 소유한 세 번째 사람에게까지만 효과를 나타내게 되어 있습니다. 한 사람이 세 가지씩의 소원을 빌 수 있고 그 소원은 반드시 성취됩니다.”

그가 매우 진지하게 말했기 때문에 가족들이 가벼운 웃음을 터트렸다. 그러자 그가 못마땅해했다.

“그런가? 그럼 자네도 세 가지 소원을 빌어 보았나?”

화이트씨가 교묘하게 한마디 던졌다.

상사는 자신을 어린애 취급하는 화이트 씨에게 기분이 상한 듯 나지막하게 대답했다. “난 이미 세 가지 다 빌었지.”

얼룩 투성이인 그의 얼굴이 하얗게 변했다.

“그럼 정말로 그 세 가지 소원이 이루어졌나요?”

화이트 씨 부인이 끼어 들었다. “물론이죠.”

상사가 말하고는 자신의 튼튼한 이빨을 유리잔에 부딪쳤다.

“소원을 빈 다른 사람도 있나요?” 부인이 계속 물고 늘어졌다.

“처음 이것을 소유한 한 남자가 세 가지 소원을 이루었지요.”

상사가 말을 이었다.

“그 남자가 빈 두 가지 소원이 무엇이었는지는 잘 모릅니다만 그의 마지막 소원은 죽음이었죠. 그리고 제가 이 발의 새 주인이 된 겁니다.”

상사의 어조는 매우 무거웠으며 모두가 말을 잊은 채 침묵이 흘렀다.

“만일 자네가 세 가지 소원을 이미 이루었다면 이제 자네에게는 이게 필요 없겠군, 모리스.” 드디어 화이트 씨가 말문을 열었다.

“왜 아직도 그것을 가지고 있지?” 상사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상상에 맡기겠네. 사실 이 물건을 팔아 버릴 생각도 했었지. 하지만 정말 팔고 싶지는 않아. 이미 이 요물 때문에 불행한 일들이 많이 생겼어. 게다가 내 말을 믿고 이것을 사려는 사람도 없을 테지. 사람들은 그저 이상한 이야기로 여길 거야. 생각해보게. 이 물건에 관심 있는 사람들은 모두 내 말이 진실인지를 먼저 시험해 본 다음에 돈을 내려고 하지 않겠나.”

“만일 자네가 세 가지 소원을 더 빌 수 있다면 어떻게 할 생각인가?”

화이트 씨가 눈을 번득이며 물었다. “모르겠네.”

상사가 답했다. “모르겠어.”

그는 그 발을 집어들고 엄지와 검지손가락 사이에 넣어서 흔들어 보더니 갑작스레 불이 있는 쪽으로 던져 버렸다. 그러자 화이트씨가 가벼운 비명 소리를 지르며 잽사게 몸을 나려서 그 발을 낚아챘다.

“태워버리게!” 상사가 엄숙하게 타일렀다.

“모리스, 자네가 이것을 원치 않는다면 나에게 주면 되지 않는가.”

“자네에게 이걸 줄 수는 없네.” 그 친구가 완고하게 말했다.

“내가 분명 그것을 불 위에 던졌다는 사실을 잊지 말게. 만일 자네가 그것을 가지고 있다가 어떤 일이 일어나도 나를 탓하지는 말게. 자네가 현명한 사람이라면 다시 그것을 불 위에 던져 버리는 게 좋을 거야.”

화이트 씨는 고개를 저으며 자신의 새로운 보물을 자세히 살펴보았다. “이것을 어떻게 쓰면 되지?”

“오른손에 그것을 쥐고 큰 소리로 소원을 빌면 되네. 하지만 내가 한 경고를 절대 잊지 말게.” “꼭 아라비안 나이트 같군요.”

화이트 씨의 부인이 일어나서 저녁 식사 준비를 하러 가면서 말했다.

“내 팔이 네 개가 되도록 한번 빌어보지 그래요.”

남편이 그 말을 듣고 주머니에서 그 요물을 꺼내가 모두 폭소를 터트렸다. 하지만 상사는 다급해진 얼굴을 하며 그의 팔을 잡았다.

상사가 거친 목소리로 말했다.

“자네에게 꼭 필요한 경우라면, 현명한 소원을 빌기 바라네.”

화이트 씨가 그것을 주머니에 다시 넣고 저녁 식사를 위해 의자를 제자리로 옮기고 친구를 식탁으로 안내했다. 저녁 식사 도중에는 얼마 동안 아무도 그 요물에 대해 언급하지 않았다. 세 명은 자리에 앉아서 그 군인이 인도에서 겪은 경험담을 들으며 완전히 도취되었다.

손님은 마지막 기차 시간에 딱 맞추어서 일어났다. 배웅을 하고 문을 닫으며 허버트가 말했다.

“군대 생활에 대한 얘기의 반은 거짓말이고 나머지 반은 허풍이라고 하던데 그 상사님의 말을 듣고 나니 실감이 나네요. 보아 하니 그 원숭이 발에 대한 이야기도 별로 다를 게 없어 보이는 걸요, 이 물건으로 뭔가를 얻을 수 있다고 크게 기대하지 않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여보, 모리스에게 그 물건의 대가로 뭘 주었나요?”

아내가 남편에게 가까이 다가가서 물었다.

“그냥 몇 푼 쥐어 주었지.” 얼굴이 좀 붉어진 남편이 말했다.

“안 받으려고 하는 걸 내가 억지로 쥐어 주었지. 그 친구가 나한테 그 요물을 버리라고 다시 한번 충고하더군.”

“그의 말이 사실인가봐요.” 허버트가 흥분한 척하며 말했다.

“우리는 부자가 되고 유명해지고 행복해지겠네요. 우선 황제가 되게 해달라고 빌어보세요. 어머니에게 꼼짝 못하고 지내시지 않게 말이죠.”

의자 덮개를 들고 화이트 씨 부인이 쫓아가자 허버트는 식탁을 따라 도망을 쳤다. 어머니와 아들의 술래잡기가 진행되는 동안 화이트씨는 자신의 주머니에서 그 말을 꺼내어 의심스럽게 쳐다보았다.

“사실 내가 무슨 소원을 빌어야 할지 모르겠단 말이야.”

그가 천천히 말했다.

“마치 내가 원하는 모든 것을 얻기라도 한 기분이야.”

“어머니는 이 집안이나 깨끗이 치워 달라고 빌면 좋으시겠지요? 그렇죠?” 허버트는 두 손을 머리 위로 들고 쫓아오는 어머니에게 항복하며 말했다. “한 이백 파운드 정도 달라고 빌면 어떨까요?”

애들처럼 너무 쉽게 믿어버리는 자신에게 수줍은 미소를 지어보이며 화이트 씨는 그 부적을 쳐들었다. 사뭇 엄숙한 척하던 아들은 어머니의 윙크를 받은 후 피아노로 가서 당선자 발표 직전에 쓰는 긴장감 넘치는 효과 음악을 연주했다. “나에게 이백 파운드를 달라.”

화이트씨가 한 마디 한 마디 명확하게 외쳤다.

아들이 그 말을 이어 받아 우렁차게 팡파레를 연주하다가 아버지의 몸서리치는 비명을 듣고 멈추었다. 아내와 아들이 재빨리 그에게로 뛰어들었다. “이게 움직였어!”

기겁을 하고 원숭이의 발을 바닥에 던져버린 화이트 씨가 혐오스러운 눈빛을 하고 외쳤다.

“내가 소원을 비니까 이게 내 손안에서 뱀처럼 꿈틀거렸단 말이야.”

“그런데 돈은 안 보이는데요.”

허버트가 그 말을 집어 식탁에 내려 놓으면서 말했다.

“제가 장담하는데 돈은 절대로 나타나지 않을 겁니다.”

“분명히 당신의 상상이었을 거예요.”

아내는 남편이 걱정이 되어 말했다. 그는 고개를 저었다,

“그래, 괜찮아. 하여튼 우리가 피해 본 건 아무것도 없으니까. 하지만 그것은 정말로 놀라운 일이었어.”

그들은 다시 벽난로가에 모여 앉았다. 바깥의 바람은 전에 없이 강하게 불고 있었다. 화이트 씨는 위층까지 들릴 정도로 크게 문을 두드리는 바람 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초조함을 감추지 못했다.

밤이 되어 노부부가 위층으로 올라갈 때가지 이상하고 침울한 침묵이 세 사람을 내리 눌렀다.

“침대 위에 큰 돈자루가 있을지도 몰라요, 아버지.”

허버트가 밤 인사를 드리며 한 말이다.

“그리고 옷장 속에서 귀신이 부정한 수단으로 얻은 돈을 숨기는 걸 보고 있을지도 몰라요. 헤헤헤.”

허버트는 거실의 어둠 속에 혼자 앉아서 죽어가는 불에 눈을 고정시키고 있다가 그 불 속에 있는 얼굴들을 보았다. 마지막 얼굴은 너무나 무섭고 마치 원숭이처럼 생겨서 허버트를 놀라세 했다. 그 얼굴은 점점 더 선명해졌다. 허버트는 어색하고 불안한 웃음을 터트리며 식탁 위에 있는 물컵에 담긴 물을 구 불 위에 부어 버렸다. 그는 원숭이 발을 집어서 다시 한번 보고는 두려움에 몸을 조금 흠칫하며 손을 옷에 닦고 침실로 올라갔다.


다음날 아침 식탁에는 한겨울의 차가운 공기를 가로질러 햇볕이 내리쬐고 있었다. 식탁에 앉은 허버트는 어젯밤 자신이 두려움을 느꼈던 것을 떠올리고는 멋쩍게 웃었다. 어제와는 달리 거실이 깨끗하게 정돈되어 있었다. 선행을 베푸는 알라딘의 요술 램프가 아니라는 것이 밝혀진 주름지고 더러운 그 작은 발은 아무렇게나 찬장 위에 던져져 있었다.

“아마 늙은 군인들은 다 그 모양인가 보죠.”

화이트 씨의 부인이 말했다.

“우리가 그런 터무니없는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지! 요새 세상에 소원이 이루어지는 뭐라구요? 아니 설사 소원이 이루어진다고 해도 어떻게 이백 파운드가 당신에게 피해를 줄 수 있단 말이죠? 말도 안 된다구요.” “갑자기 돈벼락이 아버지 머리 위로 떨어질지도 모르죠.”

허버트가 장난스럽게 말했다.

“모릭스 말이 그 일은 아주 자연스럽게 일어난다고 했어. 그러니 실제로 소원인 성취되었는데도 우리가 그것을 우연의 일치라고 생각할 수도 있단 말이야.”

“예, 그럼 제가 돌아오기 전까지 그 돈에 손대지 마세요.”

허버트가 식탁에서 일어서면서 말했다.

“그 물건이 아버지를 자린고비로 바꾸어 버릴까봐 걱정되는 걸요.”

화이트 씨의 부인이 웃으면서 문까지 아들을 배웅 나갔다. 어머니는 아들이 큰길로 나간 것을 본 후 남편의 순진함에 어느 정도는 유쾌한 기분으로 하루를 보냈다.

오후에는 갑자기 우체부가 문을 두드리자, 혹시 그 소원이 이루어진 것인가 하고 문으로 달려나갔다가 우체부가 전해준 재봉사의 지급 청구서를 받아들고는 역시나 하며 퇴역 상사의 술버릇을 다시 한번 입에 올렸다. “하버트가 퇴근 후에는 아마 더 재미있는 말을 할 거예요.”

“믿기 힘들다는 건 알아.” 화이트 씨가 맥주를 들이켜며 말했다.

“하지만 그게 내 손안에서 움직인 것은 분명해, 맹세코 사실이야.”

“그랬다고 당신이 생각한 거겠죠.” 머리가 흰 부인이 달래듯 말했다.

“생각한 게 아니라 그게 움직였다니깐, 난 아무 생각 없었는데 그게 정말 움직였단 말이야…… 어쨌건 무슨 상관이야.”

아내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해가 지기 시작하는데 바깥문 밖에 있는 한 남자의 의심스러운 행동이 그녀의 눈에 들어온 것이다. 그 남자는 무언가 결단을 내리기 힘든 듯 망설이면서 집 주위를 한참 동안 왔다갔다 하고 있었다. 머리 속에 아직도 남아 있는 이백 파운드를 떠올리며 그녀는 낯선 사람의 외모를 주의 깊게 관찰했다. 그 사람은 고급스러운 옷에 광택이 나는 새 비단 모자를 쓰고 있었다. 문 쪽으로 다가왔다가 다시 물러서기를 서너 번 반복하더니 드디어 그는 바깥문을 제치고 들어와 정원을 가로질러 집을 향해 걸어오기 시작했다. 그것을 보자마자 부인은 손을 뒤로 해서 잽싸게 끈을 풀어 앞치마를 벗은 후 의자의 방석 밑에 팽개쳐 버렸다.


그녀는 어딘지 불편해하는 낯선 방문객을 거실로 안내했다. 그는 들키지 않게 조심스레 부인을 힐끗 쳐다보았다. 부인은 정돈되지 않은 거실이며 잔디를 깎을 때나 입는 옷을 입고 있는 남편의 옷차림에 대해 손님에게 변명을 늘어놓았다. 그리고 그녀는 자신이 여자이기 때문에 쉽게 방문객이 용건을 꺼낼 수 있으리라 기대하며 참을성 있게 기다렸다. 방문객은 이상하게도 오래도록 침묵했다.

“저는, 저어 그러니까, 그게 말이죠.”

드디어 그가 말문을 열더니 몸을 구부려 바지 주머니에서 한 조각의 천을 꺼내었다.

“저는 모앤 메긴스 회사에서 왔습니다.” “무슨 일이 생겼나요?”

아내는 숨이 넘어갈 듯했다.

“허버트에게 무슨 일이 생긴 건가요? 무슨 문제죠? 뭐예요?”

남편이 끼어들었다.

“여보, 여보, 진정하라고.” 그가 서둘러 아내를 진정시켰다. “여기에 앉아. 알지도 못하면서 경솔하게 앞서가면 안되지.”

“당신이 무슨 나쁜 소식을 전하러 온 것은 아닐 것이라고 여겨집니다. 그럴 일이 뭐 있겠습니까.”

아버지도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손님을 쳐다보았다.

“죄송합니다만......” 그 방문객이 입을 열었다.

“우리 애가 다쳤나요?” 어머니가 성급히 대답을 요구했다.

손님이 고개를 끄덕이며 죄스러운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심각하게 다쳤습니다. 하지만 지금 그에게는 아무런 고통도 없어졌습니다.” “오, 감사합니다! 하느님, 우리 아들을 도와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감사.....”

그녀는 손뼉을 치면서 좋아하다가 손님의 마지막 말에 담긴 불길 한 의미를 생각해내고는 갑자기 말을 멈추었다. 그녀는 고개를 돌리고 애써 피하려는 손님의 모습에서 그 의미라는 것이 얼마나 끔찍한 것인지를 알아챘다. 숨을 멈춘 채 아직까지도 무슨 영문이지 모르고 있는 남편쪽으로 몸을 돌려 떨리는 늙은 손을 남편의 손 위에 올려놓았다. 긴 침묵이 계속되었다. “기계에 걸렸습니다.”

방문객은 낮은 목소리로 자세히 상황을 설명했다.

“기계에 걸렸다구요?”

화이트 씨가 멍해져서 말하더니 창문 밖을 바라보았다. 마치 사십 년 전 아내에게 구애하던 때처럼 그녀의 손을 꼭 움켜쥐었다.

“허버트는 우리에게 남은 유일한 삶의 희망이었습니다.”

천천히 그 방문객 쪽으로 고개를 돌리면서 화이트 씨가 중얼거렸다. “믿을 수가 없어요.” 손님은 헛기침을 몇 번 하고는 일어나서 천천히 창문쪽으로 걸어갔다.

“저희 회사를 대표해서 귀댁에 일어난 큰 불행에 대해 우리의 진심 어린 위로를 전하기 위해 왔습니다.” 그가 말을 이었다.

“제가 단지 고용인으로서 지시 받은 대로 하기 위해 온 것뿐임을 이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아무런 대답도 없었다. 얼굴이 하얗게 질린 노부인은 남편만 바라보면서 아무 말도 못하고 있었다. 숨소리조차 들리지 않았다. 남편은 마치 옛친구가 놓고 간 요물이 처음으로 일을 저질렀다고 확신하기라도 하는 듯한 표정이었다.

“모앤 메긴 회사는 이 일에 대해 전혀 책임이 없음을 밝혀 드립니다,”

손님은 계속해서 말했다.

“회사에게는 아무런 의무가 없지만 아드님의 장례식을 고려해서 일정 정도의 위로금을 드리고자 합니다.”

화이트 씨는 갑자기 아내의 손을 떨구었다. 두려움에 떨며 그 방문객을 쳐다보던 그는 마른 입술을 천천히 움직이며 물었다.

“얼마죠?” “이백 파운드입니다.”

아내가 비명을 지르며 정신을 잃었다. 남편은 희미한 미소를 짓더니, 이내 맹인이 된 것처럼 두 손을 앞으로 내민 채 더듬거리다가 바닥에 쓰러졌다.


노부부는 집에서 이 마일쯤 떨어진 곳에 만들어진 거대한 새 공동 묘지에 아들을 묻은 뒤 어두운 침묵에 싸여 집으로 돌아왔다. 그 모든 장례 절차가 너무도 빨리 끝나 버려서 처음엔 그것이 끝난 줄도 모르고 그 다음 절차를 기다리고 서 있다가 식이 끝난 것을 겨우 알아차리고는 집으로 돌아온 것이다. 어떤 것이 남아 있어서 돌아오는 노부부의 발걸음을 조금이라도 가볍게 만들어 주었다면 좋았을 것이다. 그 길이 그들에게는 견딜 수 없을 정도로 힘겨웠다. 며칠이 지나서 기다림은 체념으로 바뀌었다. 그들은 거의 말을 주고받지 않았다. 이제 그들에게는 할 말이 남아 있지 않았고 자신들의 긴 삶이 피곤하기만 했다.

일주일쯤 지난 어느 날이었다. 밤중에 남편이 문득 잠이 깨어 옆자리를 더듬어 보았지만 아내가 옆에 없었다. 방 안은 깜깜하기만 헸고, 한참 후에야 울다가 지친 좀 누그러진 울음소리가 창문을 통해 흘러들어오는 것을 알았다. 남편은 일어나서 밖을 내다보았다. 아내가 거기서 울고 있었던 것이다.

“들어와. 감기 걸리겠구먼.” “우리 아들은 더 추울 거예요.”

아내는 다시 울음을 터트렸다.

잠시 아내의 우는 소리가 멈추자 그의 눈은 쏟아지는 잠을 이기지 못하고 깜박 감겨버렸다. 침대가 따뜻했다. 남편도 너무나 지쳐있었다. 어느새 잠에 빠져서 아무것도 모르고 있는데 갑자기 아내의 격한 비명 소리가 났다. 깜짝 놀란 남편이 순간적으로 잠에서 빠져 나왔다.

“그 발!” 그녀아 험악하게 외쳐댔다.

“그 원숭이 발!” 그녀는 허둥지둥 몸을 비틀거리며 방으로 달려왔다.

“그거 어디 있죠? 지금 당장 꺼내와요. 당신, 벌써 그걸 불에 던지진 않았겠죠?” “거실에 있는 선반 위에 올려놓았잖아.”

이상하게 여긴 남편이 물었다. “그런데 왜 그걸 찾는 거지?”

부인은 우는 것인지 웃는 것인지 정신 나간 사람인 양 남편에게 몸을 잔뜩 구부린 채 뺨에 키스를 퍼부었다.

“이제서야 그 생각이 떠올랐어요.” 아내는 미친 사람처럼 떠들었다.

“내가 왜 진작 이 생각을 하지 못했는지 모르겠어요. 왜 당신도 그 생각을 못한 거죠?”

“도대체 지금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거야?”

“아직 남아 있는 두 가지 소원 말이에요. 우리는 한 가지 소원만 빌었잖아요.”

“아니, 그걸로도 아직 충분하지 않단 말이야?”

남편이 사나운 표정으로 아내에게 쏘아댔다. “충분치 않아요”

그녀는 의기 양양하게 외쳤다.

“한 가지 소원을 더 빌 거예요. 빨리 가서 그것을 가져오세요. 그리고 우리 아들이 다시 살아나게 해달라고 빌어요!”

그 말을 듣고 남편이 침대에서 벌떡 일어났다. 팔다리가 사시나무처럼 떨리고 있었다. 이불을 신경질적으로 걷어젖히면서 남편이 소리쳤다.

“당신 이제 완전히 돌아버렸군!” “가져 오세요, 여보, 제발요.”

아내는 숨이 넘어갈 지경이었다.

“어서 빨리 가져오세요. 그리고 소원을 빌어요. 내 아들, 내 아들!”

남편은 성냥에 불을 붙여 촛불을 켜고 그 때까지도 방은 내리누르고 있는 어둠을 몰아냈다. “여보, 좀 자도록 해 봐.”

불안해진 남편이 아내를 진정시키려고 애썼다.

“당신은 지금 자기가 뭘 하고 있는지도 모르고 있단 말이야.”

“우리의 첫 번째 소원이 분명히 이루어졌잖아요. 이제 당신의 말을 모두 믿겠어요.” 늙은 아내가 열을 내며 남편을 설득시키려 했다.

“두번째 소원도 반드시 이루어질 거예요.”

“그냥 우연의 일치일 뿐이었어.” 남편이 말을 더듬거리며 대답했다.

“아니에요. 가서 어서 그걸 가져오세요. 빨리 소원을 빌어야 해요.”

아내가 소리를 질러댔다.

“아니에요, 가서 어서 그걸 가져오세요. 빨리 소원을 빌어야 해요.”

아내가 소리를 질러댔다.

표정을 누그러뜨린 남편이 아내가 있는 쪽으로 돌아서서 두 손을 꼭 쥔 채 떨리는 목소리로 애원했다.

“그 애가 죽은 지 이미 열흘이나 지나 버렸어. 생각해 보라고 게다가 말하지 않으려고 했지만, 내가 그 애의 주검을 찾으러 갔을 때 옷 빼고는 내 아들이라는 사실을 확인할 도리가 없을 정도로 처참한 모습이었단 말이야. 만일 그 애가 다시 살아났는데 당신이 그 모습을 차마 눈뜨고 볼 수 없다면 그 때는 또 어떻게 할 거야? 제발 진정해.”

“우리 아들을 다시 살려 내세요.”

아내가 울먹이면서 남편을 문이 있는 쪽으로 끌고 갔다.

“당신은 내가 내 손으로 직접 키운 자식을 두려워할 거라고 생각하나요?”

아내에게 억지로 떠밀려 방문을 나선 남편은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계단을 조심스레 걸어 내려갔다. 더듬거리며 조금씩 앞으로 가다가 거실에 이르렀다는 느낌이 들자, 벽난로가 잇는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그 요물은 그 쪽에 있었다. 화이트 씨는 채 소원을 빌기도 전에 금세라도 아들이 되살아나올 듯한 두려움 때문에 거실에서 뛰쳐나가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당황한 나머지 문으로 가는 방향을 알 수가 없었다. 화이트 씨는 숨을 멈추고 벽을 더듬어보았다. 싸늘한 이마 위로 식은땀이 빗물처럼 흘러내렸다. 드디어 떨리는 손 끝에 식탁이 만져졌다. 다시 방향을 잡은 그는 계속 벽을 따라 손을 짚어 나갔다. 화이트 씨는 자신이 뭔지 모를 힘에 이끌려 불길한 물건을 손에 쥔 채 위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을 하나하나 밟아 가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방문을 열고 들어서자 아내의 얼굴이 전과 달라져 있었다. 상기된 얼굴은 한껏 부풀어오른 기대감을 말해주고 있었다. 아내의 얼굴에 그렇게 생기가 도는 것은 정말이지 오래간만이었다. 하지만 두려움에 가득찬 남편의 지금 심정에는 전혀 반가운 일이 아니었다. 오히려 남편의 눈에는 두려움이 역력했다.

“이제 소원을 빌어요!” 아내가 외쳤다.

“이건 분명히 어리석고 사악한 짓이야.” 남편이 주춤했다.

“소원을 빌어요!” 아내가 울부짖었다.

남편은 요물을 든 오른손을 치켜들었다.

“나는 우리 아들이 다시 살아나기를 원한다.”

원숭이의 발이 바닥에 떨어졌다. 남편이 느끼는 불길함과 두려움은 한층 더해졌다. 아내가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창문 쪽으로 걸어가서 블라인드를 올리자 남편은 떨리는 몸을 의자 깊숙이 밀어넣었다.

남편은 의자에 몸을 맡기고 추위에 몸이 얼어붙을 때가지 가끔씩 창문을 통해 바깥을 내다보는 아내의 모습을 쳐다보았다. 오랫동안 방 안을 비춰주고 있던 촛불이 촛대의 가장자리 부분까지 검게 태우더니 천장과 벽에 너울거리는 한 자락 불꽃의 그림자를 남기고 사라져 버렸다. 남편은 그 요물이 아무런 힘도 없다는 데에 대해 형언 할 수 없는 안도감을 느끼면서 침대로 몸을 옮겼다. 모든 것은 우연의 일치였을 뿐이다. 얼마가 더 지나자 아내도 아무 말 없이 차가운 가슴을 부여잡고 남편 옆으로 갔다.


아무도 말을 하지 않았다. 정적은 깨며 째깍째깍 돌아가는 시계 소리만 조용히 듣고 있었다. 계단에서 삐걱 소리가 났다. 찍찍거리는 쥐 한 마리가 소란을 떨면 벽을 타고 분주히 달려갔다. 암흑이 노부부를 무겁게 내리눌렀다. 얼마동안 누워 있다가 용기를 낸 남편이 성냥갑을 꺼대 들었다. 성냥불을 붙인 뒤 촛불을 밝히려고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계단을 타고 내려가다가 성냥불이 꺼져 버렸다. 그는 다른 성냥에 불을 붙이려고 잠시 발걸음을 멈추었다. 그와 동시에 아주 작고 조심스러운 노크 소리가 문에서 들려 왔다. 너무나 작아서 눈치채기 힘들 정도였다. 하지만 그 소리가 현관에서 울려퍼진 것은 분명했다.

성냥갑이 그의 손을 떠나 박으로 떨어지면서 성냥개비들의 여기저기로 내동댕이쳐졌다. 그는 얼어붙은 듯이 서 있었다. 두 번째 노크 소리가 들릴 때까지 숨도 들이마시지 못하던 화이트 씨는 쫓기듯 뒤로 돌아 다시 방으로 들어갔다. 그는 문을 굳게 닫았다. 이번에는 세 번째 노크 소리가 온 집안이 울릴 정도로 크게 들려 왔다.

“이게 무슨 소리야?” 아내가 고함을 치면서 일어났다.

“쥐 소리야.” 남편이 떨리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깜짝 놀랐네. 글쎄 쥐 한 마리가 계단에서 내 발 밑을 스쳐가지 뭐야.” 남편의 대답은 귀에 들어오지도 않는 아내가 조심스레 귀를 기울이면서 침대에서 일어났다. 커다란 노크 소리가 다시 한번 집 전체를 흔들었다.

“허버트다!” 아내가 소리 질렀다. “허버트가 왔어!”

그녀는 문이 있는 쪽으로 달려갔다. 하지만 먼저 문 앞을 지키고서 남편이 아내의 팔을 꽉 움켜잡았다.

“당신, 뭘 어떻게 하려는 거야?” 목이 쉰 듯이 그가 속삭였다.

“우리 아들이 왔어요. 허버트라구요!”

그녀는 울부짖었다. 둘은 밀고 당시면서 씨름을 계속했다.

“공동 묘지가 이 마일이나 떨어져 있다는 사실을 잊어버렸던 거예요. 왜 나를 말리는 거예요? 나를 좀 가도록 내버려 두세요. 난 꼭 저 문을 열어야만 한단 말이에요. 부탁이에요.”

“절대 열어주면 안 돼! 제발, 제발!” 남편도 흐느끼며 울기 시작했다.

“당신은 우리 아들이 두렵단 말인가요?”

남편의 간청은 아랑곳하지 않고 아내는 막무가내로 몸싸움을 계속하며 울어 댔다.

“가게 해줘요. 허버트야! 내가 간다. 엄마가 간다. 조금만 기다려라.”

노크 소리가 다시 한번 들려 오더니 계속 이어졌다. 아내는 어디서 그런 힘이 나왔는지 갑자기 몸을 비틀며 남편의 손을 뿌리쳤다. 남편으로부터 풀려난 아내는 쏜살같이 방을 빠져나가 계단을 뛰어 내려가기 시작했다. 남편이 허둥지둥 계단을 밟아 내려가는 아내를 뒤쫓으며 멈추라고 애원을 했다. 문을 잠그느라 채워 놓은 쇠고리가 덜거덕 소리를 내며 움직였다. 문의 아래쪽 빗장도 고리에서 벗어나려고 안간힘을 쓰며 흔들리고 있었다. 눈을 부릅뜬 아내가 두근거리는 가슴을 안고 열이 오른 목소리를 토해냈다.

“이 놈의 빗장!” 그녀가 크게 울부짖었다.

“빨리 내려와요. 높아서 손이 잘 닿지 않아요.”

하지만 남편은 더 이상 아내를 따라 내려갈 생각이 없었다. 다시 방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생각이 떠오른 것이다. 남편은 무릎을 꿇고 엎드려서 손을 거칠게 더듬거리며 그 원숭이 발을 찾으려고 온 방안을 기어다녔다. 머리 속에는 온통 문이 열리고 이미 아들이라고 할 수 없는 저 괴물이 집안으로 들어오기 전에 원숭이의 발을 다시 찾아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 가끔씩 반복되며 남편의 마음을 다급하게 만들던 노크소리가 이제는 그 절정에 도달한 듯 집중적으로 연속되면서 집안 구석구석 메아리쳤다. 모성애 빼고는 모든 것을 망각한 듯 보이는 아내가 조흔 생각을 떠올렸다. 의자를 끌고 와서 문을 열어줄 생각을 한 것이다. 의자가 끌리는 불쾌한 소리를 위층의 남편도 들었다. 이제 남은 시간이 거의 없다. 곧이어 화이트 씨의 귀에 빗장이 삐걱 소리를 내며 뒤로 천천히 빠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와 동시에 그는 원숭이 발을 찾아냈다. 그리고 조금의 주저도 없이 세 번째이자 마지막 소원을 빌었다.

노크 소리가 갑자기 멈추었다. 하지만 아직 그 소리가 메아리 되어 집안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의자가 뒤로 빠지는 소리가 위층으로 들려 왔다. 그리고 문이 열렸다. 차가운 겨울 바람이 계단을 타고 온 집안 구석구석까지 퍼져 들어왔다. 절망한 늙은 아내의 길고도 큰 통곡 소리에 용기를 얻은 남편이 아래로 달려가서 아내의 옆에 섰다. 문 밖에도 나가 보았다. 어름거리는 가로등 불빛 아래로 조용하고 황량한 도로가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