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필 마니아가 별명은 조영남이었던 이유

2008. 12. 10. 15:20세상 사는 이야기

나는 가수 조용필을 좋아한다. 예나 지금이나 대부분의 레퍼토리는 조용필의 노래다. 아마 중학교 3학년쯤인 것 같다.
그해 "돌아와요 부산항에"를 처음 듣고는 그 노래에 심취에 날마다 그 노래에 취해서 살았다. 원래는 한해전인 1976년에 발표했다는데 나중에 알고보니 제일 먼저 취입한 것은 1972년 김트리오 시절 취입했다 다시 76년에 취입한 것을 알게 되었다.
또 그 이전에 황선우 작곡의 "돌아와요 충무항"였다는 것도 나중에 알게 되었다.
중학교을 졸업하고 고등학교에 들어가서도 "돌아와요 부산항" 조용필의 인기는 사그라 들지 않아 학교에 '돌아와요 부산항에'가 18번지라는 학생들이 엄청 많았었다.
나는 기타를 살돈이 없어 고모부집에 군인이 버리고 간 키타를 다시 고쳐 날마다 고래고래 소리지르며 치다 아버지에게 혼쭐이 나기도 했다. 참고서는 사지 않아도 대중가요 책이 새로 나오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사서 배우곤 했는데 친구 녀석들은 노래책만 사오면 몰래 조용필의 노래 가사를 찢어가 싸우기도 했다.
그때 노래책 뒤에는 펜팔을 원하는 남여의 주소가 실려있곤 했는데 친구들이 노리는 것중에 하나가 바로 조용필의 노래와 펜팔 주소록이었다.

                                                                             <사진출처: 강쥐사랑>

주소록에서 임의로 주소를 찍어 편지를 써서 답장이 오면 원하는 것을 해주기로 하는 내기도 한 기억이 있다.
한번은 대중가요 책을 샀는데 맨 앞에 조용필 특집이 나온 적이 있었다. 그곳에는 목소리를 틔우기 위해서 아침마다 계란을 5개 먹었다는 이야기며 날마다 소금물로 목을 축이면서 목을 틔웠다는 이야기도 있었다.
과학적인 사실이든 아니든 나는 곧장 따라 했다. 그 덕인지는 몰라도 처음에 목소리도 형편없고 음치라고 놀려대던 녀석들이 어느 순간 쑥 들어가 버렸다. 정말 노력하니 목소리가 몰라보게 달라졌다. 득음이라고 할까?....음치에세 정상으로....ㅎㅎㅎ........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각자 대학을 다닐 때에도 친구들과 모이면 나의 화제는 늘 조용필이었고 조용필 노래에 빠져 있었다.
그런 내가 어느 순간 조용필이 아닌 조영남이 되어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것은 결혼한 해 가을에 찍었던 사진 한 장 때문이었다. 아마 홍천에 있는 수타사에서 찍은 사진 같은데 집사람 친구들이 집에 놀러 왔다 그 사진을 보고는 "어머,어머, 조영남이다" 하며 박장대소하면서 금새 친구들 사이에 조영남으로 소문이 났다.
다행히 조영남의 노래 "제비'를 좋아하는 팬이라는 친구들 덕분에 늘 융숭한 대우(?)를 받곤했다.
지금도 변함없이 나의 18번은 조용필이다, 그중에 '꿈'과 '그 겨울의 찾집'을 가장 즐겨 부른다.
그렇지만 나는 아직 집사람 친구들에게는 조영남으로 불린다.
얼굴은 조영남 마음은 조용필.......이것을 좋다고 해야하는지 나쁘다고 해야하는지 아직도 나는 모르겠다.
지금은 안경을 바꾸고 나서 전혀 아니올시다라고 생각하는데 남들도 그렇게 생각하는지는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