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1. 7. 08:47ㆍ세상 사는 이야기
사흘 전 일입니다.
출근하는 아내가 커다란 비닐 봉지를 하나 들고 나서길래 궁금해서 물었습니다.
"아니, 그게 뭐야?"
"응. 입던 옷이야.."
"아니 버릴거면 1층 옷 수거함에 버리면 되는데 왜?"
"버릴 게 아니고 누굴 좀 주려고..."
평소에도 가끔 입던 옷과 가게에서 팔던 재고상품을 교회나 이웃에게 나누어 주던 아내라 더 묻지 않았습니다.
남편 폭력 때문에 도망쳐 나온 아주머니
그날 저녁 퇴근한 아내가 옷에 대한 궁금증을 풀어주었는데 이야기를 듣고 깜짝 놀랐습니다.
아침에 아내가 갖고 갔던 옷들은 며칠 전 밤에 남편의 폭력에 집을 나온 아주머니를 주기 위해 갖고 간 것이라고 합니다.
아주머니가 아내 옷가게 들린 시각은 오후 3시경이었다고 합니다.
처음 보는 아주머니 셋이 가게로 들어섰는데 두 사람이 모자를 쓴 아주머니에게 옷을 골라주느라 애를 먹어 아내가 도와 주려고 물었답니다.
"외출복이 필요한 것인지 아니면 평상복을 찾는지 말씀하시면 제가 도와 드릴께요.."
그러자 옆에 있던 한 아주머니가
"외출복도 하고 집에서도 편하게 입을 수 있는 것중에 가장 따뜻한 것으로 주세요.."
옷을 골라주던 두 아주머니는 전날 폭력 남편에게 맞고 도망나온 아주머니 친구인데 옷도 제대로 입지 못하고 집을 나온 친구를 위해 옷을 사주기 위해 아내 가게에 들린 것이라고 합니다.
상습적인 폭력에도 참은 이유
올해 사십대 후반인 아주머니는 결혼 후 20여년간 남편의 폭력에 시달렸다고 합니다.
체격이 작고 갸날퍼 때릴 때라곤 없어 보이는 아주머니가 매를 맞고 나왔다는 사실에 아내도 적지 않이 놀랐는데 평소에 술만 먹으면 폭력을 휘두르는 남편 때문에 늘 기가 죽어 지내면서도 아이들 때문에 꾹 참고 지금껏 버텨왔다고 합니다.
음식 솜씨도 좋고 야무진데 남편 하나 잘못 만난 죄로 저렇게 산다며 친구들이 핀잔을 줘도 말없이 참고 인내하던 아주머니...이번에도 예고없이 술을 마시고 들어온 남편이 또 욕설과 함께 폭력을 쓰기 시작했고 급기야 가위로 머리카락을 싹둑싹둑 잘랐다고 합니다.
남편의 힘을 당할 수 없어 속수무책 당한 아주머니는 술에 취한 남편이 잠든 사이 집을 도망쳐 나왔는데 혹시라도 남편이 깰까 겁이나 옷가지도 챙기지 못한 채 빠져나왔다고 합니다.
소한이 다가오던 한파에 살을 에이는 날씨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평소 알던 아랫집에 들러 추위를 피할 점퍼를 얻어 입고 난 후 전화를 받고 달려온 친구 도움으로 안전하게 피신했다고 합니다.
홀로서기 꼭 성공하기를....
아주머니가 머리에 모자를 쓰고 있던 이유를 알곤 너무나 가슴이 아팠다는 아내는 그나마 임시 거주할 친구 집이 있어 천만다행이라 생각했다고 합니다.
이번엔 절대 집으로 돌아가지 않겠다며 마음을 다잡은 아주머니는 당분간은 이혼소송 보다는 먼저 일자리를 찾아 홀로서기를 할 계획이라고 합니다.
아이들 때문에 참고 살았던 예전보다 더 악착같이 살아보겠다며 눈시울을 붉히던 아주머니....
혹독한 겨울을 이겨내고 꿋꿋하게 홀로 설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래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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