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역에서 야바위꾼에게 가진 돈 몽땅 털린 사연

2010. 3. 17. 06:14세상 사는 이야기

한 달에 두 번 정도 서울에 갈 일이 있는데 상경해서 지하철역을 지날 때 마다 생각나는 일화가 있다.
지금이야 그럴 일이 없겠지만 대학교 1학년이었던 1980년 지하철역에 야바위꾼들이 기승을 부렸다.
대부분 시골에서 올라온 사람들이 야바위꾼들의 희생양이 되곤 했는데 친구와 나 역시도 야바위꾼에게 갖고 있던 돈을 몽땅 털린 기억이 있다.
대학 1학년이 끝난 겨울 방학 친구와 나는 아르바이트를 한답시고 무작정 서울로 상경했다.
당시 시골에서 아르바이트 일을 구하기 쉽지 않은 터라 서울로 시집간 친구 누나집 쪽방에 기거하며 아르바이트 자리를 물색하러 다니곤 했다.
아침부터 아르바이트 자리를 구하기 위해 이곳 저곳을 다녀봐도 정보가 어두워서 그런지 아르바이트 자리를 좀처럼 구할 수가 없었다.
일주일이 지나도록 아르바이트 자리를 구하지 못한 친구와 나는 영업사원을 구한다는 벽보를 보고 허름한 사무실로 찾아갔다.
그곳은 수세미, 보리차,칫솔등 일상 생활용품을 파는 곳이었는데 처음 접해보는 일이었지만 무작정 해보기로 했다.
판매 수익의 40%를 준다는 사장님의 말에 친구와 나는 커다란 가방에 물건을 가득 넣어 주택가를 돌기 시작했다.
보리차 한 봉을 팔면 천원 그중 4백원이 수익으로 남는 것이었는데 생각처럼 호락호락 팔리지 않았다.
서울 지리도 제대로 알지 못했고 봉제공장이 유난히 많던 구로구 가리봉동 지역을 돌다보니 낮에는 사람들이 없어 허탕을 치기 일쑤였고 사람이 있다고 해도 문을 열어주지 않았다.
친구와 함께 발이 부르트도록 돌아다녀 벌은 돈이 하루 고작 4천5백원이었다.
다음날은 조금 나아지겠지 하며 열흘을 했지만 하루 교통비와 식사값도 되지 못했다.
결국 열 하루째 다른 아르바이트 자리를 알아보기로 하고 친구와 함께 쪽방으로 향했다.


영등포역에서 전철을 타고 가리봉동역에서 내린 친구와 함께 출입구 계단을 내려가고 있을 때 였다.
가파른 계단 중간에 평평한 곳이 있었는데 그곳에 여러 사람이 웅성거리며 서있었다.
호기심이 많던 친구가 가던 길을 멈추고 얼굴을 디밀었다.
당구장에서 볼 수 있는 파란 천 위에 컵이 세 개 놓여있었는데 그중 컵 한 곳에 주사위가 담겨져 있었다.
"자~자...맞추면 찍은 돈의 배를 드립니다....아무나 맞춰보세요.."
그러면서 천천히 컵을 돌렸다.
누가 봐도 주사위가 들어가 있는 컵이 보이도록 돌렸는데 사람들이 엉뚱한 곳에 돈을 거는 것이 아닌가....
그것을 보고 있던 친구가 갑자기 한곳을 가리키며
"주사위가 이곳에 있습니다..."
하는 것이 아닌가
그러자 패를 돌린 사람이 빙긋 웃으며
"햐~귀신같이 맞혔네...하지만 돈을 걸지 않았으나 아무 소용이 없어요....돈을 걸어 보세요..."
그러면서 계속 패를 돌리는데 그럴 때 마다 친구녀석 쪽집게 처럼 잘도 맞추었다.
문제는 돈을 걸지 않고 연습 삼아 갈 때는 잘 맞던 것이 돈을 걸면 이상하게 맞지를 않았다.
야바위꾼들이 친구와 나를 끌어 들이기 위해서 서로 짜고  하는줄도 모르고 빠져들었고 본전 생각에 배팅을 거듭하던 친구는 갖고 있던 돈 7만 5천원을 몽땅 잃었다.
당시 한 달 자취비용이 2만원이었는데 넉달치 자치비용이 순식간에 날아가 버렸다.
우연에 일치인지는 몰라도 돈을 모두 잃자 어디선가 호각 소리가 들리고 허겁지겁 판을 걷은 야바위꾼들은 순식간에 사라져 버렸다.
예전에 혼자 서울에 올라왔다 박보장기에 돈을 날린 적 있는 친구는 그후로도 강릉 단오터에서 또 설악산 울산바위 가는 길목에서 만난 야바위꾼들에게 주머니 쌈지돈을 헌납했다.
엉뚱한 승부욕이 강해 결과가 뻔한데도 불나방처럼 달려들던 친구 덕분에(?) 그때마다 내주머니도 텅비곤 했는데.....
그때 그 야바위꾼들 지금은 어디서 무얼하는지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