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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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진 고향의 맛 막걸리를 추억하다
1960년과 1970년에 시골에 살아본 사람은 안다.그 시절 먹을 것이 얼마나 귀하고 힘든 시절이었는지를......물론 가정형편이나 지방에 따라서 달랐겠지만 내가 살던 마을은 초가집에 읍에서 비포장 도로로 한 시간을 걸어서 들어가야 했다. 마을 입구에는 동네에서 가장 큰 미루나무가 있었고 도로를 따라서 굵은 미루나무가 하늘거리곤했다.마을 사람들의 주업은 논일과 밭일이었는데 우리집은 과수원과 조농사 그리고 논농사 약간 지었다. 봄이면 농사일로 마을은 바쁘고 모내기가 한창인 5월에는 새참을 이고 논두렁 사이로 오가는 아주머니 모습을 자주 볼 수 있었다. 어린 나는 아주머니 뒤를 졸졸 따라 다니며 모밥(새참)을 얻어먹곤 했는데 그때 먹는 밥맛을 지금도 잊을 수가 없었다. 새참과 함께 꼭 따라오는 것이 막걸리였..
2008.04.18 -
현진건의 '고향' 감상하기
고향 현진건 대구에서 서울로 올라오는 차중에서 생긴 일이다. 나는 나와 마주 앉은 그를 매우 흥미있게 바라보고 또 바라보았다. 두루마기 격으로 기모노를 둘렀고, 그 안에서 옥양목 저고리가 내어 보이며 아랫도리엔 중국식 바지를 입었다. 그것은 그네들이 흔히 입는 유지 모양으로 번질번질한 암갈색 피륙으로 지은 것이었다. 그리고 발은 감발을 하였는데 짚신을 신었고, 고무가리로 깎은 머리엔 모자도 쓰지 않았다.우연히 이따금 기묘한 모임을 꾸민 것이다. 우리가 자리를 잡은 찻간에는 공교롭게 세 나라 사람이 다 모였으니, 내 옆에는 중국 사람이 기대었다. 그의 옆에는 일본 사람이 앉아 있었다. 그는 동양 삼국옷을 한몸에 감은 보람이 있어 일본말도 곧잘 철철대이거니와 중국말에도 그리 서툴지 않은 모양이었다. "고꼬마..
2008.02.26 -
고향/ 현진건
대구에서 서울로 올라오는 차중에서 생긴 일이다. 나는 나와 마주 앉은 그를 매우 흥미있게 바라보고 또 바라보았다. 두루마기 격으로 기모노를 둘렀고, 그 안에서 옥양목 저고리가 내어 보이며 아랫도리엔 중국식 바지를 입었다. 그것은 그네들이 흔히 입는 유지 모양으로 번질번질한 암갈색 피륙으로 지은 것이었다. 그리고 발은 감발을 하였는데 짚신을 신었고, 고무가리로 깎은 머리엔 모자도 쓰지 않았다. 우연히 이따금 기묘한 모임을 꾸민 것이다. 우리가 자리를 잡은 찻간에는 공교롭게 세 나라 사람이 다 모였으니, 내 옆에는 중국 사람이 기대었다. 그의 옆에는 일본 사람이 앉아 있었다. 그는 동양 삼국옷을 한몸에 감은 보람이 있어 일본말도 곧잘 철철 대이거니와 중국말에도 그리 서툴지 않은 모양이었다. "고꼬마데 오이데..
2008.01.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