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암 박지원의 술낚시<오백년기담일화>

2008. 1. 16. 22:20마음의 양식 독서

연암의 술낚시

김 화 진(金和鎭)

조선 정조팔・구년경의 일이었다. 기나긴 봄날의 해가 서산에 걸릴 때 서울 남산골에 살고 있었던 현직 승지 이모가 그날밤 당직이어서 시간을 맞추어 대궐에 들어가기 위하여 북다른재(현 명동 천주교당)에 이르니 길가의 조그마한 다 쓰러져 가는 초가집 문 앞에 팔척 장신인 헙수룩한 중노인이 망건도 쓰지 아니한 머리에 정자관(程子冠)만 삐뚜름하게 얹고 섰다가 이승지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처럼 지나가는 승지의 남여(藍與) 앞을 가로 막고 두 팔을 들어 길게 읍을 한다.
이승지는 난데없이 길 가에서 초면 인사가 그것도 몸차림마나 제대로 하지 못한 사람이었지만 인사를 받은 이상, 하는 수 없이 남여에서 내려와 답례로 읍을 하였다.
그랬더니 그 사람이 이승지더러
“영감 이 집이 내 집이오. 잠간 들어와 수어(數語)나 합시다” 한다.
이승지는 첫째 그 다답지아니한 모양도 는꼴이 틀리고 들째로 번(番) 시간도 되었으므로
“지금은 공무로 입직하러 가는 길이니 이 다음에 다시 심방(尋訪)하겠소”
하며 남여로 올라가려 하니 그 사람은 눈을 크게 뜨고 기세도 대단하게 승지의 길을 막았다.
이승지에게 그 사람은
“아따! 근근(近君)하는 시종신(侍從臣)이라 자세가 대단하군. 해가 아직 늦지 아니했는데 담배 한대 피우고 갈 여가도 없단 말이오”
한다.
이승지는 그 사람의 책망 비슷한 말씨에 할 수 없이 발을 돌려 그 집으로 따라 들어갔다. 살펴보니 먼지가 가득한 한간 방이나 웃목에는 서책이 가득하였다. 주인은 다시 승지에게 읍하고 아랫목에 놓인 초방석(草方席)으로 인도하니 승지는 그 말대로 그 방석에 앉았다. 그 다음 주인은 아무 말없이 앉았다가 안문으로 향하여
“손님이 오셨으니 술 내오너라”
고 한다.
조금 뒤에 헌 누더기로 간신히 앞을 가린 여하인이 걸직한 막걸리 한 뚝배기와 프르둥둥한 서산 상 사발 하나와 김치 한 보시기를 모 떨어진 소반에다 얹어 내다놓으며 손님을 기웃기웃 쳐다보고 간다. 주인이 그 상을 손님 앞에 놓고 뚝배기에서 상사발에다 막걸리를 따르면서도 아무 말이 없다. 이승지는 당초부터 주인이 하는 짓이 이상하여 들어오기는 하였으나 마음이 불안한 것을 간신히 참고 있는 중인데 그 막걸리 따르는 것을 보고 속마음으로 크게 놀래어 불안하였다.
‘자 막걸리를 먹으라고 하면 어쩔까’
하고 주인의 거동만 주시하고 있었다. 술을 따라 놓고도 말없던 주인은 혼잣말로
“귀한 손님이 이러한 막걸리를 자실 수야 있나 내나 마시지.”
하고는 훌쩍 들어마시고는 김치국을 조금 마신 뒤에 다시 한사발을 더 따루어 놓더니
“이것은 내 차례니 손님의 말 기다릴 것 있나?”
라고는 또 훌쩍 들어마신다. 그리고 나서는 안문으로 향하여
“술상 내가라”
고 한다.
승지가 살펴보니 뚝배기 술이 원래 두 사발 밖에는 없는 것이었다. 여하인이 와서 상을 치운 뒤에 주인은 승지에게 다시 읍하고
“영감 대단히 미안하오. 오늘 영감이 내 술 낚시에 걸렸소. 바쁘실 텐데 어서 가십시오.”
한다.
이승지가 답례를 하며
“대체 단신은 누구시며 술 낚시라는 것은 무슨 말씀이오.”
하고 물었다.
승지의 물음에 대하여 주인은 껄껄 한바탕 웃고 나서
“술 낚시질꾼 성명은 알아 무엇하겠소. 내 집이 가난하고 내가 술을 좋아하므로 가속이 간신히 반주 한잔씩은 준비하여 주나 다시는 아니 주고 손님이 오셨다면 손님술 대작할 한 잔을 내보내 주는구려. 오늘도 저녁에 술 생각이 간절하였으나 얻어 먹을 방법이 없고 보니 통정할 수 있는 친구가 혹 지나가면 들어오라 하여 술을 낚구어 낼가 하고 문 앞에서 기다렸으나 오늘은 아무도 못 만났기에 해는 저물어가고 해서 초조하여지는데 마침 영감이 지나가시니 인급계생(人急計生)이라고 내가 영감을 내 집으로 유인하여 집에만 들어오시게 하면 내 계획은 달성될 것이라고 생각하여 불고체면하고 인사를 청한 것이나 인사를 아니 받으셨다면 모르겠거니와 받은 이상에는 초면 치구를 괄시는 못하는 것이라 꼭 따 라 오실 것이 아니오. 나는 이 방에 손님이 있는 것만 보이면 술은 마실 수 있거든여. 아까 계집하인이 기웃기웃한 것은 전에 내가 없는 손님을 있다 하고 술을 낚는 일이 있었기 때문에 그 뒤로는 손님 술을 내왔다가도 손님이 없으면 도로 가져가는구려. 그래서 참말로 손님이 있나 없나 보아 없으면 도로 가져가려고 기웃거린 것이오. 오늘의 이 신기 묘산이 적중하였으니 누추한데 오래 앉아 계실 것이 없소. 어서 가오.”
하며 문 밖까지 전송을 하여주는 것이었다.
그 집에서 나와 다시 남여를 타고 대궐로 향하는 이승지는 방금 자기가 당한 일이 맹랑하기도 하거니와 그보다도 술꾼의 술낚시질의 이용물 노릇을 한 것이 지극히 분하였다. 그날 밤 승정원에서 이승지와 함께 번을 들은 승지 남공철이 이승지의 안색이 좋지 못함을 보고
“오늘 밤에는 영감의 기색이 좋지 못하니 댁에 무슨 연고가 생겼소?”
한다.
이승지는 쓴 웃음을 지으며
“집에는 별 일 없지만 오는 길에서 괴상한 일을 당하였기 마음이 편치 못하오.”
하면서 오는 길에 당한 일을 이야기하였다. 그때에 承傳邑 내시가 나와 상감마마께옵서 입직한 승지를 부른다고 한다.
승지가 명에 의하여 어전으로 입시하니 정조가 하교하되
“오늘 밤은 하도 심시하기에 시종신들과 한담으로 소견할가 하여 부른 것이다.”
하며 옥당들의 주담(奏談)이 끝난 뒤에 두 승지를 바라보시며
“너희들도 말을 해보아라.”
하시는 것이었다.
이승지가
“오늘 번들어 오는 길에 당한 일을 말하려고 했으나 비설(鄙屑)하여 못 아뢰나이다.”
하니 정조는
“군신의 사이는 가인 부자와 같으니 친구에게 말하려던 것을 임금에게 어찌 말 못할 것이냐. 본대로 당한대로 말하라”
하신다. 이에 이승지는 오늘 입궐하러 들어오다가 북다른재에서 당하였던 일을 자세히 주달하는데 도중에서
“술을 따라 놓고도 권하지 않더라……”
는 구절까지 이르렀을 때 정조가 싱그레 웃으시면서
“그만치만 들어도 나는 그 사람이 누구인가를 짐작하겠다”
고 하신다. 이승지가 그 다음 일을 다 아뢴 뒤에
“신은 그 사람이 실성한 사람일 것으로 생각됩니다”
하고 부언하니, 정조가 다시 웃으시며
“그 사람이 실례한 것이 아니라 네가 몰지식하다. 너는 문과도 하고 벼슬도 하였으나 사책에 오르지 못하되 그 사람은 지금은 방달한 미친 사람 비슷하지만 사책을 빛낼 사람이다. 그 사람이 정녕코 박지원일 것이다”
하시니 이승지는 자기가 고루하여 문봉으로 일세를 능가하는 연암선생 박지원을 못 알아 본 것이 부끄러워 얼굴을 붉히며 물러 나왔다. 그 옆에 시립하였던 남공철이 다시 부복하여 아뢰기를
“전하의 지금 하교를 듣자오니 옛말의 지신막여군(知臣莫如君)이 적실한 말씀이외다. 성명지치(聖明之治)에 아래에 그런 사람이 봉초(篷草)에 매몰되면 옥의 티같이 성루가 될까 합니다. 이미 통촉하셨으니 유현(遺賢)의 탄이 없으시길 바랍니다”
하였다.
정조가 남승지에게 대답하시기를
“내가 유현을 하려는 것이 아니라 박지원의 문장이 섬부(贍富)는 하나 정도로 아니 나가고 권도로 나가므로 그 버릇을 징계하려고 모르는 체하였더니 그대도록 기한에 빠진 것을 몰랐다.”
하시고 즉시 초임을 시키시고 일년 이내에 안의(安義) 현감을 제수하셨다.
박연암은 소년시대에는 경제에 큰 뜻이 있었던 것이다. 시대가 허용을 아니하니 다시 문장변으로 들어가서 사백년래에 내려오던 고문사체를 개혁하려 하니 박제가, 이덕무, 김매순 등이 다들 그의 문도라, 이고증(泥古症)에 걸린 당시 문사들이 연암을 이단이라고까지 지목하고 정조에게 박지원은 세상을 버려놓은 사람이라고 아뢰어 정조도 그를 미워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박연암은 자기의 초지를 그대로 굳게 지키어 흔들리지 아니하였으며 그 부인도 남편이 세상에 나서지 못하는 것이 본뜻을 지키기 위하여 그러는 것이라고 안타깝게 생각하고 바느질 품도 팔고 갖은 고초를 당하여 가며 밤에 글 읽을 때 쓸 초와 좋아하는 술은 조금씩 이어주되 술의 거성인 연암을 만족되게까지 할 재력은 없으므로 매일 한두잔 정도의 술도 그 夫人이 진심 갈력하여 주는 것이었다.
그러나 술 생각이 나면 연암은 가끔 그러한 짓을 하였던 것이며 그 날은 공교롭게도 입직할 승지에게 걸리어 큰 출세는 못되었어도 술의 해갈만은 면할 수 있는 길이 정조에 의하여 마련된 것이었다.
<오백년기담일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