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 문외한 아내의 WBC 관전기

2009. 3. 23. 17:19스포츠 인사이드

지난 일요일이다. 2009년 WBC 4강에 오른 한국이 베네수엘라와 경기를 치르는 아침이었다. 아들과 함께 일찌감치 할 일을 마치고 거실에서 경기를 시청하고 있는데 방에서 책을 보던 아내가 슬그머니 거실로 나와 앉았다.
순간 아들과 나는 긴장했다. 일요일에는 우리집 TV의 채널권을 아내가 쥐고 있기 때문이었다. 평소 TV를 자주 볼 수 없는 아내는 일요일만큼은 자신이 보고싶은 것을 보게 해달라고 해 그러마 약속했었다. 아내가 보는 것은 대부분 드라마나 패션에 관한 프로그램이다. 드라마에 나오는 연기자들이 입는 의상이나 패션에 관한 것에 관심이 많기 때문이다. 반대로 스포츠는 질색이다. 전국민이 좋아한다는 축구도 결과만 보면 된다는 식이었다.
그런 아내가 거실에 나와 앉으니 긴장을 할 수 밖에.....여차해서 다른 곳을 보자하면 아들은 컴퓨터로 달려가 보려고 할 것이고 나역시도 아들방으로 밀려날 수 밖에 없다.
그런데 왠일로 누가 이기고 있냐고 묻는다. 한국이 1회에 5점을 났다고 하니 몇점까지 나야 하느냐고 묻는다. 9회까지 가야한다고 하니 한 회에 몇분이냐고 묻는다. 한 팀에서 세 명이 아웃되어야 한다고 하니 어떡해야 아웃되는 것이냐고 또 묻는다. 아들과 나는 채널을 다른 곳으로 돌릴까 열심히 설명을 해주었다. 안타와 2루타 3루타 그리고 홈런과 파울에 대해서도 찬찬히 설명을 해주었다. 큰 점수 차이로 이기고 있으니 마음이 편안해 차분하게 설명을 해주었다. 만약 박빙의 승부를 펼쳤다면 일일이 대답하지 않고 그냥 아들 방으로 들어갔을지도 모른다. 
그때였다 베네수엘라 1회말 공격이 끝나고 2회 1사 2루 상황에서 선발투수 실바의 직구를 받아쳐 좌측 담장을 넘겨 버렸다.아들과 나는 탄성을 질렀고 아내는 파울아니야 파울 하면서도 박수를 치면서 좋아했다.
좌측의 긴폴대 쪽으로 날아간 공을 제대로 보지 못한 아내가 파울인줄 착각한 듯했다.

                                                                                                     <사진출처: 뉴시스>

점수차가 7대0으로 벌어지자 신이난 아내는 연신 아들과 내게 질문 공세를 퍼부었다. 아나운서의 목소리를 듣다가 모르는 용어가 나오면 열심히 물으며 경기에 열중했다. 스트라이크는 뭐고 볼은 뭐냐는 둥 커브와 직구 슬라이더등등 소나기 질문을 퍼붓는 아내에게 아들과 나는 아는만큼 성심껏(?) 대답을 해주었다.
채널을 다른데로 돌릴까 걱정보다는 이번에 아내가 야구에 재미를 들여야 다음에 편하게 야구를 볼 수 있을거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차곡차곡 쌓이는 한국팀의 점수만큼이나 아내도 야구에 대해 조금씩 눈을 뜨기 시작했다. 그리고 10대 2 대승으로 경기가 끝난 후 아내가 박수를 치며 야구도 알고보니 재미있다며 웃었다. 그러면서 비로소 야구시청에 열중한 속내를 털어놓았다. 요즘 가게에 나가면 사람들이 야구 이야기를 많이 하는데 자신은 도대체 한 마디도 할 수 없었다는 것이었다. 그동안 일본과 네번씩이나 경기를 가졌는데 한번도 보지 못했냐며 친구에게 핀잔까지 들었다고 한다. 많은 사람들과 대화를 하는데 주인인 자신만 왕따가 된 기분이었다며 오늘 아들과 내 설명을 들으며 야구를 보았지만 아직 뭐가 뭔지 잘 모르겠고 재미있는 줄도 모르겠다고 했다.
하지만 다른 경기는 몰라도 한국이 하는 경기는 꼭 보면서 천천히 야구에 대해 배워보겠다고 했다.
전국민이 열광하고 있는 2009년 wbc 경기가 대망의 결승전만 남기고 있다. 아내는 그동안 한국과 일본이 네 번 싸우는 동안 지그재그로 승패를 나누어 가졌다며 이번에는 한국이 이길 차례라며 왕초보다운 분석을 내놓았다.
어찌되었든 아내의 분석이 꼭 들어맞기를 바라면서 내일 아침에도 아내와 함께 결승전을 시청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