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 2. 22. 15:58ㆍ마음의 양식 독서
신라 때의 화성 솔거가 세종 때 세상에도 보기 드문 추악한 얼굴을 하고 태어난다. 그는 너무 추해서 대궐 북문밖에 숨어살면서 두 번이나 결혼했지만 얼굴을 본 색시들이 도망친다. 그는 차츰 사람들을 기피하고 화도를 걷기 위해 백악의 숲 속에 조그만 오두막을 짓고 삼십여 년을 혼자 산다. 화폭에 담을 대상을 찾던 중에 어린 시절에 자기를 품에 안고 눈물을 글썽이던 어머니의 모습을 생각한다. 그러나 그 모습은 차차 미녀 상으로 바뀌어 아내로서의 미녀를 그리고자 한다. 미녀의 아랫둥이는 그린지가 벌써 수년이 되었지만 그 위에 올려놓을 얼굴은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서 그는 장안을 돌아다닌다. 그는 뽕밭에서 아리따운 궁녀를 만나나 그녀의 얼굴도 미흡하게 느끼며 어느 날 저녁쌀을 씻기 위해 시냇가에 갔다가 아리따운 소경 처녀를 만난다. 그는 열 여덟인 그녀의 얼굴 전면에 나타난 표정을 보고 자기가 찾던 여인임을 직감한다. 그런데 그녀는 소경 처녀였다. 그는 처녀를 용궁의 이야기로 꾀어 오두막으로 데리고 간다. 오두막에 도착한 솔거는 눈으로 처녀의 얼굴을 보고 입으로 용궁의 이야기를 하면서 손으로는 십 년간을 벼르기만 하고 그리지 못한 미완의 미인도를 그린다. 용궁에는 여의주라는 구슬이 있는데 구슬을 네 눈 위에 한번 굴리면 너도 광명을 보게 될 것이라면서 미인도를 거의 완성하나 눈동자만을 그리지 못한다. 밝은 날 솔거는 소경 처녀와 벌써 남이 아닌 사이가 되며 삼십 년의 독신생활을 벗어버리고 혼자 먹던 조반을 소경 처녀와 같이 먹는다. 다시 화폭 앞에 앉아 그림을 완성시키려던 솔거는 처녀의 눈이 여전히 아름답기는 하나 어제의 눈이 아님을 직감한다. 그녀의 눈은 이미 지어미의 애욕의 눈으로 변화되어 있었던 것이다. 그는 전날의 눈빛을 되살리기 위해 용궁 이야기를 하지만 아무리 애를 써도 처녀의 눈에서 애욕의 눈빛이 지워지지 않는다. 화가 난 솔거는 커다란 양손으로 처녀의 어깨를 잡고 흔들다가 따귀를 갈기고 멱을 잡고 흔든다. 소경의 눈에 원망의 빛이 나타나자 그의 노염은 더욱 커지며 그는 생각나는 저주의 말을 계속해서 퍼붓다가 그녀를 죽이고 만다. 그녀의 몸이 너무 무거워지자 그는 잡은 손을 놓아 버린다. 그의 손에서 놓인 처녀의 몸은 위로 치솟은 채 번뜻 나가 넘어지며 넘어지는 서슬에 벼루가 전복되면서 먹물이 그녀와 그림의 눈동자를 그릴 자리에 튀긴다. 그림에 튀긴 먹물이 만든 눈동자의 모양은 처녀가 솔거에게 멱을 잡혔을 때 그녀의 눈에 나타난 원망의 빛이 가득한 모양이다. 솔거는 광인이 되어 그녀의 화상을 들고 수년간을 방황하다가 길에서 죽는다. 나는 인왕산에 올라 자연을 감상하면서 이런 이야기를 꾸미다가 늙은 화공의 쓸쓸한 일생을 조상하고 집으로 돌아갈 차비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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