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문제(1934년) 줄거리 감상하기
2008. 2. 20. 11:36ㆍ마음의 양식 독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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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강경애 생애와 활동
가난한 농민의 딸로 태어나 4세 때 아버지를 잃고, 7세 때 개가한 어머니를 따라 장연으로 갔다. 어린시절을 의붓형제들과의 원만하지 못한 분위기 속에서 외롭게 보냈다. 10세 때 초등학교에 들어가 신식 교육을 받았다. 이때부터 〈춘향전〉·〈장화홍련전〉 등의 고전소설을 닥치는 대로 읽고 마을 사람들에게 이야기해주었는데, 말솜씨가 뛰어나 '도토리 소설쟁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15세 때 의붓아버지마저 죽자 의붓형부의 도움으로 평양숭의여학교에 들어가 서양문학을 공부했다. 3학년 때 동맹휴학에 앞장섰다가 퇴학당했다. 퇴학 후 고향으로 돌아가 흥풍야학교를 세워 잠시 계몽운동을 하다가, 고향 선배인 양주동과 함께 서울로 올라와 금성사에서 동거하며 동덕여학교 3학년에 편입했다. 그러나 1년 후 다시 고향으로 돌아가 근우회 장연지부에서 활동했다. 1932년 장연군청에 근무하던 장하일과 혼인한 뒤, 만주로 건너가 남편은 동흥중학교 교사로 일했고 그녀는 소설을 썼다. 생활이 궁핍해지자 같은 해 고향으로 돌아왔다가, 1933년 다시 간도 용정으로 가서 소설창작에 전념했다. 만주에 있는 문학동인으로 이루어진 '북향'(北鄕)에 참여했고, 〈조선일보〉 간도지국장을 맡기도 했다. 1939~42년에 건강이 악화되어 귀국한 후, 창작 활동을 중단한 채 지내다가 37세의 나이로 죽었다.
문학세계
시 〈책 한 권〉(금성, 1924. 5)·〈가을〉(조선문단, 1925. 11) 등을 발표한 뒤, 소설 〈파금 破琴〉(조선일보, 1931. 1. 27~2. 3)·〈어머니와 딸〉(혜성, 1931. 5~1932. 4)을 발표하여 문단에 나왔다. 당시 간도의 사정을 잘 그린 수필 〈간도를 등지면서〉(동광, 1932. 8)·〈간도야 잘 있거라〉(동광, 1932. 10) 등과, 사상적 스승이자 동지인 남편과의 관계를 그린 수필 〈원고 첫 낭독〉(신가정, 1933. 6)·〈표모(漂母)의 마음〉(신가정, 1934. 6) 등을 발표했다. 남편 장하일은 사상범으로 체포된 경험이 있고, 만주에서도 계속 활동한 민족운동가였다. 그녀가 조선 프롤레타리아 예술가동맹(KAPF)과 직접 관계하지 않았음에도 사회과학적 현실인식이 뚜렷한 작가의식을 바탕으로 진보적 사실주의 작품을 쓸 수 있었던 것은 남편의 도움으로 가능했다.
고향에서 쓴 〈어머니와 딸〉에서는 봉건 윤리의 억눌림 속에서 가난한 모녀가 겪는 수난을 나타냈고, 간도로 건너간 이후 계급투쟁을 내용으로 한 단편 〈그 여자〉(삼천리, 1932. 9)와 콩트 〈월사금〉(신동아, 1933. 2)을 발표했고, 아버지와 아들이 도둑질과 살인을 저지를 수밖에 없는 절박함을 그린 〈부자 父子〉(제일선, 1932. 3)와 수입이 줄어든다고 일꾼을 몰래 죽이려는 지주의 횡포를 그린 〈채전 菜田〉(신가정, 1933. 9) 등에서 일제강점기에 하층민이 겪었던 수탈을 생생하게 그렸다. 만주를 배경으로 한 대표작 〈소금〉(신가정, 1934. 5~10)은 중국인 지주에게 버림받은 봉염 어머니를 통해 간도에서 조선인들이 이중으로 수탈당하는 현실에서 공산주의자들은 인간과 사회해방을 위해 무엇을 했는가를 묻는 문제작이다. 비슷한 시기에 발표한 장편 〈인간문제〉(동아일보, 1934. 8. 1~12. 22)는 근대소설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작품으로, 인간으로서 기본생존권조차 얻을 수 없었던 노동자의 참담한 현실을 예리하게 파헤쳤다.
이어 딸을 강제로 팔아야 하는 어머니의 아픔을 그린 〈동정〉(청년조선, 1934. 10), 만주사변 직후 안일한 소시민으로 전락해가는 세태를 그린 〈모자 母子〉(개벽, 1935. 1), 작가 자신의 체험을 바탕으로 한 〈원고료 이백원〉(신가정, 1935. 2), 지주에게 이용만 당하고 해고된 소작인을 그린 〈해고〉(신동아, 1935. 3), 농촌의 궁핍함을 자세히 그린 〈지하촌〉(조선일보, 1936. 3. 12~4. 3) 등을 발표했다.
평가
그녀는 사회경제적 모순을 작품의 기본적인 갈등구조로 삼아 당대의 역사인식에서 가장 진보적인 입장을 취했으면서도 정치조직이나 이론에서는 고립적이었으며, 그때문에 문학사적으로 오히려 과소평가되어왔다. 또한 분단 이후 그녀의 문학에 대한 평가는 후기의 자연주의적 작품에 초점을 맞추어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하다가, 1980년대 이후에야 올바른 연구작업이 시작되어 초기·중기의 진보적 사실주의 작품을 재평가하게 되었다. 가난을 묘사하는 데 있어 조명희와 나란히 견줄 만큼 비참한 장면을 드러냈고, 빈부의 차이에서 오는 인간의 생존본능을 그리는 데에서는 최서해와 닮을 만큼 잔혹한 장면을 많이 그렸다.
줄거리:
용연 마을에 있는 원소라는 못에는 오래 전부터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 언젠가 흉년이 들었을 때 부자 장자첨지는 마을 사람들의 애원에도 곳간문을 열지 않았고, 사람들이 들고 일어나 쌀을 실어내자 관가에 연락해 가담자들을 잡아가게 했고, 남은 마을 사람들이 흘린 원한의 눈물이 장자첨지의 집을 삼키고 원소라는 연못을 만들었다는 전설이다.
지금 용연 마을의 지주는 정덕호이며, '선비'는 그 집의 여종이다. '선비'의 아버지는 정덕호의 일꾼이었는데, 덕호의 지시로 빚을 받으러 갔다가 오히려 소작인을 도와준 죄로 덕호에게 맞아 죽는다. 어머니마저 죽자 '선비'는 정덕호의 집에서 몸종으로 지내게 된 것이다. 덕호는 선비의 미모를 탐내 서울로 보내 공부시켜 주겠다는 등의 감언으로 달래며 선비를 강제로 탐하여 결국 선비는 순결을 잃는다. 정덕호의 딸 옥점에게 이끌려 덕호의 집에 온 대학생 신철도 은근히 선비에게 마음을 두나, 끝끝내 고백할 기회를 갖지 못한 채 서울로 올라간다. 옥점은 또한 신철을 연모하고 있다. 매음녀의 아들로 궁핍한 생활을 하는 '첫째' 역시 선비를 좋아한다. 그러나 첫째는 타작마당에서 덕호에게 반항하다가 논을 떼이고 인천에 가 부두 노동자가 되고, 선비 역시 용연 마을에서 빠져나와 인천 방적공장의 노동자가 된다. 이 공장은 수많은 여공들을 기숙사에 수용하여 갖은 방법으로 노동력을 착취하는데, 이미 노동 운동에 뿌리를 내리고 있는 간난이는 자본가의 횡포와 노동자가 겪는 아픔을 극복하기 위해 비밀 작업을 추진하다가 이 일을 '선비'에게 맡기고 공장을 탈출한다. 간난이가 나간 후 '선비'는 공장 감독의 유혹을 뿌리치며 자기 일을 다하다가 폐결핵이 악화돼 죽고 만다.
한편 신철은 옥점과 결혼하라는 집안의 강권에 가출을 하게되고, 조직에 의해 인천에 배치받은 후 첫째를 만나 지도하게 된다. 신철과 첫째 등은 부두 노동자 파업을 조직하고, 선비 역시 공장의 책임자로까지 성장을 한다. 하지만 신철은 검거된 후 전향을 하고, 첫째는 그토록 그리워하던 선비의 시체앞에서 신철같은 지식인과 자신의 차이를 깨달으며, 해결해야 할 '인간문제'를 본다. 결국 인간 문제는 신철과 같은 지식인에게서 구할 것이 아니라, 노동자 자신이 스스로 해결해야 한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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