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을 망친 도박중독증
2008. 5. 27. 07:40ㆍ세상 사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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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이십여년이 다 되어가는 듯 싶다. 결혼해서 아이 둘 낳고 단란했던 시절에 재미로 시작했던 화투와 카드가 내 인생을 송두리채 바꿔놓은 그 때가.......
결혼 후 조그만 가구점을 운영하면서 저녁이면 상가 사람들과 모여 하루의 피로를 풀며 술 한잔하곤 했었는데 소도읍에 한 곳있는 소극장에는 내가 사업을 시작하기 전부터 모여 화투와 카드를 했다고 한다.
상인협회를 만들어 함께 모여 회의도 하고 끝나고 나면 남은 사람들끼리 화투나 카드를 하곤 했는데 처음 나는 그 속에서 술 한 잔 마시고 옆에서 구경만 하다 집으로 돌아오곤 했었는데...자꾸 그곳에 들러 술을 마시다 보니 사람들이 카드 짝이 맞지 않는다며 잠시만 놀다 다른 사람이 오면 넘겨주고 가라며 채근하곤 했다.
그렇게 잠시 앉아서 고스톱과 카드를 하다보니 점차 주객이 전도 되어 고정멤버로 들어앉게 되었다.그러다 보니 새벽에 들어가는 횟수가 잦아 졌고 아내의 잔소리가 심해졌지만 집옆에 있다보니 수시로 참새 방아간 드나들듯이 드나 들었다.
처음에는 화투나 카드를 쳐서 술과 음식을 시켜 먹은 것으로 만족했었는데 점차 판이 커지기 시작했다.
고스톱도 점에 천에서 만원으로...그러다 마지막에는 도리짓고땡으로 돌리곤 했다. 초짜이거나 성격이 냉정하고 모질지 못한 사람들은 얼굴 표정이 상대방에게 읽혀서 딸 수 없다는 것을 몰랐던 나는 가랑비에 옷 젖듯이 돈을 잃기 시작했다.
카드 게임에서 베팅할 때나 레이스할 때 늘 확인을 좋아했던 나는 게슈타포....독일병정이라는 별명이 붙었었다.
그야말로 무모하고 무식한 베팅방법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잘 고쳐지지 않았다.
그것을 이용한 상대방은 늘 내가 사냥하기 최상의 먹이였던 셈이었다.
이미 내가 도박 중독자가 되었다는 사실을 모른체 날마다 2~3십만원씩 사냥꾼의 밥을 실어 날랐다.
그러다 보니 자연히 사업에도 등한시 하게 되고 아내 몰래 거래은행에서 대출을 받기도 했다.
거의 2년을 그런 생활을 하다보니 아내는 이혼을 하던지 이곳을 떠나 멀리 이사를 가던지 둘 중에 하나를 결정하라는 최후 통첩을 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면서 아이 둘을 데리고 먼저 떠났다. 가구점을 정리하고 오던지 아니면 이혼을 하던지.......
이혼은 꿈에도 생각하지 않던 내게는 정말 충격적인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어차피 이곳을 떠나야 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을 때 나와함께 늘 도박을 하던 당구장 털보가 내게 솔깃한 제안을 하는 것이 아닌가...
외지에서 오는 사람들이 이번에 함께 게임을 하자고 하는데 판돈 천만원을 걸고 한 판 붙기로 했다는 것이었다.
그러니 이번에 죽이되든 밥이 되든 마지막 게임을 하자는 것이었다.
본전 생각도 나고 또 어차피 이곳을 떠나야 하는데 마지막 게임을 해보자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털보가 또 한 마디를 던진다.
"이번에 성공하면 몇천만원의 거금을 손에 쥘 수 있어. 내가 아는 사람도 이런 판에서 싹쓸어 시골에 땅을 사서 잘 살고 있어. 성공하든 실패하든 이번만 하고 도박에서 손을 떼자고......."
결국은 그의 말대로 하기로 하고 신용카드와 여기저기에서 긁어 모은 돈 5백만원으로 여관에서 도리짓고땡을 시작했다. 개중에는 소를 팔아서 온 사람도 있었고 개인택시 하는 사람도 한 사람 끼어 있었다.
지금 생각하면 너무나 어리석은 선택이었지만 그때는 정말 신중하고 비장하게 게임에 임했다.
그들이 말로만 듣던 원정 타짜들인지도 모른채 게임은 시작되었고 초반에는 끗발이 좋은지 운이 좋은 건지 게임이 잘 풀렸다.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지루한 게임이 진행되더니 오후 4시경인가....시작한지 6시간만에 말그대로 쪽박을 찼다. 소판 농부와 개인택시하던 사람 그리고 나와 털보만 남겨 놓은 채 그들은 사라져 버렸다.
나중에 안일이지만 털보도 한 통속이었다는 이야기를 들었지만 이미 버스가 지나고 난 후의 일이었다.
집을 팔고 가게를 처분해서 부채를 정리하고 나니 천오백 정도의 돈이 남았다.
남은 돈으로 아내가 있는 곳으로 가서 월세를 얻고 조그만 아동복 가게를 시작했다.
물론 아내가 하는 일이고 나는 할 일이 없었다. 가장으로서 무기력하고 무능한 가장으로 찍혔고 또 신용이 바닥이라서 마땅하게 할 일도 없었다.
함께 일구었던 재산을 모두 도박으로 탕진한 나는 더 이상 비빌 언덕이 없었고 10여년을 그 후유증 때문에 몸살을 앓았다.
지금도 길을 걷다보면 카센타나 혹은 부동산 사무실에서 사람들이 모여 화투나 카드를 하는 것을 보면 쓰린 마음을 주체할 수가 없다. 절대 돈을 걸고 도박을 해서는 안될 성격의 내가 일순간의 잘못된 선택으로 가정을 풍비박산나게 했다는 자책감 때문에......
내 몸과 내 영혼마저 저당잡혔던 도박........다행히 중독증에서 벗어났지만 도박 후유증이 남긴 것은 지독한 가난과 무너진 내 인생 뿐이었다.
몇해전에 바다이야기라는 게임이 전국적으로 유행했었다. 그때도 수많은 사람들이 게임중독에 빠져 나와같은 전철을 밟은 사람이 부지기수라고 한다.
한번 중독되면 죽는 줄도 모르고 달려드는 불나방처럼 몸과 마음을 피폐하게 만드는 도박.....더 이상 나와 같은 사람이 생기지 않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결혼 후 조그만 가구점을 운영하면서 저녁이면 상가 사람들과 모여 하루의 피로를 풀며 술 한잔하곤 했었는데 소도읍에 한 곳있는 소극장에는 내가 사업을 시작하기 전부터 모여 화투와 카드를 했다고 한다.
상인협회를 만들어 함께 모여 회의도 하고 끝나고 나면 남은 사람들끼리 화투나 카드를 하곤 했는데 처음 나는 그 속에서 술 한 잔 마시고 옆에서 구경만 하다 집으로 돌아오곤 했었는데...자꾸 그곳에 들러 술을 마시다 보니 사람들이 카드 짝이 맞지 않는다며 잠시만 놀다 다른 사람이 오면 넘겨주고 가라며 채근하곤 했다.
그렇게 잠시 앉아서 고스톱과 카드를 하다보니 점차 주객이 전도 되어 고정멤버로 들어앉게 되었다.그러다 보니 새벽에 들어가는 횟수가 잦아 졌고 아내의 잔소리가 심해졌지만 집옆에 있다보니 수시로 참새 방아간 드나들듯이 드나 들었다.
처음에는 화투나 카드를 쳐서 술과 음식을 시켜 먹은 것으로 만족했었는데 점차 판이 커지기 시작했다.
고스톱도 점에 천에서 만원으로...그러다 마지막에는 도리짓고땡으로 돌리곤 했다. 초짜이거나 성격이 냉정하고 모질지 못한 사람들은 얼굴 표정이 상대방에게 읽혀서 딸 수 없다는 것을 몰랐던 나는 가랑비에 옷 젖듯이 돈을 잃기 시작했다.
카드 게임에서 베팅할 때나 레이스할 때 늘 확인을 좋아했던 나는 게슈타포....독일병정이라는 별명이 붙었었다.
그야말로 무모하고 무식한 베팅방법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잘 고쳐지지 않았다.
그것을 이용한 상대방은 늘 내가 사냥하기 최상의 먹이였던 셈이었다.
이미 내가 도박 중독자가 되었다는 사실을 모른체 날마다 2~3십만원씩 사냥꾼의 밥을 실어 날랐다.
그러다 보니 자연히 사업에도 등한시 하게 되고 아내 몰래 거래은행에서 대출을 받기도 했다.
거의 2년을 그런 생활을 하다보니 아내는 이혼을 하던지 이곳을 떠나 멀리 이사를 가던지 둘 중에 하나를 결정하라는 최후 통첩을 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면서 아이 둘을 데리고 먼저 떠났다. 가구점을 정리하고 오던지 아니면 이혼을 하던지.......
이혼은 꿈에도 생각하지 않던 내게는 정말 충격적인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어차피 이곳을 떠나야 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을 때 나와함께 늘 도박을 하던 당구장 털보가 내게 솔깃한 제안을 하는 것이 아닌가...
외지에서 오는 사람들이 이번에 함께 게임을 하자고 하는데 판돈 천만원을 걸고 한 판 붙기로 했다는 것이었다.
그러니 이번에 죽이되든 밥이 되든 마지막 게임을 하자는 것이었다.
본전 생각도 나고 또 어차피 이곳을 떠나야 하는데 마지막 게임을 해보자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털보가 또 한 마디를 던진다.
"이번에 성공하면 몇천만원의 거금을 손에 쥘 수 있어. 내가 아는 사람도 이런 판에서 싹쓸어 시골에 땅을 사서 잘 살고 있어. 성공하든 실패하든 이번만 하고 도박에서 손을 떼자고......."
결국은 그의 말대로 하기로 하고 신용카드와 여기저기에서 긁어 모은 돈 5백만원으로 여관에서 도리짓고땡을 시작했다. 개중에는 소를 팔아서 온 사람도 있었고 개인택시 하는 사람도 한 사람 끼어 있었다.
지금 생각하면 너무나 어리석은 선택이었지만 그때는 정말 신중하고 비장하게 게임에 임했다.
그들이 말로만 듣던 원정 타짜들인지도 모른채 게임은 시작되었고 초반에는 끗발이 좋은지 운이 좋은 건지 게임이 잘 풀렸다.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지루한 게임이 진행되더니 오후 4시경인가....시작한지 6시간만에 말그대로 쪽박을 찼다. 소판 농부와 개인택시하던 사람 그리고 나와 털보만 남겨 놓은 채 그들은 사라져 버렸다.
나중에 안일이지만 털보도 한 통속이었다는 이야기를 들었지만 이미 버스가 지나고 난 후의 일이었다.
집을 팔고 가게를 처분해서 부채를 정리하고 나니 천오백 정도의 돈이 남았다.
남은 돈으로 아내가 있는 곳으로 가서 월세를 얻고 조그만 아동복 가게를 시작했다.
물론 아내가 하는 일이고 나는 할 일이 없었다. 가장으로서 무기력하고 무능한 가장으로 찍혔고 또 신용이 바닥이라서 마땅하게 할 일도 없었다.
함께 일구었던 재산을 모두 도박으로 탕진한 나는 더 이상 비빌 언덕이 없었고 10여년을 그 후유증 때문에 몸살을 앓았다.
지금도 길을 걷다보면 카센타나 혹은 부동산 사무실에서 사람들이 모여 화투나 카드를 하는 것을 보면 쓰린 마음을 주체할 수가 없다. 절대 돈을 걸고 도박을 해서는 안될 성격의 내가 일순간의 잘못된 선택으로 가정을 풍비박산나게 했다는 자책감 때문에......
내 몸과 내 영혼마저 저당잡혔던 도박........다행히 중독증에서 벗어났지만 도박 후유증이 남긴 것은 지독한 가난과 무너진 내 인생 뿐이었다.
몇해전에 바다이야기라는 게임이 전국적으로 유행했었다. 그때도 수많은 사람들이 게임중독에 빠져 나와같은 전철을 밟은 사람이 부지기수라고 한다.
한번 중독되면 죽는 줄도 모르고 달려드는 불나방처럼 몸과 마음을 피폐하게 만드는 도박.....더 이상 나와 같은 사람이 생기지 않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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