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여름 무더위를 날려준 묵사발

2010. 8. 31. 08:45요리조리 맛 구경

지난 일요일에는 벌초를 하러 고향에 다녀왔다.
올해는 유난히 폭염과 무더위가 심해 추석이 다가오는데도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
해가 뜨기전에 벌초를 끝내려고 형님과 함께 일찍 산에 올랐다.
그런데 벌초를 시작한지 채 20분도 지나지 않아 예초기가 말썽을 부리더니 결국 멈춰 버렸다.
할 수 없이 낫으로 벌초를 했는데 두 시간이면 끝낼 것을 네 시간에 끝낼 수 있었다.
어느새 전신은 땀범벅이 되었고 풀잎에 스친 팔과 다리는 너무나 쓰라렸다.
집으로 돌아와 팔순 아버지를 모시고 점심 식사를 하러 가기로 했다.
예전 아버지는 소고기와 돼지고기 같은 육류를 좋아하셨는데 요즘은 채식 위주의 식사를 하신다.
그중 올여름에 가장 많이 드셨다는 메밀 묵사발을 먹으러 가기로 했다. 


집에서 1km 정도 거리에 있는 금실막국수에 도착하니 마당에는 주차할 곳이 없을 정도로 차량이 가득했고 마당에도 차례를 기다리는 사람들로 북적였다.


형님 내외가 군대간 아들 면회를 가서 아버지와 단둘이 묵사발 두 그릇과 촌두부 하나를 시켰다.
음식이 나오기 전에 나오는 밑반찬을 달랑 두 개.......하지만 맛이 시원하고 깔끔하다.
특히 김치보다 큼직하게 썰은 깍두기가 정말 맛있었다.


이곳에서 직접 담근 촌두부.....부드럽고 고소한 맛이 일품이었는데 양념장에 찍어 먹는 것 보다 김치와 깍두기와 곁들여 먹으시 더 시원한 맛이 났다.


드디어 오늘의 메인 요리인 묵사발이 나왔다.
잘 익은 김치와 오이채와 당근과 양념장 그리고 김과 깨가 뿌려진 묵사발 옆에 얼려진 육수 덩어리가 보였다.
보기에는 양이 작아 보였는데 먹고 나니 포만감이 느껴졌다.


이집에서 직접 만들었다는 메밀 묵사발 ....모든 재료를 이곳에서 정성들여 만든 것이라고 한다.
칼로 성큼성큼 자른 묵과 야채와 양념과 고소한 들기름이 식감을 자극했다.


숟가락으로 잘 버무려 한 입 넣었다.
시원한 야채와 부드럽게 씹히는 메밀묵 맛이 입안에 감돌았다.
육류를 좋아하시던 팔순아버지가 이 묵사발을 좋아하게 된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오랜 동안 몸에 배어 있던 느끼함을 한 방에 날려주는 묵사발 맛에 자주 찾게 되었다고 한다.
다른 것은 한 그릇을 다 비우지 못하는 아버지가 묵사발 한 그릇은 거뜬히 비우신다.
한여름 무더위를 이겨내게 해준 묵사발........
시원한 묵사발 한 그릇에 벌초하면서 흘렸던 땀이 쏙 들어가는 듯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