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생 처음 아들과 동네 이발소에 갔더니....

2009. 2. 4. 13:22세상 사는 이야기

반응형

설날이 지나고 일주일이 지났다. 서울에서 입시준비를 하다가 집으로 내려온 아들의 머리가 너무나 더부룩해서 함께 머리를 깍으러 갔다. 머리가 곱슬머리인 아들은 곱슬머리가 싫다며 스트레이트 퍼머인가를 하곤 했는데 한번 할 때 마다 4~5만원이 들곤했다.12시가 다 되어 동네 이발소에 들어가려고 하자 아들이 펄쩍 뛰며 이발소는 싫다고 한다.어차피 왔으니 이번만 아빠와 함께 가보자고 했더니 마지못해 이발소로 들어섰다. 안에는 이발사 경력 30년이 넘은 아저씨와 아주머니가 나란히 앉아서 TV를 보고 있다 반갑게 맞아 주었다. 아들은 이런 곳이 낯선 듯 쭈뼛거려 먼저 이발을 하라고 했다. 아들이 마지못해 이발을 하는 사이 낡은 TV에서는 12시 뉴스가 나오고 있었는데 원혜영 민주당 대표의 국회 연설에 대한 내용과 부녀자 연쇄 살인범 강호순과 용산 참사 소식이 이어지고 있었다. 아들은 이발사 아저씨에게 이것저것 주문을 했고 이발사 아저씨는 연신 알았다며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면서 우리집에 아이들이나 학생이 오는 것이 많아야 1년에 두세명인데 이렇게 와주니 고맙다며 껄껄 웃으셨다.아들은 보기싫은 곳만 약간 자르고 난 후 자기가 원하는 미용실에 가서 다시 깍으려는 듯 짧게짧게를 연발했다. 아들이 머리를 다 깍고 난 후 이발을 하려고 의자에 앉는데 아들이 먼저 집에 가겠다고 일어섰다. 멀뚱멀뚱 기다리기가 불편했는지 지척에 있는 집으로 걸어간다며 이발소를 나섰다.


아들을 먼저 보내고 난 후 이발을 하면서 아저씨에게 요즘 경기가 어떻냐고 물어보았다. 그러자" 요즘 경기 좋은 곳 있어요?" 하고 반문했다.
옛날 생각을 하고 "설날 며칠 전 부터 많이 바쁘지 않으셨어요?"하니 그게 언제적 이야긴지 모르겠다며 웃으셨다. 20년전만 해도 명절 때면 며칠 전 부터 손님들로 넘쳐 하루종인 머리를 깍아주고 나면 팔이 아파 잠을 못이룰 정도였다고 한다. 그때는 정말 남녀노소 가릴 것 없이 이발소를 찾았는데 미용실이 호황을 누리고 온천이나 목욕탕에 이발소가 생기면서 부터 손님이 분산되기 시작하더니 지금은 학생이나 젊은 사람들은 동네 이발소를 찾지 않는다고 했다. 이곳에 이사온지 10년째인 이발소 아저씨는 단골 손님 말고는 뜨내기 손님은 아예 없다며 쓴웃음을 지으셨다. 내가 이곳에 단골로 다닌 것도 벌써 5년째인데 그전에는 주로 미용실에서 커트를 했었다. 아내의 성화로 함께 다니던 미용실은 인테리어가 고급스럽고 진동 안마의자에서 머리를 감겨 주는등 최신 시설이었지만 동네 아줌마들의 수다와 이리저리 왔다갔다하는 아이들 때문에 정신이 없어 싫었다.
미용실에서의 커트는 가격이 이발소보다 조금 낮아서 그런지 깍고 나면 무언가 허전함을 느끼곤 했다.
그래서 찾아온 곳이 동네 이발소였는데 이곳은 이발사가 정성들여 가위질을 해주는 것은 물론이고 목 어깨 얼굴 등 아주머니의 수준급 안마와 얼굴 전체를 세세하게 면도 해주고 귀지를 제거해주고 코털까지 정리해주는 세심함이 좋았다. 그중에 가장 마음에 드는 것은 뭉친 근육을 풀어주는 아주머니의 손맛인데 받고 나면 너무나 개운한 기분이 들곤했다.또 대부분 손님들이 장년이거나 나이드신 할아버지다 보니 이런 저런 살아가는 이야기를 함께 나며 공감할 수 있다는 것도 좋았다. 가격은 15,000원 인데 단골고객이라  12,000원만 받는다.
약 한 시간 동안 머리도 깍고 안마도 받으며 함께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시간이 가는 줄 모른다.
누구나 자신이 좋아하는 단골 미용실이나 이발소가 있겠지만 나는 옛 추억이 물씬물씬 풍기는 동네 이발소가 정말 좋다. 집에 오니 아들이 이발소가 너무 낡고 아저씨가 너무나 나이가 많고 동작이 느려서 싫다고 했다. 미용실에 가면 원하는 대로 빠르게 해주는데 이발소 아저씨는 말뜻을 잘 알아듣지 못하는 듯 했다고 했다. 아들이 원하지 않는 곳에서 머리를 깍으려니 꽤나 마음 불편했었던 것 같았다. 하지만 아들의 이야기처럼 이발사가 너무 나이가 많고 낡고 후미진 곳에 있는 이발소지만 내게는 너무나 편하고 정감이 가는 곳인데 어쩌겠는가... 앞으로 아들과 함께 갈 수 없어도 이발소가 문을 닫기 전 까지는 변함없이 동네 이발소를 애용하게 될 것이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