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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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있는 듯한 매미의 변태 흔적들
지난주 고향에 다녀왔다. 요즘 고향에 갈 때 마다 곤욕스러운 것이 있다. 바로 피서 차량들로 인하 차량의 지정체가 심하다는 것이다. 특히 도로확포장 공사로 엉망인 용대리를 빠져 나갈 때면 스트레스가 극에 달하곤 한다. 그동안 저온현상으로 동해안은 피서 특수나 농작물 작황에 좋지 않은 영향을 주었는데 고향인 영서지방은 폭염으로 고생을 많이 했고 농작물의 작황도 좋다고 한다. 태백산맥을 사이에 두고 기온차가 심한 것은 알고 있었지만 그동안 살면서 올해처럼 극명한 것도 처음이 아닐까 생각되었다. 고향에 도착한 다음날 아침 일찍 일어나 농사일을 시작했다. 제일 먼저 1년에 한 번 치는 논에 농약 살포하기를 마치고 빨갛게 익은 고추까지 따고 집으로 내려오니 벌써 12시가 훌쩍 넘었다. 점심 식사를 하기 위해서 수..
2009.08.19 -
20년간 아가씨 없는 다방 왜 그런가 했더니...
새로운 한 주의 시작입니다. 지난 주에는 고향에 다녀왔습니다. 농사일을 짓지 못하시는 팔순아버지도 뵐겸 논에 약도 치고 고추도 수확할겸 겸사겸사 다녀왔습니다. 마침 광복절 연휴와 주말이 겹쳐 최대의 피서인파가 이동중이라 차가 지정체를 반복했지만 늘 고향 가는 길은 즐겁습니다. 아버지가 좋아하는 물곰탕을 끓여드리고 저녁에는 친구와 만나 술한잔하며 그동안 못만났던 회포를 풀었습니다. 다음날 아침부터 날이 푹푹 찝니다. 뉴스에서 폭염으로 35도를 오르내렸다는 보도가 나온 다음날도 역시 늦더위가 가실 줄을 모릅니다. 하지만 삼복이 지난 후 맹위를 떨치는 더위 덕분에 농작물은 풍작이 될듯합니다. 새벽 6시부터 논에 약을 치기 시작한 것이 9시가 될 무렵 끝났습니다. 집으로 내려와 늦은 아침을 먹고 다시 10시 되..
2009.08.17 -
아버지가 뽀빠이의 팬이 된 이유
지난 번 고향에 갔을 때의 일이다. 오전에 찾아뵌다고 하고 일이 생겨 점심을 먹고 떠났는데 피서철이라 차들이 많이 막혔다. 평일이라 집에는 팔순 아버지 혼자 계셨다. 형과 형수님은 맞벌이를 하느라 나갔고 조카는 방학중에 아르바이트 하느라 일찍 나가고 없었다. 집안에 들어서니 적적한 집안에 TV소리만 들리고 있었다. 문을 열고 안방으로 들어서니 TV를 틀어놓으신 채 잠이 들으셨다. 가만히 주방 있는 곳으로 나와 시장에서 사간 물곰을 손질해 냄비에 올려놓았다. 유독 물곰탕을 좋아하시는 아버지를 위해 올때마다 탕을 끓이곤 한다. 무와 파..그리고 고춧가루만을 넣은 채 끓이는 물곰탕을 처음에는 드시지 않으셨다. "뭔 고기가 이렇게 흐물흐물해....씹히는 맛도 하나도 없는 것이 이상해...." 그러던 아버지가 틀..
2009.08.15 -
고향에서 온 찰옥수수 직접 삶아보니.....
해마다 이맘때면 고향에는 옥수수가 지천으로 널리곤 했습니다. 특히 고향 홍천에는 가는 곳 마다 옥수수를 많이 심었는데 요즘은 옥수수 축제를 열만큼 지역 특산물로 효자노릇을 한다고 합니다. 내가 어렸을 적 그러니까 벌써 40년이 훌쩍 넘었을 그때도 지금처럼 집집마다 옥수수를 심곤 했습니다. 물론 그때야 먹을 것이 없어서 허기를 채우느라 옥수수를 심었고 지금은 건강식품으로 또는 추억의 음식으로 많이 재배를 한다고 합니다. 먹을 것이라고는 보리밥과 옥수수 밖에 없던 시절 검정 고무신을 신고 놀다 들어오면 가마솥에 어머니가 쪄놓은 옥수수가 그득하거나 감자와 함께 버무린 범벅이 놓여있곤 했습니다. 지금 생각해도 그때의 그 맛이 가장 맛있고 기억에 남는 것 같습니다. 지금은 어머니도 돌아가시고 저 또한 객지에서 살..
2009.08.01 -
이문구의 관촌수필 줄거리 읽기
나는 성묘를 위해 근년 들어 오랜만에 고향으로 내려간다. 그러나 모처럼 만에 찾아든 고향은 옛 모습을 제대로 지키고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어 나는 비애감에 젖는다. 그 중에서도 맨 먼저 가슴을 후려친 것은 왕소나무가 사라져 버린 사실이었다. 왕소나무가 서 있던 거리엔 외양간만 한 슬레이트 지붕의 구멍가게 굴뚝만이 꼴불견으로 뻗질러 서 있던 것이다. 또한 내가 살았던 옛집의 추레한 주제꼴은 한결 더 가슴이 미어지는 비감을 더해 주면서, 내가 어느덧 실향민이 되어 버리고 말았다는 느낌을 떨쳐 버릴 수 없게 한다. 나는 먼저 할아버지 산소부터 성묘를 한다. 할아버지의 산소를 찾은 나는 순간적으로 지팡이에 굽은 허리를 의지한 할아버지가 당신의 헛묘(가분묘)를 굽어보고 서 있는 환상에 사로잡힌다. 내가 태어났을 ..
2009.06.17 -
고향 이웃집에 우편함이 두 개인 이유,,,,,
지난 주 토요일 현충일 날입니다. 모교의 동문회 체육대회 때문에 고향에 가게 되었습니다. 모교로 가기 전에 아버지를 찾아 뵙고 부랴부랴 학교로 향했습니다. 학교에 도착했을 때는 벌써 체육대회가 끝나고 장기자랑이 진행되고 있더군요. 그동안 만나지 못했던 친구들과 늦은 인사를 나누며 살아온 이야기를 하는 동안 두 시간이 훌쩍 지나가 버렸습니다. 그리고 각 동문회 기수별로 따로 저녁식사와 모임을 따로 갖기로 했고 친구들은 음식점에서 저녁식사를 하고 동창이 운영하는 노래방에서 모이기로 했습니다. 나는 혼자 계시는 아버지와 저녁식사를 하고 가마 약속을 하고 부랴부랴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오는 길에 다슬기 해장국집에서 해장국을 사서 오랜만에 아버지와 단둘이 식사를 했습니다. 쌉싸름하면서 된장과 부추의 맛이 잘 어울..
2009.06.08 -
고향에 갔더니 탱글탱글한 앵두가 주렁주렁..
어제는 현충일이었습니다. 모처럼 고향에 가기로 약속했었는데 갑자기 또 일이 생겼네요. 오전 내내 부랴부랴 일을 마치고 양양의 한계령을 넘어 고향으로 향했습니다. 어쩌면 모교에서 마지막 동문체육대회가 될지도 모른다며 꼭 참석하라는 회장의 부탁으로 늦더라도 꼭 참석하마 했으니 마음이 무척이나 조급해졌습니다. 1954년 5월10일 개교이래 54회 졸업생을 배출했지만 올해는 졸업생이 12명이고 신입생은 5명 밖에 되지 않는 초미니학교로 전락했습니다. 교통이 편리해지면서 읍에 있는 중학교로 진학을 하다보니 시골 면소재지에 있는 학교는 점점 수가 줄어 폐교될 위기에 처했다고 합니다.참 딱하지만 뾰족한 대안이 없다는 것도 동문들의 한결같은 고민이었습니다. 학교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체육대회가 끝나고 장기자랑과 경품추..
2009.06.07 -
친구가 동창회 카페에 들어오지 않는 이유
이번 설날은 마음에 여유가 없는 명절 같았다는 생각이 든다. 만나는 사람마다 좋은 소식 보다는 나쁜 소식이 더 많았기 때문이다. 고향에 가도 만날 수 있는 친구들이 점점 줄어들고 오지 못하는 친구들 사연들이 가슴을 아프게 하기도 한다. 영업용 택시운전을 하던 친구는 뇌졸중으로 쓰러진지 벌써 다섯 해가 지났는데도 아직 병세가 호전되지 않았고 또 몇몇은 병으로 세상을 떠나기도 했다. 남아있는 친구들 중에 사업이 부도가 나 고향에 오지 못하는 친구들도 있었다. 고향에 온 친구들과 만나 술 한 잔 하면서 이런 얘기 저러 얘기를 나누다 동창 카페에 대한 이야기로 화제를 돌렸다. 그런데 한 친구가 얼굴색이 변하며 카페 이야기를 하지 말자고 했다. 왜그러냐고 묻자 고개를 홰홰 젓는다. 더 궁금증이 생긴 친구들이 채근..
2009.01.27 -
자동차 보다 더 앙증맞은 농기계
양양을 나갔다 들어오는 길에 좌측에 빨간 자동차 하나가 눈길을 끕니다. 가만히 보니 농촌진흥청과 한국농업대학에서 주최한 '전과 특작 기계화와 에너지 절감 기술교육 연시상' 이 열리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지금 전시회 준비중이었는데 미리 한번 둘러보기로 했습니다 그중에 맨처음 내 눈에 띈 것은 빨간 동력 운반차였습니다. 이것은 스피드 스프레이어라는 기계인데 자동차에 가장 근접한 4륜구동 시스템이라고 합니다. 보면 볼수록 마음에 쏙 드는 디자인입니다.약제 살포용 기계라고 합니다. 이것은 다기능 동력 운반차라고 하는군요 바퀴형과 궤도형이 나온다고 합니다. 이것은 동력 퇴비 살포기라고 합니다 .승용형으로 살포와 운반이 동시에 가능하도록 만들었다고 합니다. 이상한 것은 전조등이 짝눈입니다....일부러 그런 것 같은..
2008.06.19 -
팔순 아버지의 눈물을 보다
2007년 12월 갑자기 어머니가 돌아가셨다. 너무나 황망해서 가족들 모두 정신이 없었는데 아버지는 슬픔을 억누르시고 장례 준비에 소홀함이 없도록 뒷일을 다하셨다. 늘 아버지의 가장 든든한 후원자이셨고 평생 말동무셨던 어머니의 죽음으로 가장 큰 충격을 받은 것은 아버지셨을텐데...슬픔을 안으로 감추시던 그 모습이 지금도 선한데....어머니 돌아가시고 한 달만에 우리 집으로 오신 아버지의 모습은 너무도 수척해지셨다. 내년이면 팔순이시지만 늘 활기차시고 건강하셨는데 어머니 돌아가신지 석 달만에 몰라보게 야위어 보이는 아버지.... 병원에서 영양제 주사도 맞고 팔팔한 해산물로 요리를 해드려도 입맛이 없다시던 아버지...이번 어버이 날 고향에 가서 아버지 농사일을 거들어 드리는데 고추대를 세우다가 잠시 쉬는 사..
2008.05.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