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년전 영화관을 다시 가보다....

2008. 8. 4. 15:20세상 사는 이야기

어머니 세상 떠나시고 8개월이 지났다. 혼자 농사일이 바쁜 팔순 아버지가 심은 고추밭에는 고추가 빠알갛다.
고추를 말릴 비닐 하우스의 낡은 비닐을 걷고 새로 씌우고 나니 전신에 땀이 범벅이다.
집에 와서 샤워를 하고 친구를 만나러 나가는데 오른쪽 멀리 어릴 적 영화관이 눈에 들어왔다.
40년전 홍천군에서 시내가 아닌 읍면 중에 우리마을에만 있었던 영화관(당시에는 극장이라고 했다)....홍천과 인접해 있었고 주변에 부대가 많아 군인들 단체손님과 초등학교 중학교 단체손님이 많았던 영화관
추억이 많았던 영화관은 멀리서 보기에도 낡고 우중충하지만 그 자체만으로도 추억이 새록새록하다.
차를 몰고 들어가보니 음료수 대리점 창고로 변해있는데 개들이 얼마나 짖어 대는지 안을 들여다 볼 수가 없었다.
할 수 없이 밖으로 돌아나와 옛날에 논두렁을 따라 기어가던 그곳으로 가 보니 예전의 그 모습 그대로 영화관이 눈에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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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에는 어마어마하게 커보였던 영화관 지금보니 너무나 작고 초라하다.지붕이 낡아서 다시 한 번 덧씌우기를 하고 현재 음료수 대리점 창고로 쓰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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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는 없었던 창문을 새로 냈다.....음료수가 가득 쌓여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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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관에 종사하던 가족들이 머물던 별채.....그때는 좋아보였던 집....지금보니 너무나 초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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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리 보이던 벽돌집(밤나무집 건너편) 아래 당시 초가집이었던 우리집이 있었다. 지금은 논으로 변해 흔적도 찾아볼 수가 없다. 저곳에서 이논두렁을 타고 와서 영화관 화장실 담을 넘곤 했다.

이곳에 영화관이 들어오고나서 우리 4형제는 잠을 잘 수가 없었다. 사랑방에서 4형제가 함께 잠을 자야하는데 잠을 자려고 누우면 멀리서 영화 속 대사가 그대로 들려오곤 했다.
더더구나 우리집과 윗집 사이로 영화를 훔쳐보기 위해 드나드는 길목이다 보니 나중에 4형제는 모두 영화를 훔쳐보기 위해 공범이 되었다.
이곳의 영화관은 천막 영화관이 있었던 자리였는데 재력가와 함께 손을 잡은 사람이 극장을 새로 지으면서 이곳은 촌사람들이 유일하게 문화생활을 즐길 수 있는 곳이 되었다.
당시 6.25 관련 영화가 들어오면 관내 군인과 학생들은 단체관람을 하기 위해 줄을 서서 기다리는 진풍경을 연출하기도 했다.
그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사람은 용팔이 박노식이었는데 .....그의 코믹하고 박력있고 의리있는 모습에 사람들은 시원하고 통쾌함을 느끼곤 했다. 당시 국민학생이었던 친구와 나는 과감하게(?) 영화관 화장실 창문을 통해서 영화관으로 들어가다 걸려서 영화관 입구에서 돌을 들고 벌을 서곤 했었는데..
영화관에 몰래 들어가는 아이들이 정해져 있을 만큼 당시 우리는 영화에 중독되어 있었고 학교에서는 용팔이 흉내 내기가 유행하기도 했었다.
당시 극장의 감시를 맡은 사람은 얼굴이 곰보였고 얼굴에 화상을 입었던 사람이라서 우리는 문둥이 아저씨라고 불렀는데.....하도 영화관 화장실 창문을 통해서 자주 드나들어 나중에는 이런 말을 하시곤 했다.
"야, 이놈들아 너희들이 보면 안되는 영화까지 몰래 들어와서 보면 어떡하냐..."
"앞으로는 영화가 보고 싶으면 아저씨에게 이야기 하렴, 그러면 너희들이 볼 수 있는 영화라면 들여보내주마...."
"대신 이곳에 와서 가끔 휴지도 줍고 청소를 해야한다."
그런 일이 있고 난 후에는 화장실 창문을 넘나드는 일이 없었지만 동네 형들은 변함없이 훔쳐보기를 시도하다 걸려서 극장 앞에서 돌을 들고 서있곤 했다.
그때 돌을 들고 서있던 자리는 농협창고 건물이 들어와 있었고 매표소는 문이 떨어져 나가 너덜너덜 했다.
그리고 멀리서 보면 영화 간판과 함께 번쩍번쩍 빛을 냈던 구멍들도 모두 막혔거나 깨져 보기에 흉했다.
학교 가는 것만큼이나 영화관 출입이 잦았던 그때 가장 자주 보았던 액션 영화의 영향일까?
그때 좋아했던 배우들이 모두 액션배우였는데.....
박노식 ,장동휘,황해,허장강,독고성,최무룡은 아직도 기억에 남아있는 배우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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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화장실 쪽문이 그대로 있다. 혼자서는 들어갈 수 없어서 아래서 등을 대주면 그 등을 밝고 작은 문틈 사이로 들어가곤 했다.(가끔 화장실 문을 잠궈 놓는 경우가 있는데 그런 경우에는 미리 동네 형에게 부탁해서 열어놓게 했다.)지금 화장실 문을 보니 엄두가 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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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관이었다는 흔적도 남아있지 않은 영화관 앞......가운데 볼룩한 곳이 매표소였는데 매표소 문도 담을 쌓아 매표소 받침만 덩그러니 남아있다.윗 흰벽에는 영화간판이 걸려있었는데 극장 별관에는 간판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 다음 상영영화의 간판을 그리느라 여념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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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관 벽 위에 동그란 구멍은 이곳에 모자이크처럼 각각의 색이 들어가 있어 멀리서 보면 각양각색의 전등불빛에 영화관이 한결 멋있어 보였다. 지금은 막혀있거나 막은 곳에 새들이 집을 짓곤 한다.

그런데 극장이 문을 연지 4~5년이 지났을까,,,,,작은 시골에서 운영하다보니 적자누적으로 인해 극장이 문을 닫게 되었다. 그때부터 영화 한 편을 보려면 버스를 타고 읍내로 까지 나가야하는 불편을 겪게 되었다.
영화관이 없어지고 난 후 몇년 뒤 추석특집으로 시내에서 상영했던 성룡의 취권은 그야말로 인산인해였었다. 안내양이 있던 그 시절 버스는 만원이라 안내양이 문을 못닫을 정도로 영화 취권에 매료된 사람들이 많았다.
지금은 영화관이 하나도 남아있지 않은 홍천군......40년 전에는 촌이었던 내 고향에도 영화관이 있었고 읍내에도 두 개의 영화관이 있었는데.......이제는 개봉영화를 보려면 춘천이나 원주로 나가야 한다.
영화를 볼 수 있는 곳이 하나도 없다는 사실이 너무나 안타깝고 아쉬울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