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문구의 관촌수필 줄거리 읽기

2009. 6. 17. 15:30마음의 양식 독서

 

나는 성묘를 위해 근년 들어 오랜만에 고향으로 내려간다. 그러나 모처럼 만에 찾아든 고향은 옛 모습을 제대로 지키고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어 나는 비애감에 젖는다. 그 중에서도 맨 먼저 가슴을 후려친 것은 왕소나무가 사라져 버린 사실이었다.

왕소나무가 서 있던 거리엔 외양간만 한 슬레이트 지붕의 구멍가게 굴뚝만이 꼴불견으로 뻗질러 서 있던 것이다. 또한 내가 살았던 옛집의 추레한 주제꼴은 한결 더 가슴이 미어지는 비감을 더해 주면서, 내가 어느덧 실향민이 되어 버리고 말았다는 느낌을 떨쳐 버릴  수 없게 한다.

 

  나는 먼저 할아버지 산소부터 성묘를 한다. 할아버지의 산소를 찾은 나는 순간적으로 지팡이에 굽은 허리를 의지한 할아버지가 당신의 헛묘(가분묘)를 굽어보고 서 있는 환상에 사로잡힌다. 내가 태어났을 때 할아버지는 이미 팔순의 고령이셨다. 인생에서 은퇴하다시피 왕조의 유민으로 은둔자적하던 노인의 모습이었다. 그는 복고주의적 향수를 버리지 못했는데, 내게 한자를 가르치기 시작한 것은 그런 향수를 못 이긴 자위책이었다. 할아버지는 내가 천자문을 떼자마자 내 하루의 일과를 짜놓고 그 일과표에서 도저히 헤어날 수 없도록 했다.

내가 할 일은 새벽에 일어나서 세수하고 사랑에 나가 할아버지께 문안을 드리는 일이었다. 그리고 또 놋요강과 놋타구를 가시는 일도 해야 했다. 할아버지가 배운 것은 그대로 실천해야 한다고 가르치셨기 때문이다.

 

나는 아직 오랫동안 이웃해 살았던 낯익은 사람들이 여럿 남아 있음을 떠올리고 그네들을 방문할까 하지만, 그네들을 방문하기가 그리 간단하지 않음을 깨닫고 망설인다. 마을을 아주 떠나던 날까지도 일가 손윗사람 아닌 이에게는 무슨 경어나 존칭을 써 본 적이 없던 나였다.

할아버지의 지시였고, 곁에서 배운 버릇이었다. 안팎 동네 사람의 거지반이 행랑이나 아전붙이었으므로 하대해야 마땅하다는 것이 할아버지의 지론이요 고집이었던 것이다. 그 결과 나는 안팎 삼 동네를 다 뒤져도 친구랄 만한 친구랄 게 있을 수 없었던 고적한 소년 시절을 보낼 수밖에 없었다.

결국 나는 가급적이면 알 만한 사람과 마주치고 싶지 않다는 생각에 마을을 돌지 않기로 작정한다.

 

  봉건적 세계 속에 살고 있던 할아버지와 달리, 아버지는 내가 태어나기 이전부터 고색창연한 할아버지의 가훈을 깨뜨리고, 전혀 반대 방향의 풍물을 받아들이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할아버지의 전근대적인 가풍에 반발하기 위해서 싹튼 것은 물론 아니었다. 아버지의 길은 당신 스스로 선택한 것일 뿐이었다. 내가 태어나기 수삼 년 전만 해도 몇 척의 어선을 가진 선주였던 아버지는 광복을 전후해서 종래 회고조의 가풍이나 실속 없는 사상을 스스로 뒤집어엎는 데에 서슴지 않았다.

 

사농공상의 서열을 망국적 퇴폐풍조로 지적했고 '무산계급의 옹호와 서민 대중의 사회적인 위치를 쟁취한다.'는 구호와 함께 그것의 실천을 앞장서서 주도하기 시작했다. 그것이 변형되어 남로당과 합세했던 것은 그로부터 다시 많은 시일이 흐른 뒤의 일이었지만, 그 결과로 집안은 완전히 쑥밭이 되어 버렸다.   예전에 나는 그런 아버지에게 할아버지에게서 와는 달리 한없는 거리감과 두려움만을 가졌었다.

 툭하면 경찰서에 불려가고 연행돼 가던 신분이었음에도 언제나 의기왕성하며 투지만만한 아버지를 보며 나는 외경스러움과 동시에 무정한 거리감, 아니 차라리 공포감을 느꼈었던 것이다.

 

  변변한 친구도 없이 유년 시절을 보내는 나에게 옹점이는 잊지 못할 친구 역할을 해 주었다. 그녀는 어머니가 친정에 갔다가 허드레 심부름이나 시킬 요량으로 데려온 아이었다. 옹점이는 마음이 착하고 어른 앞에서는 소견이 넓었으며, 아이들에게는 남달리 인정이 많았다. 또한 그릇을 잘 깨는 덜렁쇠였고, 참새 못잖은 수다쟁이이기도 했다.

  나는 읍내로 나가는 과수원 탱자나무 울타리 곱은 탱이를 돌 어름, 잠시 발걸음을 멈춰 다시 한 번 옛집을 돌아다보았다. 이어 칠성 바위 앞으로 눈을 보냈는데, 정작 기대했던 그 할아버지의 환상은 얼핏 나타나지도 않았다.

그런데도 할아버지의 넋만은 벌써 남의 땅이 되어 버린 칠성 바위 언저리에 아직도 묵고 있을 것만 같았음은 웬 까닭이었는지 몰랐다. 다시 한 번 옛집을 되돌아보았을 때, 그 너머 서산마루에는 해가 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