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척인줄 알고 묏자리 내주었더니

2011. 11. 19. 06:00세상 사는 이야기

지난 주에 예고없이 친구가 찾아왔다.
고등학교와 대학을 함께 다닌 막역한 친구였지만 사는 게 바빠 만나기 쉽지 않았는데 불쑥 찾아와 준 것이 너무나 반가웠다.
고향을 지키며 인삼 농사를 짓고 있는 친구는 올해 수확을 마치고 다시 준비를 하는중에 짬을 냈다고 한다.
그런데 친구와 저녁식사를 하며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황당한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몇해전에 갑자기 찾아와 친척이라며 종손들에게 인사를 나누고 행사 때 마다 참석하던 사람이 2년전 종중 산에 자신의 아버지 묘를 쓴 이후로는 나타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집안의 장손인 친구는 대학졸업 후 고향에서 농사를 지으며 종중 산의 관리 외 모든 일들 도맡고 있었는데 어느 날 갑자기 시제를 지내는 곳에 친척이라며 한 사람이 나타났다고 한다.
나이가 50이 넘었는데 족보를 잃어버렸다며 자신의 아버지 함자와 형제들의 돌림자를 대며 그동안 수소문 해서 찾느라 고생을 많이 했는데 이렇게 찾을 수 있어 다행이라며 종중 어르신께 인사를 올렸다고 한다.

가까운 친척이야 기억을 하지만 왕래가 끊긴 지 오래인 친척도 많았던 터라 모두들 그려러니 넘어 갔고 그후 종중에 일이 있을 때 마다 찾아와 열심히 종중 일을 도왔다고 한다.
그렇게 친인척의 신망이 높아지던 어느 날 조심스럽게 친구에게 공동묘지에 있는 자신의 부모 묘를 이장하고 싶다는 이야기를 꺼냈다고 한다.
친척인데 종중산에 이장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한 친구는 문중 어르신들과 상의해서 묘지터를 내주었고 2년전에 이장을 끝냈다고 한다.
 


그런데 이장을 한 후 부터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고 한다.
그렇게 종중 일에 발벗고 나서던 그 사람이 그 후 발길을 뚝 끊었다고 한다.
나중에 안 사실이었지만 그 사람은 의도적으로 친척이라며 접근한 뒤 자신의 부모 묘를 이장하고 자취를 감춘 것이었다고 한다.

자신의 부모 묘가 있던 공동묘지가 대규모 리조트 공사로 인하여 이장을 해야한다는 사실을 미리 알고 있던 그 사람은 친구의 종중에 후손이 워낙 많아 잘 모를 것이라는 점을 이용해 친척을 사칭해 접근했고 결국 원하던 대로 아무 비용도 들이지 않고 이장을 한 후 보상으로 나온 이장 비용은 자신이 꿀꺽하고 사라진 것이라고 했다.

"참 별일이 다 있네......그럼 친척을 사칭한 사람의 묘는 어떻게 했나?" 
친구에게 묻자 허탈한 듯 웃으며 한 마디 합니다.
"뭘 어떻게 하나 ...오죽하면 그짓을 하고 부모 묘를 옮겨 놓았겠나....나중에 몰래 성묘 오다 만나면 따끔하게 한 마디 해주고 말아야지...."
"하긴 자네 종중 산이 워낙 크니 좋은 일 했다 생각하시게...."
친구를 위로해주면서도 내심 기분이 언짢았습니다.

아무리 눈 뜨고 코 베어 가는 세상이라지만 친인척을 사칭해 묘를 이장하고 사라지다니....
정말 요지경 세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