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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아내의 도시락을 싸는 이유

2008. 12. 21. 11:59세상 사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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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나는 매일 아내의 도시락을 싼다. 그런데 마음에서 우러나서 싸는 것이 아니라 벌로 도시락을 싼다. 그 벌이 무슨 벌인고 하니 아내를 속인 죄다.
사연은 이렇다. 결혼 생활 20년동안 나는 가장으로서 떳떳하지 못했다. 생활이 넉넉치 않아서 늘 아내가 고생을 했다. 처음 결혼해서 시작한 것은 고가구와 인테리어 소품을 파는 공방을 시작했다. 평생의 꿈이었던 교사가 되지 못하고 잠시 학원강사를 하다가 결혼과 함께 차린 공방은 재래시장 끄트머리에 10평 가게 였는데 가게가 좁아서 물건을 들여 놓기가 쉽지 않았다.
짐자전거로 시작한 공방은 차츰 큰 가구가 들어오게 되면서 한계를 느끼기 시작했다. 빚으로 시작한 형편 때문에 차를 살 수가 없어서 물건을 하러 갈 때는 개인용달을 불러서 갔고 시내 배달은 왠만한 것은 짐자전거로 배달을 했다.
자전거로 배달을 하다 균형을 잃고 넘어져 사고를 당하기도 했다. 그렇게 3년을 고생한 끝에 20평 가게로 이전을 하고 당시 처음 나왔던 대우자동차 라보를 샀다. 세상을 다 얻을 듯 기뻤던 기억이 난다.
라보 덕분에 먼 지역까지 배달을 할 수 있게 되었고 신혼가구 배달을 위해 태백까지 가기도 했다.
얼마 후 데코라인이나 미지트 까사미아등 원목가구가 유행하기 시작하면서 대리점을 하게 되었다. 당시 가구 창고가 2층에 천막을 치고 썼는데 늘 오르내리는 것이 힘들었는데 가구를 옮기다 계단에서 발을 헛디디며 넘어져 발을 심하게 다쳤다.
늘 사고의 위험 때문에 할 수 없이 접고 아내가 좀더 넓은 곳으로 이사를 가자고 했다. 당시 처제가 속초에서 미용실을 하고 있었고 시내에는 관광객들이 많아 장사가 잘된다고 했다. 그래서 과감하게 이사를 해서 아동복 대리점을 차리게 되었는데 아뿔사 차린지 6개월도 안돼 회사가 공중분해되는 일을 당하게 되었다.
자세한 내막은 지금도 모르지만 당시 이튼스쿨이라는 신생 브랜드였는데 전국에 대리점을 모집해놓고 일부러 부도를 내고 도망친 것 같았다.
할 수 없이 남대문에서 아동복 도매를 하기 시작했고 나는 학원을 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학원을 시작한지 2년만에 학원 건물이 경매로 넘어가는 불운을 또 겪게 되었다.당시 임대차 보호법의 보호를 받으려면 주소지가 학원건물로 되어 있어야 하는데 안돼있어 보증금을 한 푼도 못받고 쫓겨났다.
할 수 없이 학교에서 특기적성 교사로 글짓기 교사로 취직을 했고 5년간 학교와 학원에서 아이들을 가르쳤다.
두 번이나 사업에 실패한 후유증 때문에 삶은 늘 찌들었고 아이 둘을 가르치느라 정신이 없었다.
그런 차에 친구의 소개로 부동산을 시작하게 되었고 부동산을 하다 공장을 차리려는 사람을 알게 되었다.
특허를 6개 갖고 있는 그 사람은 예전에도 사업을 해서 성공을 거두었으나 IMF 때 부도를 맞고 재기를 모색하던 사람이었다.
사업 아이템을 듣고 신중하게 생각한  나는 당시 참여정부의 부동산 중과세로 꽁꽁 얼어붙어 거래가 없던 차에 부동산을 접고 사업에 동참하기로 했다. 그런데 함께 사업계획서를 만들고 공장 인허가를 받으러 다니며 2년이라는 세월을 허비하면서 몸과 마음이 다 지쳐가기 시작했다. 애당초 자금이 있는 줄 알았던 그 사람은 자신의 집까지 팔아 넣고도 부족한 자금을 메울 여력이 없었고 이미 너무 깊이 발을 묻은 나는 아내 몰래 연금과 적금을 깨는 엄청난 일을 저지르고 말았다.
그리고 그런 사실은 얼마안가 아내에게 들통나고 말았다. 살면서 이렇게 심각한 상황까지 왔다는 것이 참으로 비참했다.
아내에게는 한 마디 의논도 없이 어떻게 평생 노후를 보장해줄 연금을 깰 수 있느냐며 대성통곡을 했다. 유구무언 할 말이 없었다.

                                                                                                  <사진출처: 오마이 뉴스>

확실하다고 생각했던 일이 틀어지고 아내와의 사이도 먼 시베리아 벌판처럼 냉랭해졌다.

방도 각방을 쓰게 되었고 점점 마음도 멀어지는 듯했다. 미안한 마음에 늘 밖으로 돌게 되고 ......
그러던 차에 아내의 가게 아래에 식당이 문을 닫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 식당이 아니면 마땅히 점심을 대놓고 먹기 쉽지 않은 아내는 김밥을 사다 먹거나 만두로 점심을 먹고 있었다. 궁리 끝에 나는 시장에 나가 보온 도시락을 하나 샀다. 그리고 다음날 아내의 도시락을 싸기 시작했다.

출근하기 전에 아내의 도시락을 정성껏 싸놓았다. 그러나 저녁에 들어와 보면 그 도시락이 그대로 있었다. 그 도시락으로 나는 저녁을 먹었다.
그렇게 하기를 일주일.......저녁에 먼저 들어와보니 도시락이 없었다. 마침내 아내가 도시락을 갖고 가게로 갔다.
그렇게 해서 매일 아내의 도시락 싸기가 시작되었다. 지금도 각방을 쓰고 냉전 중이지만 언젠가 아내의 마음이 풀리리라는 기대를 갖고 아내의 도시락을 싸고 있다. 애시당초 잘못을 저지르기 전에도 사랑의 도시락을 싸주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하지만 스스로 내린 벌이기에 정성을 다해서 도시락을 싼다. 언젠가는 아내의 마음이 풀리길 기대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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