옷가게 하는 아내가 세일하지 않는 이유

2009. 2. 2. 12:38세상 사는 이야기

아내가 옷가게를 시작한지 벌써 10년이 넘었다. 아니 처음 시작했던 아동복 가게를 합치면 벌써 15년째다. 내가 가구점을 하다 건강상의 이유로 업종 전환하고 시작한 옷가게는 그야말로 굴곡이 많았다. 처음 시작했던 아동복 대리점이 개업한지 3개월만에 회사의 고의 부도로 막심한 손해를 보고 그때부터 남대문에서 도매로 아동복을 구입해 소매하기 시작했다. 결혼하기 전에 의상실에서 근무했고 패션 감각이 남달랐던 아내는 어려운 가운데서도 잘 적응했고 어느 정도 안정이 되어가기 시작했다.
그런데 갑자기 건물이 팔렸고 계약기간 만료로 가게를 비워주게 되었다.할 수 없이 다른 가게를 알아보게 되었고 지금의 상가 내 점포로 이전하게 되었다. 이전한 뒤에는 아동복을 접고 숙녀복으로 업종을 변경했다.그런데 처음이라 그런지 손님도 없고 상가가 활성화 되지 않은 곳이라 장사가 여의치 않았다. 하지만 아내는 특유의 인내력과 친화력으로 단골 손님을 하나 둘 늘려 가기 시작했다.의상실을 했던 경험과 패션 감각으로 손님들에게 맞춤 코디를 해주고 가게에 오는 손님들이 심심하지 않도록 다과를 준비해 동네 사랑방이 되도록 만들었다.아동복을 팔 때 계절 별로 늘 세일을 하던 것도 과감하게 없애버렸다. 백화점의 세일이나 대리점의 세일과는 달리 정찰 가격이 없는 의류점에서 세일이 의미없다고 생각한 아내는 손님들이 언제나 세일하는 가격으로 사는 것임을 인지시켜 주었다.철지난 의류는 가게 밖의 행가에 걸어놓고 원가 판매해 자금을 회전하는데 중점을 두었다.


처음 가게에 오는 손님들은 왜 이 가게는 세일을 하지 않느냐며 묻곤 했는데 다른 곳과 가격을 비교하거나 물건을 꼼꼼히 따진 후에는 어느새 단골 손님으로 변하곤 했다.
주변에 학교가 많아서 선생님들이 많은데 예전에는 메이커를 선호하던 선생님들이 동대문 남대문 패션을 선호하게 된 것도 아내가 권한 맞춤 코디에 만족하기 때문이었다. 또 메이커 한 벌 가격으로 계절마다 변화를 줄 수 있는 옷들을 구매하는 것도 실용적이라는 아내의 권유가 먹혔기 때문이었다.
요즘은 모든 업종이 불경기라 힘들지만 늘 새롭게 변화하려는 마음으로 부지런히 서울을 오가곤 한다.
여덟 평 작은 가게에서 종업원도 없이 하루종일 시달리는 아내의 가게에는 TV가 없다. 아니 TV는 있지만 유선방송을 달지 않아 나오지 않는다. TV를 보는 시간에 음악과 책을 보는 것이 더 유익하고 손님들과의 대화를 통해서 더 많은 것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좋은 음악 CD를 빌려주기도 하고 또 자신이 보고 난 책을 돌려 보면서 세상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즐겁다고 한다.
아내가 세일을 하지 않는 이유 중에는 이런 사랑방 같은 가게와 이웃처럼 지내는 손님들의 믿음이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길에서 언제든지 마주칠 수 있는 작은 도시에서 주인과 손님간의 믿음이 없다면 지금까지 장사를 할 수 없었을 것이다.
세일을 하고 안하고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얼굴과 양심을 팔고 있다는 생각으로 손님을 대하는 것이 오랫동안 살아남는 비결이라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아내의 가게에 오는 손님들은 안다. 그곳에 가면 늘 보이지 않는 연중 세일을 하고 있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