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필(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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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와 함께 걷고 싶은 휴게소 쉼터
종종 친구를 만나러 춘천에 간다. 예전에는 1년에 한 번 들릴까 말까 하던 춘천이지만 가장 친한 친구가 춘천으로 이사를 간 후에 발길이 잦아졌다. 친구따라 강남간다는 속담처럼 어느새 춘천 구석구석 안가본 곳이 없다. 그중에 오다가다 들리는 휴게소가 있는데 바로 춘천에서 약 5km 떨어진 곳에 위치한 춘천 휴게소다. 서울 대구간 중부고속도로 개통과 함께 문을 연 춘천휴게소는 서울 춘천 고속도로 개통으로 사람들의 발길이 더 잦아졌다. 내가 이 휴게소에 들리는 가장 큰 이유는 바로 휴게소 옆 쉼터 때문이다. 춘천 시내가 한눈에 내려다 보이는 곳에 있는 풍차와 그 옆으로 이어진 아늑한 쉼터 때문이다. 마치 동화책에 한 장면인듯 편안한 분위기를 느끼게 해주는 풍차와 기린....... 이곳에서 춘천 시내를 한 눈에..
2011.10.10 -
나이트클럽에서 잃어버린 옷 1년만에 찾은 사연
아내가 사준 재킷을 보며 아버지를 생각하다. 며칠전 아내와 함께 서울에 다녀왔다. 갑작스런 북한의 연평도 폭격으로 갈까말까 망설였지만 예약한 손님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오후 여섯시에 집을 떠났다. 그리곤 두 시간 후 서울에 도착해 잠시 잠을 청하기 위해 찜질방에 들렀다. 찜질방에는 많은 사람들이 모여 TV를 보고 있었는데 한쪽에서는 한국과 UAE와의 경기를 다른 곳에서는 SBS 월화 드라마 자이언트를 틀어놓아 시끄러워 잠을 청할 수 없었다. 그리고 잠시 잠이 들었을까?....갑자기 아! 하는 탄식에 잠을 깼다. 연장 종료 15초를 남기고 골을 허용해 결승진출에 실패하는 순간이었다. 찜질방을 나온 시각이 새벽 두 시 아내를 만나기 위해 남평화시장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그곳에서 잠시 앉아 있으니 일을 마..
2010.11.25 -
노래 때문에 몸서리치던 나의 음치 탈출기..
종종 아내와 함께 노래방에 들리곤 한다. 요즘이야 노래를 부르는 것이 고작 노래방이나 단란주점이지만 대학시절에는 주점에서 통키타를 치며 아르바이트를 한적도 있다. 아르바이트를 하기 위한 고육지책이었지만 노래로 인정받고 아르바이트를 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내게는 큰 즐거움이었다. 사실 나는 음치였다. 국민학교와 중학교 내내 음치라는 소리를 듣곤했고 음악시간에 선생님에게 늘 혼이 나곤했다. 변성기가 지난 후에도 음정과 박자를 맞추지 못해 늘 노래 콤플렉스를 갖고 살았다. 당시 마을에는 친한 친구 다섯이 있었는데 그중 한 친구는 노래를 너무나 잘 불렀고 나중에 대학에 들어가서는 리드보컬을 하기도 했었다. 그 친구 집에는 전자키타에서 드럼까지 없는 것이 없었다. 집도 부유했지만 친구 형이 음악을 하는 사람이라..
2010.04.16 -
피서지에서 친구와 오줌을 마신 사연
요즘 산과 바다 계곡 어디를 가나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다. 피서가 절정을 이루고 있지만 올해는 이상 기온 때문에 물놀이를 즐길 때 추위를 느낀다는 사람들이 많다. 특히나 저온현상으로 농작물에 심각한 타격을 줄 것이라는 보도를 들을 때 마다 걱정이 앞서기도 한다. 피서철이 한창일 때 피서지에 사는 사람들은 되도록이면 밖으로 나가려 하지 않는다. 물론 친척이나 지인들이 찾아오는 경우라면 할 수 없이 바다나 산으로 가겠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집에서 조용히 피서를 즐기곤 한다. 왜냐하면 사람을 피하는 것이 가장 좋은 피서라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나 역시 특별한 일을 제외하고는 되도록 차를 몰고 밖으로 나가지 않는다 . 가는 곳 마다 차량이 지정체되는 것을 뻔히 알고 있는데다 그 속에 함께 묻..
2009.08.07 -
조용필 마니아가 별명은 조영남이었던 이유
나는 가수 조용필을 좋아한다. 예나 지금이나 대부분의 레퍼토리는 조용필의 노래다. 아마 중학교 3학년쯤인 것 같다. 그해 "돌아와요 부산항에"를 처음 듣고는 그 노래에 심취에 날마다 그 노래에 취해서 살았다. 원래는 한해전인 1976년에 발표했다는데 나중에 알고보니 제일 먼저 취입한 것은 1972년 김트리오 시절 취입했다 다시 76년에 취입한 것을 알게 되었다. 또 그 이전에 황선우 작곡의 "돌아와요 충무항"였다는 것도 나중에 알게 되었다. 중학교을 졸업하고 고등학교에 들어가서도 "돌아와요 부산항" 조용필의 인기는 사그라 들지 않아 학교에 '돌아와요 부산항에'가 18번지라는 학생들이 엄청 많았었다. 나는 기타를 살돈이 없어 고모부집에 군인이 버리고 간 키타를 다시 고쳐 날마다 고래고래 소리지르며 치다 아..
2008.12.10 -
나의 음치 탈출기
30년전 고등학교 때의 일이다.1976년에 조용필이 발표했던 '돌아와요 부산항에'가 공전의 히트를 친 여세는 이듬해 고등학교에 입합한 때에도 최고의 히트곡이었다. 늘 친구들로 부터 음치라는 소리를 듣고 있던 나는 다른 사람 앞에서는 노래를 부르지 않았다.하도 많이 놀림을 받아서 노래라면 담을 쌓다시피 했기 때문이다.그런데 우연히 고모부집에 들렀다.대중가요 책을 보게 되었다. 당시 고모부는 부대 옆에서 구멍가게를 하고 있었는데 부대와 고모부집에 깡통줄을 연결해서 군인이 잡아당기면 그 소리를 듣고 물건을 팔곤하셨다.그 중에는 담배나 과자가 주류를 이뤘는데 가끔은 특별한 부탁을 하기도 했다. 편지를 부쳐달라거나 물건을 사다 달라는 경우도 있었다. 그중에 한 사병이 제대하면서 망가진 기타와 대중가요 책을 놓고 ..
2008.09.25 -
슈퍼스타 조용필을 이을 스타는.....
요즘 연예가를 보면 수퍼스타가 왜 없을까하는 아쉬움이 든다 공장에서 찍어내듯 늘 그렇고 그런 가수나 연예인들이 도토리 키재기하듯 경쟁하는듯한 인상을 갖게 된다. 한 시대를 풍미한 수퍼스타에게는 무언가 남다른 열정과 노력이 엿보인다. 물론 현재의 가수들이 노력을 하지 않는다는 것은 아니다. 다만 수퍼스타가 갖추어야할 혼과 열정이 없다는 것이다. 물론 기획사에 의해서 조련된 현재의 시스템상 어쩔 수 없다고 하지만 그것은 핑계에 지나지 않는다. 나는 가수 조용필을 수퍼스타로 꼽는 것을 주저하지 않는다. 1975년 돌아와요 부산항에를 기점으로 1980년 창밖의 여자를 발표하면서 활발한 활동을 시작한다. 그의 족적을 보면 그를 수퍼스타로 부르는데 손색이 없음을 알게 될 것이다. 70-80년대 최고의 가수로 군림하..
2007.12.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