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동네에서 만난 추억의 이코노 TV

2009. 1. 13. 16:04사진 속 세상풍경

누구에게나 추억은 있게 마련이다. 그 추억이 때로는 아픔일 수도 있고 즐거움일 수도 있고 혹은 그 슬픔과 즐거움이 이 아련한 그리움으로 남기도 한다. 과거는 기억 속에 존재하고 기억은 망각의 근처에 산다고 한다. 조금씩 잊혀지며 가물가물하던 기억들이 뜻하지 않은 매개체로 인하여 새록새록 되살아나기도 한다.
오늘 나는 뜻하지 않은 기억의 편린들이 마구 쏟아져 나오는 TV 한 대를 발견했다. 달동네를 돌며 이것저것 구경하다 시청 뒷동네 제일 높은 곳에서 세상을 비추고 있는 추억의 이코노 TV를 발견했기 때문이다.
그곳에는 푸른 동해바다가 보이고 시청과 속초시민들에게 방송하는 방송탑이 보이고 서민들의 애환이 깃든 달동네의 모습이 보인다.


 밭과 나무 아래에 시청이 있고 멀리 영금정 등대와 속초항과 푸른 동해바다가 넘실 거리고 있다 이곳의 왼쪽으로 시청으로 내려가는 길이 있고 시장쪽으로 내려가면 달동네다.


중앙시장 쪽에서 시청 2길을 따라 올라가다 보면 맨 위 오른쪽에 돌담과 함께 쌓여있는 추억의 이코노TV가 세상을 비추고 있다. 족히 40년은 되었을 TV가 버려진 채 세상과 함께 늙어가고 있었다.



겉은 낡아 손잡이며 케이스가 모두 삭았지만 세상을 보는 눈인 브라운 관은 아직도 거울처럼 세상을 비추고 있다.
어릴 적 동네에 TV 한 대 밖에 없었을 때 고물상을 하는 친구네 집에는 동네 사람들이 모두 모여들곤 했다. 드라마 아씨와 여로가 나올 때에는 친구네 집은 저녁식사를 제대로 하지 못할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곤 했었다.
TV가 나오기 전 장소팔 고춘자씨의 만담으로 스트레스를 풀던 동네 사람들에게 TV는 그야말로 신천지나 다름없었다. 귀로 듣던 즐거움에서 눈으로 보고 듣는 즐거움은 하루의 피곤함을 씻어주는 청량제 역할을 해주었다.


박스컵 축구 메르데카배 축구등 당시 유명한 스타들의 축구경기며 최고의 인기를 누리던 프로 레슬링에서 고인이 되신 박치기왕 김일의 시원한 박치기에 열광하고 홍수환 선수의 7전 8기에 열광하기도 했었다.또 서영춘 구봉서 배삼용 이기동의 코미디에 배꼽 잡던 '웃으면 복이 와요'..요란한 괴성을 지르며 숲을 내달리던 치타와 밀림의 왕자 타잔...'말괄량이 삐삐'등 지금도 생각하면 눈에 선하게 떠오르는 재미있는 추억의 장면들이다.


내년 봄이면 TV 위에 뻗은 진달래 꽃이 피는 것을 세상에 전해줄 이코노 TV.....
세상이 변해도 사람의 마음만은 변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사람들의 소망처럼 세상의 일부가 된 듯한 버려진 이코노 TV도 더 이상 세상이 변하지 않기를 소망하는지 모른다.
가끔 추억이 그리울 때면 세상을 거짓없이 비춰주는 달동네 TV를 보러 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