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가 애지중지하는 25년 된 옷걸이

2009. 5. 6. 17:16세상 사는 이야기

아내가 가장 아끼는 옷걸이가 하나 있다.처음부터 애지중지 했던 것은 아니지만 결혼에서 20년간 이리저리 이사를 다니다 보니 잃어버리거나 낡아 부러져서 모두 사라져 버리고 이제 단 하나 남았기 때문이다. 결혼하기 전 의상실에 있을 때 부터 갖고 있었다고 하니 정확히는 25년이 넘은 셈이다. 아내와 나는 대학 다닐 때 처음 만났다. 아내는 의상실에 다니고 있었고 나는 대학을 다니며 아르바이트를 할 때인 대학 2학년 때 처음 만났다. 낮에는 학교에 다니고 밤에는 작은 호프집에서 서빙도 보고 통키타도 치고 주방도 보는 등 1인 4역을 하고 있을 때였다. 그때 아내의 친구들이 이곳에 자주 들리게 되었고 동갑이라 자연스럽게 친구가 되었다. 늘 가난했던 나는 학교와 아르바이트 일 외에는 한 눈 팔 시간이 없었는데 모처럼 시간이 날 때면 아내의 친구들이 동행을 하게 되었고 주말이면 공원이나 낚시를 하며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처음 아내는 나와 늘 거리를 두었는데 유독 친구사이라는 것을 강조하며 일정한 거리를 두었다. 나 역시도 그런 아내가 더 편했고 스스럼 없이 고민을 털어놓을만큼 가깝게 지내게 되었다.
나중에 안 이야기였지만 아내는 자신의 친구에게는 내가 애인이라는 것을 공공연히 이야기하곤 했다고 한다. 당시에는 음악다방이 최고의 인기를 끌고 있었는데 주말이나 학교 수업이 없는 날이면 지하 음악다방에 모여 앉아 커피 한 잔에 자신이 좋아하는 음악을 신청하고 기다리는 맛이 최고였었다. 당시에 기억에 남는 음악들중에 폴 앵카의 크레이지 러브(Crazy love),장 프랑소와 모리스(Jean Francois Maurice)가 부른 모나코(monaco),스모키의 리빙 넥스트 도어 투 앨리스 (Living Next Door To Alice),에릭 글립튼의 원더풀 투나잇(Wonderful Tonight),영사운드의 등불, 홍삼트리오의 기도,김학래의 '내가'"슬픔의 심로'사월과 오월의 '화'등을 즐겨 듣곤 했다. 당시 아내는 의상실에서 가장 유능한 재단사라서 시간을 내기가 힘들어 서로 짬을 내서 만나기가 여간 어렵지 않았다.특히 의상실 사장님은 아내를 친동생처럼 아껴주었지만 남자 친구에게서 전화 오는 것을 무척이나 싫어했다고 한다. 당시에는 휴대폰이 없었기 때문에 한 번 약속을 하면 무작정 다방에서 올 때 까지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어떤 때는 약속시간이 지난 후 두 시간을 넘게 기다린 적도 있었다. 손님 옷을 제때 끝마치지 못하면 퇴근이 늦어지기 때문이었다. 그래도 음악과 시집 한 권이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기다렸다. 물론 다방 아가씨에게 따가운 눈총을 받기 일쑤였지만 딱히 다른 곳에서 기다릴만한 곳이 마땅치 않아 염치불구하고 죽치곤 했었다.


졸업을 하고 서울에서 직장 생활을 시작하면서 처음에는 서로 편지로 연락을 주고 받았으나 이곳저곳 옮겨 다니다 결국 연락이 끊어지고 말았다. 서울이라는 동네에서 살아남기가 그리 녹록치 않았고 수없이 직장을 옮겨 다니는 동안 아내에게 연락할 엄두도 내지 못했다. 그러자 보다 못한 아내가 고향집으로 찾아가 아버지를 만났고 빈손이라도 함께 시작하겠노라는 아내의 말에 아버지는 일사천리로 일을 진행해 한 달만에 결혼식을 올리게 되었다. 당시 병중이셨던 장인 어르신 대신 의상실 사장님 내외가 장인 장모를 대신해 신부입장과 부모님 자리를 대신 빛내주셨다.변변한 프로포즈 없이 쫓기듯 어렵사리 결혼을 해서 지금껏 잘 살고 있는데 정작 의상실 사장님은 불행한 일이 끊이지 않았다. 시의원에 나가 낙선을 하고 또 자식이 우울증으로 수없이 자살을 시도하더니 결국 교통사고로 운명을 달리했다. 지금은 문을 닫은 의상실.....아내가 결혼하고 난 후 2년 후 의상실 문을 닫게 되었다. 물론 사양산업으로 어쩔 수 없이 밀려난 것이겠지만 아내가 결혼하면서 의상실을 떠난 것이 큰 원인이 되었다고 했다.
아내가 결혼 전 자신의 일처럼 최선을 다했던 의상실.......결혼 후 20년이 지난 지금 그때 의상실의 흔적이 남아있는 것이 이 옷걸이 밖에 없다는 아내......
남들이 봐서는 그저 낡고 평범한 옷걸이지만 아내에게만은 젊은 시절 추억과 청춘이 오롯이 담겨 있는 것이기에 그 어떤 것보다 소중하게 간직하는 물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