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사가 병원을 쫓아내는 이유 알고 봤더니.....

2008. 11. 11. 16:35세상 사는 이야기

나와 함께 예전에 봉사단체에서 활동하던 정형외과 의사가 있다. 내가 처음 보았을 때가 1998년 이었던 것 같다. 당시 지방에서 군의관으로 근무하고 제대하면서 바로 개원을 했는데 처음 개인병원을 열고보니 환자들이 없어 운영에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그때 다른 사람의 소개로 봉사단체에 들어와 함께 봉사를 나가곤 했는데 여러사람이 도와준 덕분에 병원 인지도도 높아지고 어느정도 자리도 잡아갔다.
해마다 지역노인들을 위한 무료진료도 하고 개인적으로 노인들을 위한 봉사도 많이 했다. 정형외과라 나이 드신 분들이 태반이었는데 친절하고 찬찬히 환자를 잘 돌봐준다는 소문에 무료진료 나갔던 마을에서도 일부러 버스를 타고 오기도 했다.
병원을 개원한지 2년만에 좀더 넓은 곳으로 이사를 했고 늘 병원은 노인들로 넘쳐 났다.
그런데 2000년 8월 의약분업이 시행되면서 병원과 약국간의 지각변동이 일어났다. 대부분의 약국들이 병원이 있는 건물로 들어가거나 병원 가까운 곳으로 이사를 가게 되었다. 심지어 병원건물의 지하로 들어가는 약국까지 생겨났다.

병원과 약국이 공생시대가 열렸다. 그러다 보니 암암리에 병원에 줄을 대려는 약국도 생겼는데 그와는 정반대로 건물을 갖고 있던 약사들은 자신의 건물에 병원을 유치하려고 애를 썼다.
그런 중에 4층 건물을 짓고 임대가 나가지 않아 애를 먹던 인근의 약사가 정형외과 의사에게 달콤한 제의를 해왔다고 한다.
건물을 전세금 조금 받고 월 임대료 없이 줄테니 병원을 자신의 건물로 옮겨 달라고 했다.
자신의 건물에 병원을 유치하면 환자들의 처방전으로 약을 조제하면 안정적인 수익을 올릴 수 있다는 계산이 깔려 있었다고 한다.
이사한지 얼마되지 않았지만 새건물이고 또 넓으니 더 이상 옮길 걱정없이 병원을 운영할 수 있겠다 하는 생각에 다시 옮기기로 했다고 한다.
병원이 자주 옮기는 것이 좋은 것이 아니라며 반대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의사는 자신있다며 그해 가을에 병원을 옮겼다.
너무 자주 옮겨 개원식도 하지 않은 채 진료를 시작했는데 차분하게 이전 준비를 해온 까닭에 잊지 않고 많은 환자들이 찾아왔다.
건물에는 정형외과 말고 피부과도 들어와서 약국은 않아서 병원에서 처방전을 갖고 오는 환자의 약을 조제해주는 것만으로도 호황을 누렸다고 한다.
그렇게 몇년이 지났을까?....어느날 갑자기 약국 주인이 병원을 비워달라고 했다고 한다. 깜짝 놀란 의사는 갑자기 왜 그러냐고 이유를 묻자 대꾸도 없이 비워달라는 말만 되풀이 했다고 한다.

약사가 왜 갑자기 나가라고 하는 걸까....그동안 자신이 원하던 대로 해서 이곳으로 이사를 왔고 불만이 없는 것으로 생각했는데...혼자서 곰곰히 생각하다가 찾아가서 현재의 임대조건이 불만이라면 다시 제시해보라고 해도 요지부동이었다고 한다.
월세를 올리든 임대료를 조금 더 올리던 서로 의견을 나눠보자고 해도 더이상 할말이 없다고 하는 약사의 속을 몰라 답답했다고 한다.
며칠 밤을 고민하던 끝에 다른 곳으로 병원을 옮기기로 했다고 한다. 갑자기 병원을 또 옮기려니 옮기는 비용이 만만치 않게 들어 고민이 많은 의사는 꽤나 수척해보였다. 병원 인테리어를 다시 할 생각을 하니 끔찍하다고 했다.
그러면서 약사가 내보내는 이유를 어렴풋이 알겠다고 했다.
그것은 바로 처방전이라고 했다. 정형외과지만 환자들이 대부분 노인들이 많은데다 약보다는 물리치료를 받으러 오는 환자들이 태반이다보니 처방전이 많이 내려오지 않는 병원을 둘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 듯 했다고 한다.
"하루에 처방전 40장이 내려오면 월 500정도 수익이 예상되는데 처방전이 많이 내려오지 않는 병원을 내보내고 싶기도 하겠지요.."
"아마도 나처럼 물리치료 환자가 많지 않은 여타 다른 병원을 끌어들이기 위해 그런 것 같습니다..."
"이제 더 이상 이사가지 않으려고 이곳으로 옮겼는데 결국은 또 옮겨야하는 신세가 되었네요.."
의사의 푸념을 들으면서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 세상이라지만 참 무섭고 각박하구나 하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