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 2. 22. 16:00ㆍ마음의 양식 독서
그는 승속의 세계를 오가는 종교예술가요 고구려의 아들이다. 그는 승려로써 벽화를 그려야만 하는 사명감과 위기에 처한 조국을 훌쩍 떠나온 데서 느끼는 죄책감 사이에서 방황하다가 벽화를 그리지 못하고 늘 주지에게 죄책감을 느낀다. 그는 화폭 앞에 서면 수군의 말발굽에 짓밟히는 고국과 동포를 보게 되며 도저히 그림을 그리지 못한다. 그는 승려이기 이전에 고구려의 아들이었던 것이다. 생불이라고 우러름을 받는 법릉사의 주지가 이를 모를 리가 없다. 어느 날 담징이 실의에 빠져 있을 때 주지가 와서 고구려의 승전보를 알려준다. 이제껏 속세에서 배회하던 담징은 불교 예술가의 모습으로 돌아온다. 그는 주지의 뒷그림자를 바라보고 꿇어앉아 합장한 채 한동안 일어나지 않으며 불당 앞으로 돌아와서 떨어뜨렸던 염주를 주어 들고 다시 합장 배래를 한다. 그는 비로소 합장한 손끝에서 자비로운 불심을 느끼고 터져오르는 환희를 경건한 불심으로 바꾸어 벽화를 착공하며 붓을 든 그 손길이 무학같이 움직이기 시작한다. 동방을 제패한 고구려의 환희는 관음상의 미소를 자아내게 하고 오랑캐의 죽음은 그들을 조상하는 자비심을 불러 일으켜 그는 온갖 정성으로 그림을 그린다. 순간 그는 일찍이 조국의 땅에 두고 온 이름 모를 여인의 모습을 떠올린다. 그의 그림 속에는 그녀의 모습이 생생히 부각되어 나타난다. 다시 눈을 뜨고 화면을 들여다보지만 그는 마음속의 영상이 더욱 뚜렷해져서 괴로워한다. 그는 열반의 세계가 아니라 사바의 세계를 모방한 것 같은 생각이 들어 화면을 지워 버리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 그러나 마지막 속세에 대한 미련인 듯 그 미간에 일 점을 그리고 만다. 벽면의 관음상은 점화시중의 미소가 빛나는 열반의 상이 된다. 벽면에 저녁 노을이 물들기 시작하자 자상의 열반의 세계에 도취한 주지가 합장한 채 꿇어 엎드리고 묵승들의 합장 배래가 끊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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