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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흘 늦은 아내의 생일상을 차렸더니....

2008. 12. 13. 11:03세상 사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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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마치 노래 가사처럼 사는 게 사는 게 아니고 웃는 게 웃는 게 아닙니다....두 녀석이 동시에 고등학생이 되고나서 부터 사는 게 너무 정신이 없습니다. 뭐 딱히 벌어논 재산도 없고 하루벌어 하루 사는 일이 반복되는 일상 속에 정신없이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 아무리 정신이 없기로서니 이번에 어머니 돌아가시고 첫번째 아내의 생일을 깜빡 하고 사흘이나 지난 후에 아내의 생일상을 차렸습니다.
지금껏 20년을 함께 살면서 아내의 생일을 차려준 것이 몇번일까 손으로 꼽아보니 부끄럽게도 열 번이 채 안되는 것 같습니다. 결혼 기념일도 별반 다르지 않은 것 같습니다.
그것도 아내의 생일을 빌미로 며느리집에 오신 어머니가 늘 차려주신 생일상 빼고 못 오실 때 미리 전화를 해주셨을 때 차려준 생일 상 빼고 내가 기억해 차려준 생일은 한번도 없었습니다.
지난 해 어머니가 갑자기 돌아가시고 처음 맞는 아내의 생일도 까맣게 잊었다 사흘이 지난 저녁에 알게 되었습니다.
그것도 인터넷의 메일을 뒤적이다 아내가 내 주소로 해놓은 보험사에서 온 생일 축하 메일을 열어보니 사흘이 지났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아내는 생일이 지난 것을 아는 지 모르는 지 별 내색을 안하는데 막상 알고 나니 미안한 마음이 자꾸 듭니다.
생일이 수요일이었으니 내일이면 토요일 늦은 생일상이라도 차려줘야겠다. 생각하고 일찍 잠이 들었습니다.
다음 날 일찍 일어나 시장엘 갔습니다. 7시 30분 이제 하나 둘 문을 열고 있습니다. 야채가게에서 시금치와 도토리 묵과 브로콜리를 사고 한참을 기다리니 8시쯤 다른 곳도 문을 열기 시작합니다. 고등어와 꼬막 두부 떡과 과일을 사고 부랴부랴 집으로 왔습니다. 옛날에 오랜 자취 경험을 바탕으로 미역국을 끓이고 한 시간만에 뚝딱 차린 아내의 생일상은 참 초라합니다.
오늘은 아이도 학교를 가지 않는 날이고 아내도 10시에 출근하는 날이라 시간적인 여유는 있는데 마음이 바빠서 간이 제대로 맞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도깨비 밥상 차리듯 뚝딱 차린 밥상 앞에 가족이 앉았습니다. 가족이라야 큰 녀석은 서울 고시원에 가있고 작은 아들과 아내와 나 세 식구 입니다. 멋적게 앉아서 아내에게 말했습니다."미안해, 생일이 사흘이나 밀렸네....." 했더니 "지난 생일을 뭐하러 차려..지난 것은 지난 거지..." 합니다. 무척이나 서운하긴 서운했나 봅니다.
"아무튼 고마워 잘 막을게...." 미역국을 뜨는 아내의 손이 잠시 흔들립니다. 그것이 무슨 의미인지 모르겠습니다.
당신과 살면서 늘 지지리 궁상인데 미역국만으로 감지덕지 하다는 것인지 아니면 미역국이 너무 짜서 몸을 으스레 치는 건지 알 수가 없습니다. 말없이 식사를 하다 아내가 화제를 바꾸려는 듯 큰 아들 이야기를 꺼냅니다. 수능을 못봐서 마땅히 갈 대학이 여의치 않다는 근심 때문에 요즘 잠을 못이루는 아내.....이래저래 마음 편하지 않은데 생일까지 까먹었으니 정말 면목이 없습니다.
아들만 둘에 기억력 없는 남편 덕에 생일도 밀려버린 아내.......만약 딸이 있었다면 이렇게 밀릴 일도 없을테고 고생도 덜했을텐데.....문득 어머니 생각이 납니다. 아들만 사형제를 키우느라 평생 고생만하다 돌아가신 어머니....아내도 별반 다르지 않은 듯 합니다. 앞으로  아내의 생일만은 절대 잊지 않고 챙겨주어야 겠습니다. ...생일날 혼자 얼마나 섭섭했을까.....남편이고 아들이고 다 필요 없다며 또 얼마나 투덜거렸을까?.....그리고 내게는 모른 척 했을 아내에게 정말 미안한 마음이 듭니다.
오늘 저녁에는 세 식구가 외식이라도 해야겠습니다.....아내가 좋아하는 오리구이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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