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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한의 사하촌 줄거리 읽기

2008. 2. 15. 12:11마음의 양식 독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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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하촌(寺下村)

작가

김정한(1908- ) 호 요산. 경남 동래 출신. 1936년 조선일보 신춘 문예에 「사하촌」이 당선되어 문단에 데뷔. 1940년 학교에서 우리말 교육이 불가능하게 되자 교원 사표를 내고 붓을 꺾었다. 해방 이후 「민주신보」논설위원, 부산대학교 교수등을 역임.

줄거리

가뭄이 계속되는 보광사와 성동리 일대의 주민들은 대부분 보광사에 소 작을 부치고 살고 있었다.

그런 어느 날 고서방은 까닭도 없이 순사에게 잡혀가고 성동리의 사람들은 아무도 고서방의 소식을 듣지 못했다.

가뭄이 계속되자 사람들은 지주인 이 주사네 논의 기심을 매고 비 오기를 축수하기도 하고 보광사 절에서 불공을 드리지만 가뭄은 여전히 계 속됐다.

결국 성동리 사람들은 산으로 몰래 올라가 나무를 하고 버섯을 따 생계를 마련했다. 나무를 하러 나선 성동리의 어린이들 가운데 상한이와 차돌이는 내려오다가 밤을 주워 오지만 산지기에게 들켜 도망치다가 차돌이는 실족하여 벼랑에 굴러 떨어져 죽는다. 산지기는 가동 할멈에게 손자 교육을 잘못시켰다고 순사까지 데리고 와서 야단을 치고 할멈은 미치고 만다.

고 서방은 남의 논두렁을 잘랐다는 죄로 몇 달간 헛고생을 하다가 추석 지난 뒤에 나왔으나, 도둑나무도 못 해 오고 꼬박꼬박 사방 공사 품팔이나 다녔다.

가뭄이 계속되는 가운데 보광사에서는 간평을 나와 소작료를 메기고 영농 자금과 비료 대금에 대한 빚을 갚으라고 독촉을 한다. 그리고 며칠 뒤, 마을 사람들의 논에는 입도차압의 팻말이 붙기 시작하고 고 서방은 야간 도주를 하고 만다.

동네 사람들은 야학당으로 몰려들기 시작하고 줄을 지어 차압 취소와 소작료 면제를 탄원해 보려고 묵묵히 마을을 떠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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