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산사에는 중환자 팽나무가 산다

2008. 11. 12. 07:33사진 속 세상풍경

가끔 들리는 낙산사에도 가을이 왔습니다. 양양산불 이후 새롭게 복원되는 사찰과 조경사업으로 낙산사의 가을은 어수선합니다.
그래도 많은 사람들이 찾아와 합장하는 모습이 보이고 푸른 동해바다를 배경으로 기념사진 찍는 모습도 쉽게 볼 수 있습니다.
예전에 사천왕 입구를 지나면 우측에 있던 벚나무도 다 베어지고 그곳에 살던 토끼도 보이지 않는 썰렁함은 나 혼자만 느끼는 기분이 아닐 듯 합니다. 기와불사를 하고 내려오는 길에는 늦은 가을 감나무 한 그루가 반겨줍니다.
푸른 하늘에 노을이 번지듯 주렁주렁 달린 감나무가 마음을 따듯하게 해줍니다.


아무도 감을 따지 않아 자연스럽게 익어가는 감 날마다 푸른 동해바다의 뜨거운 태양을 품어서 그런 것인지 지는 석양의 노을을 마음에 담은 탓인지 보고 있는 것 만으로도 마음이 따스해졌습니다.


그런데 아직 낙산사는 산불의 후유증에서 벗어나려면 아직 멀은 듯 했습니다. 곳곳에 나무들이 심어지고 있었지만 잎이 노래진 소나무며 심자마자 죽어버린 나무들도 보였습니다. 그 중에 내눈을 사로잡은 것은 붕대를 칭칭 동여맨 팽나무 한 그루....
처음에는 무슨 나무 인지 몰랐으나 지나가는 스님에게 여쭈어 보니 팽나무라 하더군요.
넘어지지 않도록 나무와 철사로 지지대를 만들고 몸은 붕대로 칭칭 동여맨 모습이 정말 안쓰럽더군요.


다른 나무와는 달리 팽나무만 붕대로 온몸을 칭칭 동여맸는데 필시 무슨 이유가 있으리라 생각되더군요. 나무가 워낙 허약해서 그런 것인지 추위에 약해서 몸을 칭칭 동여맨 것인지 .......나중에 알고보니 팽나무는 뿌리가 얕게 뻗어 처음에 옮겨 심을 때 잘못하면 죽거나 뿌리가 땅위로 솟아 오른다고 하더군요. 그만큼 옮겨서 살리기 쉽지 않은 나무라고 합니다.


나무 가까이 다가가니 영양제인 포도당 주사를 맞고 있었습니다. 사람으로 치자면 정말 중환자 같아 보였는데 마치 심한 화상을 입은 환자가 링거를 꽂고 있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대부분 사람들이 무심히 지나갔지만 나무마다 링거를 꽂고 붕대를 칭칭 동여맨 중환자 팽나무를 보면서 나무도 사람과 별반 다르지 않을텐데 소리 한 번 지르지 못하고 끙끙 앓고 있겠구나 생각하니 정말 안쓰러웠습니다.
내년 봄에는 붕대를 푼 팽나무의 모습을 볼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