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몸 때문에 죽다 산 창녀 프뤼네

2008. 7. 22. 15:06세상 사는 이야기

매춘은 언제 시작되었을까? ....이것은 '매춘의 역사'라는 책의 제1장 모두에 나오는 화두다. 인류 역사상 매춘의 시작이 언제인가를 두고 논쟁이 있을 수 있다는 조심스런 견해에서 출발한다는 이책은 고대 오리엔트에서부터 그리스인 로마인 그리고 기독교와 이슬람교와 인도와 중국 미국등 역사속으 매춘에 대해 다양한 참고문헌을 통해 소개하고 있다.
그중에 그리스의 고급창녀였던 프뤼네의 이야기가 나의 귀를 솔깃하게 한다.
헤타이라(hetaira)라 불리는 그리스의 고급매춘부였던 프뤼네는 그저 '몸을 파는' 여자가 아니라 철학, 정치, 예술 등을 토론할 수 있는 교양을 갖춘 여성으로 당대의 저명한 정객, 철학자, 장군 등의 비공식파트너였다고 한다. 헤타이라가 되기 위해서는 몸을 치장하는 법과 대화술, 남성의 욕구를 이해하는 법, 문학과 예술 등 지성을 갖추도록 특별교육을 받았는데  이것은 조선시대 선비들이 최고의 기녀들에게 불렀던 해어화(解語花)와 헤타이라와 비슷하지 않았을까 생각하게 하는 대목이다..

해어화(解語花)란 말은 자못 운치가 있다. 해어화(解語花)란 ‘말을 알아듣는 꽃'으로, 후에는 미인(美人)을 뜻하는 의미로도 쓰였다. 따뜻한 초여름의 어느 날이었다고 한다. 당나라의 수도 장안(長安)의 태액지(太液池)란 연못의 연꽃은 눈이 부실 정도로 아름다웠다. 현종(玄宗)과 양귀비(楊貴妃)의 행렬이 연꽃을 감상하기 위해 이 연못에 이르렀다. 그러나 현종의 눈에는 그 어느 것도 옆에 앉아 있는 양귀비보다 더 아름다울 수는 없었다. 그래서 주위의 궁녀를 돌아보면서 "여기 있는 연꽃도 해어화(解語花)보다는 아름답지 않구나."라고 하였다고 한다. 원래 해어화(解語花)란 천하절색 양귀비를 두고 한 말이었던 것이다. 조선시대 선비들은 그들의 시와 풍류를 알아듣는다 하여 기녀(妓女)들을 해어화(解語花)라고 하였다. 그러나 선비들과 더불어 시문(詩文)을 수창할 수 있는 문학적 재주를 지녔다고 하더라도, 양귀비와 같은 절색의 기녀(妓女)가 아니라면 해어화(解語花)의 칭송을 들을 수가 없겠다
<출처: 다음사전>

이말은 지색을 겸비한 사람 중에 특히 양귀비와 같은 절색이어야 해어화라는 소리를 들을 수 있다는 이야기다.
당대의 유명한 조각가 프락시텔레스가 <크니도스의 아프로디테>를 만들 때 그녀를 모델로 하여 사랑의 여신 아프로디테를만들었다고 할 정도로 외모가 빼어난 헤타이라였으니 그녀를 해어화라 불러도 손색이 없을 듯하다.프뤼네의 아름다운에 반한 사람들이 그녀의 몸을 탐하려 그녀의 주변을 서성거렸고 그중에는 내놓으라는 세도가들도 많았다고 한다.그중 에우티아스라는 세도가는 프뤼네의 마음을 얻지 못하자 알몸으로 수영을 했다는 이유로 신성모독에 음란죄로 프뤼네를 고발해 재판을 받게 되는데 '매춘의 역사'에서는 다음과 같이 기술하고 있다.


프뤼네가 아테네에서 재판을 받게 되었을 때 변호인 휘페리테스는 그녀가 불리하다고 판단하고는 갑자기 그녀의 의복을 갈기갈기 찢어 그녀의 앞가슴을 풀어버렸다.
그러자 재판관들은 프뤼네의 아름다움에 완전히 기가 꺽여버렸고, 도저히 그녀에게 죄가 있다는 생각을 하지 못하게 되었다.프뤼네의 몸을 본 원로들은 '저 정도의 몸매라면 포세이돈 신에게도 불경하지 않다' 라며 무죄를 선고한다. 전해지는 바로는 프뤼네는 아름다운 몸매를 지니고 있었으나 얌전했고 남앞에 알몸을 드러내 보이는 것을 몸시 싫어했다고 한다. 제사 때마저도 옷을 벗기를 거절했으나 바다의 포세이돈 제삿날에는 옷을 입은 채 바다 속으로 뛰어들어 포세이돈 신에게만 볼수 있도록 알몸을 벗었다고 한다.
조각가 프락시텔레스가 모델이 되기를 청했을 때 승락한 것도 그녀가 무엇인가 자신에게 영원한 기념이 될만한 것을 남겨두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또 테베의 무너진 성벽을 재건하겠다고 제안하면서 테베의 시민들이 다음과 같은 글귀를 새겨넣어 줄 조건을 제시하였는데 그 글귀는 바로
"알렉산더가 파과하고 프뤼네가 재건함"이었다고 한다.<출처: 매춘의 역사>


신성한 장소에서 옷을 벗었다는 이유로 기소된 그녀가 또 다른 신성한 장소에서 알몸을 드러냄으로써 목숨을 건진 것은 정말 아이러니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녀가 무죄로 석방되고 난 후 다음과 같은 포고령이 내렸젔다고 한다.
변론을 하는 자는 누구를 막론하고 탄식하거나 슬퍼하지 말 것 그리고 피고인이 되는 남자나 여자를 군중심리로 재판하지 말 것.....
판결을 뒤바꿀 정도로 아름다웠다는 프뤼네...그녀의 얼굴은 어땠을까?
그 궁금증을 풀어줄 것은 장 레옹 제롬(Jean Leon Gerome)의  그림 한 편 뿐이라는 것이 아쉬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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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 레옹 제롬(Jean Leon Gerome,1824~1904)이 그린 <최고재판관 앞에 선 프리네>(Phryne Befor  The  Areopagus, 186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