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 2. 22. 16:08ㆍ마음의 양식 독서
칠십이 넘은 주인의 맏딸은 이북으로 시집가서 20년이나 돌아오지 않는다. 아버지는 2년 전부터 귀가 멀면서 말수가 적어지고 가족들은 언제부터인지 이렇게 기다리는 일에 익숙해진다. 초여름이 느껴지는 오월의 어느 날 저녁 칠십이 넘은 주인과 며느리 정애 그리고 막내딸 영희가 밤 열두 시에 돌아온다는 맏딸을 기다린다. 어디서 꽝당꽝당 쇠를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 온다. 응접실 소파에 앉은 영희는 그 소리를 피하려는 듯 억지로 지껄인다. 정애는 이 집 맏딸의 시사촌 동생인 선재가 아직 돌아오지 않은 것을 상기시킨다. 선재는 죽은 영희 어머니가 몹시 아낀 청년이다. 마침 이층에 영희는 야위고 파자마 차림의 오빠를 비꼰다. 식모가 왜 하필이면 밤 열두 시냐고 투덜댄다. 영희는 식모는 이 집의 식구가 아니냐면서 누구는 몰라서 이러는 줄 아느냐고 눈물을 흘린다. 열 시를 알리자 영희는 정애에게 오빠에게 무엇을 바라고 무슨 명분으로 이 집을 지키냐면서 답답한 마음을 털어놓는다. 술에 만취된 선재가 들어온다. 영희가 그를 부축하고 올라간다. 차가운 안경알만 반짝이는 성식도 이층으로 올라간다. 시아버지와 남은 정애는 까닭 없이 불안해지고 갑자기 조급해지는 것을 느낀다. 영희는 선재가 쓰는 초라한 좁은 방에서 흥분이 가시기 전에 일을 치르고 싶어 선재를 깨운다. 그녀는 선재의 품에 안겨 딴딴한 쇠망치 소리를 혼자 감당하기 힘들고 무섭다고 말한다. 그녀는 오빠의 방을 찾아가서 지금 막 결혼을 했다고 이야기한다. 성식은 물끄러미 천장만 쳐다본다. 영희는 꽝당꽝당 울리는 쇠붙이 소리에 흠칫한다. 밤이 깊어질수록 쇠붙이 소리가 조급하게 들려 온다. 영희는 정애에게 쇳소리가 이상하지 않느냐고 묻는다. 이때 집채를 흔드는 듯한 울림을 일으키면서 성식이 아래층으로 내려온다. 성식이 어쩔 줄을 몰라 하자 잔잔한 목소리로 이야기하던 영희는 갑자기 신경질적인 목소리로 오빠에게도 이야기했다고 말한다. 순간 성식이 기묘한 웃음을 웃는다. 순간 벽시계가 열두 시를 친다. 세 사람은 일제히 시선을 늙은 주인쪽으로 돌린다. 코앞의 사마귀를 만지던 주인은 어리둥절한다. 이때 복도의 문이 열린다. 모든 사람들의 시선이 집중되자 기묘한 웃음을 띤 식모가 변소에 다녀오는 길이라면서 나타난다. 영희는 식모를 가리키면서 언니가 정말 왔다고 소리친다. 아버지는 영희의 부축을 받으면서 허공에 대고 허우적거린다. 꽝당꽝당하는 쇠붙이 두드리는 소리는 밤이 새도록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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