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에서 주운 항아리 화수분 되다

2008. 11. 4. 14:58사진 속 세상풍경

아내가 늘 하는 잔소리 중에 하나가 '제발 물건 좀 줏어오지 마세요'다. 어디를 가나 모든 것에 관심이 많은 나는 남이 버린 것이라도 재활용할 수 있다면 기꺼이 집으로 가져오곤 하는데 아내는 그런 것이 싫다며 질색이다. 그래서 어느 때 부터 줏은 것이 아니라 남이 주었다고 말하는 습관이 생겼다.
쓰레기장에 버려진 책도 나는 즐거운 마음으로 집으로 가져온다. 두었다가 다른 사람에게 주기도 하고 멀리 있는 조카에게도 보내주기도 한다. 한번은 만화 그리스로마신화가 12권 한 세트 그대로 쓰레기장에 버려져 조카에게 보내주었더니 너무 고맙다며 편지를 보내오기도 했다 하긴 요즘 그것들을 돈주고 사려면 10만원 이상은 주어야할 큰 돈이라고 한다.
앞으로 모을 책들은 도시의 작은 쉼터로 보낼 계획인데 경제가 어려워서 그런지 책들도 많이 버리지 않는 것 같다.


그 중에 내가 가장 아끼는 것은 항아리 두 점이다. 아주 질퍽한 맛이 잘 드러나는 항아리인데 이 항아리들에 이력을 전혀 알지 못한다. 그냥 길 가다가 버려진 것을 줏어 왔기 때문이다.


우리집에 맨 처음 들어온 것은 요 작은 항아리였다. 길에 버려진 것을 줏어와 화초를 심었는데 너무나 잘 어울렸다. 그런데 물이 잘 빠지지 않아 다른 곳에 옮겨심고 이것을 저금통으로 사용하기 시작했다. 저금통이라야 언제든 넣고 뺄 수 있는 것이었지만 주머니에 잔돈이 생길 때 마다 이곳에 넣었는데 아내와 내가 넣다보니 금새 차곤했다.
아이들에게 급할 때 쓰라고 하니 너무나 좋아했다. 아내와 내게는 잔돈 처리기 였고 아이들에게는 화수분이었던 셈이었다.


그러다 또 하나의 항아리가 들어왔다. 누군가 간장이나 소금 항아리로 쓰던 물건인 듯 한데 쓰레기장에 버려진 것을 주워왔는데 볼 때 마다 투박한 막걸리 맛이 느껴지는 항아리였다.
이것이 들어오고 나서 자연 동전들은 이곳에 담겨지기 시작했다.
아이들에게는 이곳이 가득찰 때 까지 모았다가 아이들이 원하는 것을 사주마 했다.
그 뒤로는 잔돈을 쓰는 사람은 없고 저축만 하니 점점 동전이 쌓여 갔다.


인테리어 소품으로도 훌륭하고 또 화수분으로도 손색없는 항아리를 볼 때 마다 나는 기분이 좋다.


이 화수분에 동전이 가득 쌓일 때 까지 얼마나 많은 시간이 걸릴지 모른다.
분명한 것은 항아리를 바라만 보고 있어도 기분이 좋다는 것 ...그리고 그 속에 얼마인지도 모르는 동전들이 쌓여간다는 것....
처음에는 길에 버려진 항아리였지만 지금은 우리집의 소중한 화수분이 된 항아리들.......
볼수록 참 기분이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