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1. 10. 13:36ㆍ세상 사는 이야기
KBS 1TV 대표 맛여행 프로그램 '한국인의 밥상'이 2011년 1월 6일, 첫 촬영 거제도편을 시작으로 2021년 1월 10주년이 되었다.
매주 목요일 오후7시 40분에 방영되는 한국인의 밥상은 방송인 최불암이 전국8도를 돌며 10년간 8000여 가지의 음식을 선보였는데 평범한 사람들이 차려낸 음식들 속에 스며있는 특별한 사연들이 시청자들의 마음에 아련한 향수와 그리움을 쌓이게 했다.
느리면서 정감있는 최불암의 나레이션 역시 토속적인 된장맛이 배여있어 어릴 적 고향을 연상시키곤 하는데 이 시대의 아버지상을 지니고 있는 대표적인 배우가 아닐까 생각된다.
본명이 최영한인 최불암은 서울 노원구와 경기도 남양주 사이에 위치한 불암산에서 예명을 따왔다고 했는데 이런 연유로 나중에 노원구청으로부터 불암산 명예 산주(山主)로 위촉되었는데 2009년에는 최불암(崔佛岩)의 자작시 '불암산이여!'를 시비에 새겨 불암산에 세웠다고 한다.
불암산(佛巖山)이여
이름이 너무 커서 어머니도 한번 불러보지 못한 채
내가 광대의 길을 들어서서 염치없이 사용한
죄스러움의 세월, 영욕의 세월
그 웅장함과 은둔을 감히 모른 채
그 그늘에 몸을 붙여 살아왔습니다
수천만대를 거쳐 노원(蘆原)을 안고 지켜온
큰 웅지의 품을 넘보아가며
터무니 없이 불암산(佛岩山)을 빌려 살았습니다.
용서하십시오
<최불암씨의 자작시 시비(詩碑)는 노원구 중계동 영신여고에서 500m 가량 올라간 불암산 등산로에 설치돼 있다.>
최불암은 1967년 KBS 드라마 수양대군을 통해서 데뷔하였으나 내가 처음 배우 최불암을 알게 된 것은 1971년 시작한 드라마 수사반장을 통해서였다. 1971년 3월6일 첫방송을 시작으로 1989년 10월 12일 18년간 880부작 방영되었던 수사반장은 한국의 콜롬보 최불암이 범죄를 해결하는 활약상을 그린 드라마로 박 반장(최불암)과 김 형사(김상순)·조 형사(조경환)·남 형사(남성훈)가 중심이 되어 실화를 바탕으로 한 범죄 사건을 해결해 나가는 과정을 그린 드라마로 처음 시작할 때 오프닝 음악은 예전 국민학교 때 학교에서 친구들과 유행처럼 따라하곤 했었다 .
작곡가 윤영남이 곡을 만들고 재즈 드러머 겸 퍼커셔니스트 류복성이 연주한 오프닝 곡은 누구나 들으면 자연스럽게 “빠라바라밤 빠라바라밤”을 따라 부르곤 했는 이 오프닝 음악은 후일 화성연쇄 사건을 다룬 영화 ‘살인의 추억’에서도 형사들이 이 음악을 따라 부르며 보는 장면이 나왔었다.
시청률 70%라는 전무후무한 기록을 세우고 당시 박정희 대통령도 열렬한 애청자였는데 당시 드라마 출연당시 담배를 너무 피워 육영수 여사에게 전화를 받았다는 일화가 있을 정도로 인기가 많은 드라마였지만 불운하게도 그때 함께 출연했던 형사역의 김상순,조경환,남성훈은 고인이 되어 아쉬운 마음이 교차하곤한다.
수사반장 이후 배우 최불암을 각인시키게 한 드라마는 한국 TV 방송 사상 최장수 드라마인 MBC 농촌 드라마 ‘전원일기’다. 1980년 10월 21일 ‘박수칠 때 떠나라’로 시작한 전원일기는 2002년 12월 29일 마지막 방송까지 무려 22년간 총 1,088부가 제작되었는데 연기자 최불암(김회장 역)과 김혜자(김회장댁 역)는 20년간 오랜 부부 연기로 실제 부부로 오해받기도 했으며, 김회장의 손자 영남으로 출연했던 남성진과 일용의 딸 복길 역으로 출연했던 김지영은 극중 결혼하였는데 나중에 실제 부부의 연을 맺은 전원일기 커플이 되었다.
전원일기 김회장으로 인자하고 푸근한 이미지를 연기한 덕분에 시대의 아버지상 표본이 되었는데 그런 이미지는 실제 생활에서도 이어져 현재 한국인의 밥상에서도 서민적이고 친근한 아버지의 대명사가 되었다.
수사반장에 함께 출연했던 형사들이 먼저 세상을 떠난 것처럼 최근 전원일기에서 노총각 응삼이로 사랑을 받았던 배우 박윤배가 폐섬유증 투병 끝에 73세로 사망해 안타까운 마음을 토로 했었다.
최불암이 MBC 대표 연기자로 정점을 달리면서 90년대초 최불암시리즈가 유행하게 되었는데 그때 최불암 유모책을 읽어보지는 못했어도 못들어본 사람은 없다라는 우스개 소리가 들리곤 했다. 그때 나왔던 최불암시리즈 몇개를 적어보자,
최불암이 손자랑 놀고 있었다.
손자: 굿모닝~
최불암: 그게 뭔 뜻이냐?
손자: 영어로 "안녕하세요"라는 거예요.
그걸 듣고 흐뭇해진 최불암 부엌으로 가서 김혜자한테 자랑하고 싶어졌다.
최불암: 굿모닝~
김혜자: 시래기국이유.
최불암이 식당에 밥을 먹으러 갔다. 밥을 다 먹고나니 지갑에 돈이 없었다.
마침 다른 사람이 밥먹고 나가면서, "나 청량리파 두목이야."
주인은 돈을 받지 않았다.
또 다른 사람이 나가면서 "나 청계천 보스야."
주인은 역시 돈을 받지 않았다.
그러자 최불암은 자신있게 식당 주인에게 말했다.
"나 양촌리 김회장이야."
최불암이 의사 유인촌을 찾아가 증상을 말했다.
"선생님, 요즘 사과를 먹으면 사과가 그대로 나오고 밥을 먹으면 밥이 그대로 나옵니다. 뭐 좋은 방법이 없을까요?"
유인촌은 최불암에게 음식을 항문으로 먹고 입으로 싸보라고 조언했다. 며칠 후 최불암이 다시 유인촌을 찾아와서 말했다.
"선생님, 선생님 말대로 하니까 증상이 치료됐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헌데 연신 엉덩이를 흔들고 있는 최불암의 모습이 뭔가 이상하여 최불암에게 왜 그러냐고 묻자 최불암이 말하길,
"아, 껌씹는 중입니다."
최불암 가족이 이사를 갔다. 짐 정리가 끝나고 중국 음식을 시켜먹기로 해서 김혜자가 가족들에게 뭘 먹을지 물어봤다. 다들 짜장 아니면 짬뽕을 시켰는데 최불암은 자기 차례가 되자 이렇게 말했다.
"난 탕수육."
그러자 김혜자가 안 된다며 두 글자로 된 것만 시키라고 말했다. 그러자 잠시 고민하던 최불암은 이렇게 말했다.
"그럼 난 탕슉."
배우 최불암은 현대건설 창업주였던 고 정주영 명예회장과 친분이 두터웠다. 정주영 명예회장이 전원일기 애청자였는데 전원일기 드라마 출연까지 욕심낼 정도였는데 직원들의 만류로 이루지 못했는데 그런 아쉬움을 고 정주영 회장은 최불암을 자신의 자택에 여러 번 초대했고 전원일기 출연팀을 초대해 요리를 대접하기도 했다고 한다.
그런 인연은 계속 이어져 최불암은 1992년 치러진 14대 총선에서 정회장이 이끌던 국민당의 비례대표 국회의원을 지내기도 했으나 다음 선거인 15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신학국당 후보로 출마했으나 서울대학교 총학생회장 출신인 김민석 후보에 밀려 2위로 낙선 후 정치 은퇴를 선언하고 다시 본업인 배우의 길을 걷게 되는데 공교롭게도 2004년 방영된 드라마 ‘영웅시대’에서 정주영 역(천태산)을 맡아 열연 했는데, 고 정주영 회장의 말투나 행동이 비슷해서 화제가 되기도 했다.
느긋하면서 푸근한 목소리가 매력인 최불암은 방송에서 나레이션으로 참여한 경우가 많았는데 그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KBS 다큐멘터리 '차마고도'였다. 2007년 9월 5일 ~ 2007년 11월 25일에 6부작+스페셜 1부작으로 방송되었는데 티베트의 장대한 협곡과 산맥을 놀라운 영상미에 담고 담백한 최불암의 나레이션이 어우러져 감동을 주었는데 지금도 보고싶은 다큐중 하나다.
나이 팔순이 넘어서도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는 배우 최불암은 봉사자로서도 귀감을 보이고 있는데 최근 '한국인의 밥상' 10주년 기념 인터뷰에서 초록우산후원회장을 40년간 하게된 일화를 털어놓았다.
초록우산 어린이재단'의 후원회장을 맡은 지 40년이 처음 초록우산과 인연을 맺은 것이 전원일기 속 연기(演技) 때문이었다고 한다.
“1981년이었어요. 농기구를 사러 장터에 갔는데 ‘금동이’가 앉아 동냥하고 있었어요. 내가 발걸음이 안 떨어져 뒤돌아서 천 원을 주려다가 ‘우리 집에 갈래? 더 맛있는 것도 먹을 수 있고 형(兄)아가 입던 옷도 있다’며 데려오는 장면이었어요. 그 방송이 나간 뒤 ‘당신 훌륭하다’는 격려 전화와 편지가 쇄도했어요. 작가가 써준 대로 연기한 것뿐인데 내가 위선자 아닌가, 그런 고민을 할 때 누군가가 여길 소개해 줬어요.”
그런 인연을 지금까지 놓지않고 40년간 이어오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살면서 자신의 삶에 만족하며 평생을 살아가는 사람이 있을까? 스스로 그런 자문을 해보는 시간이 많아지는 요즘이다. 나이 60이 되고 나서 되돌아보니 만족보다 후회가 많은 세월이었다. 그래서 황혼이 아름다워 보이는 국민아버지 최불암에 대한 기억이 잠시 좋아하는 배우 그 이상의 존경심과 경외심이 드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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