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년 근속 통장 아줌마의 애환을 들어보니......

2009. 8. 13. 16:25세상 사는 이야기

아내가 툭하면 내게 하는 말이 있다.
"모르면 통장 아줌마에게 물어봐"
그렇다 그말은 정말 인정한다. 왜냐하면 한 지역에서 22년간 통반장을 한다는 것(그동안 한 지역에서 네 번 이사를 했고 반장으로 시작해 현재 통장으로 재직중이다)은 무언가 특별한 재주가 있는 것임에는 틀림없다.
통장의 임기는 지역마다 다른데 대부분 2년에 연임을 하거나 동두천시 같은 경우 최장 6년까지 통장을 할 수 있다고 한다.
그렇지만 대도시와는 다르게 시골 지역은 통장을 하려고 하는 사람이 없어 할 수 없이 연임을 하는 경우가 허다하다고 한다.
특히나 요즘처럼 통장을 하려는 사람이 없어 통장님을 구한다는 현수막이 내걸리는 세상에 이렇게 궂은 일을 도맡아 하는 통장님이 참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업무와 개인업무가 잘 구분되지 않는 것이 통장의 업무라는 통장 아주머니의 말처럼 온갖 소소한 개인사도 마다하지 않고 해결해주는 것을 보면 그런 생각이 더 든다.
특히 요즘처럼 궂은 일은 많고 좋은 소리는 듣지 못할 때에도 못해먹겠다는 소리 한번 없이 묵묵하게 자신의 일을 하는 통장 아주머니를 사람들은 좋아한다.
노래 가사처럼 어디선가 무슨 일이 생기면 어김없이 나타나는 통장님......


오늘은 복날이라며 아이들에게 토종닭을 사다 주었으면 하는 아내.....
"알았어, 마트나 시장에서 사다 줄게..."
했더니..
"아냐, 일단 통장님께 혹시 직접 토종닭을 키우는 집을 알고 계시나 전화해 볼테니 기다려봐...."
한다.
잠시 후 통장님 오전 일 보고 난 후 잠시 짬을 내 손주와 아저씨께 드릴 토종닭을 사러 간다며 함께 가잔다.
토종닭을 파는 집이 차로 약 30분 정도 가야할 거리에 있어 모처럼 함께 오가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통장님의 월급 변천사

통장님이 처음 이일을 시작했을 때는 월급이 4만원이었다고 한다. 그뒤 6만원 8만원, 10만원 이렇게 조금씩 올라 지금 월 24만원을 받고 있다고 한다. 그간 통장 일을 보면서 주변 사람들 딱한 사정에 돈을 꿔주었다가 떼인 돈이 그동안 받은 월급보다 많다고 했다. 갑자기 아들이 교통사고가 나서 합의금이 필요하다며 부탁을 해 500만원을 꿔주었다가 이사를 가버려 낭패를 본 경우도 있고 가난한 사람들이 소소하게 부탁하는 것을 마다하지 못해 꿔주었다가 못받은 것도 부지기수라고 했다.

통장하면서 가장 보람있던 일은?

통장을 하면서 가장 보람있던 일은 뭐니뭐니 해도 봉사인데 통장이 하는 일 대부분이 궂은 일이라 스스로 봉사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그중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을 꼽으라면 모 사찰에 소년원 아이들을 초대해서 음식을 대접하고 함께 놀아주던 일이라고 한다.
하루종일 수백명의 음식을 만들고 대접해주고 집으로 돌아온 후 며칠 동안 팔을 쓸 수가 없었다고 한다.
그날 대화하던 아이중에 기억에 남는 아이가 있었는데 라면 두 개를 훔치다 소년원에 온 아이였다. 아이는 할머니와 단둘이 살고 있었는데 늘 배가 고프고 허기져 몰래 라면을 훔치다 걸렸고 두번째 걸리자 슈퍼 주인이 절도죄로 고발해 결국 소년원까지 오게 되었다고 한다. 혼자 남아계시는 할머니 걱정을 하는 아이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눈물을 흘렸던 기억이 난다고 했다. 
또 아들이 집에 들어오지 않아 혼자 손주 셋을 키우는 할머니께 늘 쌀과 반찬을 직접 만들어다 주거나 다른 사람들의 도움을 받도록 해준 것과 아이들이 컴퓨터가 없는 것이 안타까워 시의원에게 이야기했더니 몰래 컴퓨터를 보내준 것도 기억에 남는 일이라고 했다.  

통장하면서 가장 억울했던 일은?

통장을 하면서 가장 억울했던 일은 주변 사람들로 부터 다음 해에 다른 사람이 통장으로 정해졌다는 소문을 들었을 때 였다고 한다.  특별한 결격 사유가 있는 것도 통장 업무를 소홀히 한 것도 아니고 주민들의 민원이 제기된 것도 아닌데 동장과 사무장이 마음대로 결정한 것이 너무나 화가 나 견딜 수가 없었다고 한다.
그런데 주변 사람들 이야기가 동장과 사무장이 새로 통장될 사람을 만나고 다니며 술과 음식 대접을 받는 모습을 자주 목격했다고 한다.
결국 사무장을 만나 그간 주변에서 들렸던 이야기를 하며 다른 특별한 이유가 있는가 물으니 제대로 된 답변을 하지 못했다고 한다.
통장이 아무리 별볼일 없는 직업이라고 해도 자신들 입맛대로 자르고 또 임명한다는 것이 화가 나 절대 그냥 물러날 수 없고 억울한 사정을 다른 곳에 알리겠다고 하자 그제서야 한발 물러서 없었던 일로 하겠다고 했다고 한다.

그때 평생 이곳에서 반장이든 통장으로 정년 퇴직을 하고 싶은데 그 소원이 너무나 큰 것이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통장을 하면서 가장 힘든 일은?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해야할 일을 모두 외면할 때 너무나 힘들다고 한다. 특히나 아파트가 많은 지역에서는 일주일에 한번 청소를 하는 날이 있어도 사람들이 나오지 않아 직접해야할 경우가 많고 눈이 많이 내려도 눈을 치울 생각을 하지 않아 애를 먹었다고 한다. 요즘 가장 힘든 일을 꼽으라면 적십자회비를 걷는 것이라고 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적십자회비 모금이 강제규정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있어 모금이 되지 않는데 시에서는 통장에게 할당을 줘 개인 돈으로 메우는 일이 반복되고 있다고 한다.
지난해에도 적십자회비가 걷히지 않아 통장님 개인돈으로 이십여만원을 충당했다고 한다.
매년 되풀이 되는 일인데도 정부에서는 왜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지 않는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고 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통장아주머니와 이야기하면서 그동안 알지 못한 고충을 알게 되었다.
월급도 많은 것도 아니고 남들이 선호하는 일도 아닌데 22년간 통반장으로 근속했다는 것만으로도 아주머니가 참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앞으로 통장님 정년퇴직인 65세까지 뵐 수 있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