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친구 사귀기 제일 편한 곳이 독서실?

2008. 10. 31. 09:25세상 사는 이야기

내 아이들은 모두 고등학생이다. 큰 아이는 예고 3학년으로 수능준비로 정신없고 작은 아이는 학원도 다니지 않고 독서실만 다니고 있다.
그래서 가끔 비가 오거나 급한 일이 있을 때 독서실을 들러보게 되는데 갈 때 마다 독서실 밖이 시끌벅적했다.
독서실 복도는 넓고 쉴 수 있는 의자가 놓여있어 공부하다 지친 아이들이 쉬는 곳인데 그곳에는 남녀학생들이 사이좋게 앉아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한번은 갑자기 비가 내려 밤 10시에 우산을 갖다주러 독서실에 간 적이 있었다. 무심결에 독서실에 들러 우산을 주고 계단을 내려오는데 불이 꺼진 어두컴컴한 상가구석에서 웬 녀석들의 인기척이 들렸다.
슬쩍 쳐다보니 남학생과 여학생이 포옹을 하고 있었다. 사람이 지나가는 발자국 소리에 놀랐는지 흠칫하며 숨을 죽였다.
계단을 내려오면서 별의별 생각이 다 들었다. 혹시 내 아이들도 저러는 것은 아닐까?
독서실에 다닌다고 해서 대견하게 생각하고 믿고 보냈는데 내 아이도 저러면 어쩌나 하는생각이 들었다.
그렇지 않아도 예고에 다니는 녀석이 여자친구를 사귀다가 헤어졌다며 한동안 방황해서 신경이 쓰였는데 작은 놈 마저 그러면 어쩌나 걱정이 들었다.


그날 저녁 아이가 독서실에서 돌아온 뒤 물어보았다.
"독서실에서 서로 사귀는 학생들이 많니?"
그러자 아무렇지 않은 듯 
"많아요..."
한다
"남자 친구 따라서 독서실을 옮기는 학생도 있고 여학생 때문에 독서실을 따라 옮기는 아이도 많아요...학원처럼이요..."
"특히 독서실은 밤에 공부하는 곳이라 마음놓고 사귀기 좋잖아요..."
"공부를 열심히 하는 학생도 있고 공부보다는 잿밥 때문에 독서실 다니는 애들도 많아요...부모님의 간섭에서 벗어나 마음껏 할 수 있잖아요..."
"독서실에서 관리 감독을 안하니?..."
"하죠...그렇다고 못하나요....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속일 수 있는데요 뭘..."
"가끔은 집에서는 독서실 간다고 하고 독서실에서는 집에 일이 있다고 하고 남녀학생이 밤늦도록 오지 않는 경우도 있어요..."
가만히 생각해보니 독서실은 자기의지가 있어야 공부를 할 수 있는 곳인데 다른 곳에 정신이 팔려있으면 큰일이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남학생과 여학생 반을 따로 분리시켜 놓아도 몰래 문자메세지를 통해 원하는 것을 다 할 수 있어 무용지물이라고 했다.
한번은 실업계 고등학교 다니는 남학생과 여학생이 자격증 시험 대비를 한다며 독서실을 다니다 여학생이 임신을 해서 큰 파장을 일으키기도 했다고 한다.
독서실 내에서도 정말 공부를 열심히 하는 학생과 학원 다니기 싫어 독서실 끊어 놓고 놀고 잠자러 나오는 학생도 있다고 한다.
잘되는 독서실은 승합차나 버스를 운행하면서 학원처럼 학생들의 학업도 지도해주는 등 학생관리를 철저히 해주는 곳도 있으나 운영에 어려움이 있어 혼자 독서실을 운영하는 곳은 학생들 관리가 쉽지 않다고 한다.
다행이 아이가 다니는 독서실은 아내의 가게 윗층이고 독서실 주인을 잘 알아서 믿고 보내고 있었는데 아이와 대화를 하면서 독서실에 대해서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되었다.
무엇을 하든 자신의 의지가 없으면 꿈을 이룰 수 없는 것이다...최선을 다해라...라는 말밖에는 마땅히 해줄 이야기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