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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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 수 없는 전쟁기념탑이 있다.
6월은 호국보훈의 달이다.이맘때면 늘 중학교 때 있었던 6.25 기념 행군이 생각난다.지금으로 부터 33년전 일이다. 해마다 6월이면 6.25 행사가 있었는데 중학교 2학년이던 1975년에는 육탄용사전적비 까지 행군을 하는 것이 그 해의 행사였다.홍천지역은 유난히 부대가 많아 어려서부터 반공교육을 철저히 받은 우리는 그것이 당연한 줄 알고 자랐고 10km행군도 당연한 줄 알던 시절이었다.날은 무더웠지만 전교생이 비포장 도로를 걷고 있을 때 군용차량이 지나가면 자욱한 먼지를 그대로 뒤집어 쓰곤 했다. 아마도 지금 걸어서 그곳까지 가라면 절대 갈 수 없을 만큼 먼 거리였지만 어설프게 배운 군가를 부르며 전쟁기념탑 육탄용사 전적비까지 행군을 하였다. ..
2024.09.25 -
연좌제로 평생 고통받은 아저씨의 눈물
아내의 가게에서 경비일을 맡고 계신 고향 아저씨는 나이가 73세에도 젊은이 못지 않은 열정이 있다. 지금은 나이들어 심심하다며 경비일을 맡고 있지만 젊은 시절에는 위문공연단을 따라 월남도 갔다올 정도로 노래실력을 인정받기도 했다고 한다. 그런 아저씨에게 평생 가장 고통스러운 것은 연좌제인데.....억울하게 당한 아버지의 죽음과 모함으로 평생 취직도 못하고 감시당하고 산 것을 생각하면 가슴이 답답하다고 한다. 6.25가 났을 때 15세였던 아저씨는 인민군에게 가족이 모두 붙잡혔다가 운좋게 도망쳐 나왔는데 그때 마침 서울에 있던 누님이 그 전쟁통에 가족을 찾아 고향을 내려왔다고 한다. 밀고 밀리는 상황이 계속되면서 인민군이 왔다가 가고 나면 경찰이 와서 치안을 담당하곤 했는데 그 전쟁통에 파출소에 온 경찰은..
2008.06.25 -
6.25에 둘러본 실향민 문화촌
오늘은 6.25가 발발한지 58년 되는 날이다. 세월이 지날수록 잊혀지는 것이 기억이지만 이날이 돌아오면 더욱더 가슴아픈 사람들이 있다 그것은 바로 실향민들이다. 이제 실향민 1세대들은 돌아가시거나 연로해서 통일이 된다고 해도 갈 수 없는 사람들이 많다고 한다. 죽어서도 고향에 가보고 싶다는 말 속에서 고향에 대한 짙은 그리움을 느낄 수 있었는데 마침 속초 시립박물관에서 실향민 문화행사를 한다고 해서 아침일찍 둘러보았다. 평일이라서 그런지 사람들은 많지 않았지만 관광버스로 외지에서 오신 분들과 유치원생들이 체험행사를 둘러보고 있었다. 5층 전망대에서 내려다본 실향민 문화촌의 전경 북한의 초가집과 기와집 그리고오른쪽 끝에 누더기같은 청호동 실향민촌의 판자집이 보인다. 피난민 초기의 청호동 실향민 가옥의 모..
2008.06.25 -
6.25 경찰을 위한 위안부가 있었다?
올해 73세 되신 경비아저씨는 아내의 가게에서 경비를 본다.가끔 들를 때 마다 내가 겪지 못한 이야기를 해주시곤 하는데 이번에는 6.25 때 돌아가신 아버지 이야기를 해주셨다.그때 아저씨는 열 다섯 살이었다고 한다. 원래 고향이 양양이었던 아저씨 가족은 해방과 더불어 서울로 가다 홍천군 서석면에 정착을 했다고 한다. 아버지는 목상을 해서 각지역을 돌아다니며 바쁘게 살았는데 예전에 여관을 하던 집에는 그곳의 경찰과 관공서 사람들이 머무르곤 했다고 한다. 그러던 1950년 6.25가 발발하고 남하하던 북한군과 내면 뱃재고개에서 치열한 전투가 벌어질 때 국군의 식량을 조달했는데 국군의 후퇴와 함께 가족은 피난을 포기하고 산속으로 숨어들었다고 한다. 그때 지리산 토벌군으로 갔다 돌아오지 않는 경찰의 아내도 있었..
2008.06.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