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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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잎 클로버 만큼이나 보기 힘든 두 잎 사랑초
어릴 적 지천으로 널린 토끼풀을 보면 혹시 네 잎 클로버를 찾을 수 있지 않을까 풀밭을 헤매곤 했었다. 그렇지만 네 잎 클로버 찾기가 어디 그리 쉬운가. 행운이 아닌 요행을 바란 것은 아닌지 낙담하고 돌아섰던 기억들이 아직도 생생하다. 언제부터인가 아파트 배란다에 청사랑초가 자라기 시작했다. 자주색 사랑초는 돌아가신 어머니가 옹기 항아리에 심어서 선물해주셨던 것인데 벌써 수많은 사람에게 전해졌다. 선물해준 집을 방문했을 때 사랑초가 잘 자라고 있는 것을 보면 기분이 너무나 좋다. 며칠 전의 일이다. 화초에 물을 주려고 하다 청사랑초에서 이상한 녀석을 발견했다. 그동안 사랑초 잎이 세 개라는 것을 알고 있었고 늘 세 잎만 봐왔었는데 두 잎을 가진 사랑초가 눈에 띘다. 엄밀하 말하면 괭이밥이라는 청사랑초에 ..
2012.05.24 -
돌아가신 어머니 서랍 속 35만원 알고 봤더니....
갑자기 어머니 돌아가신지 3년이 넘었다. 해마다 겨울방학 때면 겨울 바다가 보고 싶다며 둘째 아들인 내게와 머물던 것과 늦게 종교에 귀의해 열심히 성당에 다니던 생각이 새롭다. 해가 바뀌고 나이가 들어갈수록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이 가슴을 저미게 하는데 지금도 가장 가슴 아픈 기억이 하나 있다. 돌아가신 후 유품을 정리하다 어머니의 옷장 속에 깊숙히 박혀 있던 현금 35만원 때문인데 그것은 그해 추석 때 자식들이 드린 용돈 중에 일부였다. 돌아가시기 전까지 평생 경제권을 쥐어 보지 못한 어머니..... 농사일과 옹기를 굽는 가마터 일을 병행하시던 아버지는 겨울이면 어머니와 함께 먼곳으로 항아리를 팔러 가시곤 했다. 팍팍한 살림살이를 헤쳐나가기 모든 경제권은 아버지가 쥐고 계셨고 어머니는 그것을 당연하게 받..
2010.02.10 -
고향에 갔더니 탱글탱글한 앵두가 주렁주렁..
어제는 현충일이었습니다. 모처럼 고향에 가기로 약속했었는데 갑자기 또 일이 생겼네요. 오전 내내 부랴부랴 일을 마치고 양양의 한계령을 넘어 고향으로 향했습니다. 어쩌면 모교에서 마지막 동문체육대회가 될지도 모른다며 꼭 참석하라는 회장의 부탁으로 늦더라도 꼭 참석하마 했으니 마음이 무척이나 조급해졌습니다. 1954년 5월10일 개교이래 54회 졸업생을 배출했지만 올해는 졸업생이 12명이고 신입생은 5명 밖에 되지 않는 초미니학교로 전락했습니다. 교통이 편리해지면서 읍에 있는 중학교로 진학을 하다보니 시골 면소재지에 있는 학교는 점점 수가 줄어 폐교될 위기에 처했다고 합니다.참 딱하지만 뾰족한 대안이 없다는 것도 동문들의 한결같은 고민이었습니다. 학교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체육대회가 끝나고 장기자랑과 경품추..
2009.06.07 -
담 하나 사이 처갓집을 둔 형님이 행복한 이유
이번 어버이날에 모처럼 삼형제가 모였습니다. 중국에 있는 막내만 빼고 모두 모였는데 정작 어버이날은 일 때문에 찾아뵙지 못하고 다음날 아버지를 찾아 뵈었습니다. 어머니 돌아가시고 혼자되신 아버지는 외로움 때문에 무척 많이 야위셨고 연로해서 농사일 짓기 벅차 늘 형님 혼자 새벽에 나가 농사일을 하고 출근하곤 합니다. 물론 가끔 짬을 내 나와 동생들이 농사일을 거들고는 있지만 멀리 있는 관계로 큰 도움이 되지 못합니다. 이번 어버이날 같은 경우도 건설사 현장소장으로 있는 동생은 일 때문에 오지 못하고 나 역시도 대학에 다니는 아들이 갑자기 발목이 부러지는 사고를 당해 경기도에 있는 병원에 가게 되었습니다. 아버지와 형님은 어버이날 다음날 아침에 고추를 심기로 해놓았는데 갑자기 일이 꼬인 것에 적지 않이 실망..
2009.05.10 -
돌아가신 어머니가 담근 마지막 돌배술을 보니....
요즘은 부쩍 고향에 자주 가게 됩니다. 2년전에 갑자기 어머니 돌아가시고 무척 외로움을 타시는 팔순 아버지를 찾아뵙고 농사일과 말벗을 해드리기 위해서 한 달에 두세번 다녀오곤 합니다. 맞벌이 하는 형님 내외가 출근을 하면 경로당에 가시는 일을 빼놓고는 늘 집에 혼자 계시는 팔순 아버지......적막강산의 빈집에서 아버지는 늘 TV를 켜 놓으시곤 합니다. 외로움을 달래기 위한 방편인데 볼 때 마다 마음이 미어집니다. 지난 주 토요일에도 고향에 갔을 때의 일입니다. 아버지와 함께 동네 주변을 드라이브하고 점심 무렵에 꿩 막국수로 점심을 먹은 후 경로당에 모셔다 드리고 집에서 이것저것 정리를 하다 문득 돌아가신 어머니의 손때 묻은 물건을 발견했습니다. 어머니의 손때가 고스란히 남아있는 화로.....이곳에 새마..
2009.04.20 -
아내가 낡은 재봉틀을 버리지 않는 이유....
아내에게는 연도를 짐작할 수 없는 낡은 재봉틀이 하나있다. 70년은 족히 넘었을 이 재봉틀은 어머니가 할머니에게서 물려 받았던 것을 아내가 다시 물려 받았으니 3대를 물려 받은 유품인 셈이다. 할머니는 어머니가 시집오기 전에 군부대 옆에서 장사를 하실 때 재봉틀을 샀다고 한다. 이불이며 옷이며 동네 사람들이 맡긴 일감을 수선해주고 옷이 터진 군인들 군복을 꿰매주시기도 하셨는데 어머니가 시집오면서 어머니에게 물려주셨다고 한다.1960년대 초반 비포장도로 옆 초가집에 살 때 어머니는 할머니가 하시던 것처럼 재봉틀로 마을 사람들 이불이며 옷들을 수선해주시곤 하셨다. 낮에는 농사일로 저녁에는 할머니와 아버지 그리고 아들 사형제의 옷을 만드느라 밤늦도록 호롱불 아래 재봉틀을 돌리곤 하셨다. 당시 마을에는 보따리상..
2009.03.22 -
2년 지난 냉동만두를 아껴 먹는 이유
어머니가 생전에 직접 만들어 주신 만두를 생각하면 가슴이 아리다. 그동안 냉동실에 넣어두고 라면을 끓여 먹을 때 한 개씩 넣어 먹었는데 이제 달랑 네 개 밖에 남지 않았다. 이 만두가 냉동실로 들어간지가 꼬박 2년이 넘었다. 2006년 설날 때 어머니가 바리바리 싸주셨던 음식중에 유일하게 남은 것이기도 하다. 그동안 늘 고추가루며 들기름 김치 마늘 파 대부분의 농산물을 직접 보내주셨는데 2007년 12월 갑자기 어머니가 심근경색으로 돌아가셨다. 늘 겨울 방학 때면 속초에 와서 20여일간 머무시곤 했는데 우리집에 오시기 며칠 전에 갑자기 변을 당하셨다. 너무나 갑자기 당한 일이라 임종도 지키지 못해 지금도 마음 한구석에는 죄스런 마음이 남아있다. 맞벌이를 하면 집안 일을 찬찬히 챙기지 못한다며 택배로 보내..
2009.03.06 -
아내가 어머니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가끔 아내가 어머니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요즘 들어 불쑥 불쑥 느끼는 생각이다. 두 아들이 벌써 다 커서 하나는 대학입시를 눈 앞에 두고 또 다른 녀석은 고등학교 1학년인데 두 녀석의 뒷바라지에 열성적인 아내를 볼 때 마다 예전에 어머니를 보는 듯하다. 아들만 사형제였던 어머니는 평생 아들들 뒤치닥거리만하다 지난해 갑자기 심근경색으로 돌아가셨다. 아마 이맘 때쯤이면 농사일 모두 끝나고 겨울방학을 이용해서 아들집을 돌며 한해의 고단함을 씻곤 하셨는데 겨울이 되니 어머니 생각이 간절하다. 어머니는 어릴 적 우리 사형제가 아버지에게 떼를 쓰다 혼이나면 마음 편히 기댈 수 있는 유일한 피난처였고 아버지가 사주지 않던 고무신이나 운동화도 몰래 사주시곤했다. 봄이면 산에 고사리와 고비와 취나물을 뜯어 이십여리 떨..
2008.11.27 -
시어머니 손맛 그리워 하는 아내
어머니 돌아가신 지 10개월이 다 되어간다. 평소에 류머티스 관절염을 제외하고는 별반 아픈 곳이 없으셨던 어머니가 갑자기 심근경색으로 돌아가신 후 많은 변화가 있었다. 늘 부모님 모시는 것에 불만이 많았던 형수님, 속내와는 다르게 늘 어머니께 냉랭하셨던 아버지....맞벌이 한다고 늘 어머니가 보내주신 음식으로 생활하던 아내....모두가 큰 충격을 받았었고 그 후 처음 맞은 추석에 어머니에 대한 속내를 풀어 놓았다.. 형수님은 늘 어머니가 챙겨주시던 음식을 손수해보고 나서야 시어머니의 빈자리가 얼마나 큰가 깨닫고 후회한다 했고 아버지는 어머니 돌아가신 후 10년은 더 늙어 보이셨다. 늘 아버지의 잔소리를 받아주시던 어머니가 안계시니 말수도 줄고 부쩍 외로움을 많이 타셨다. 아내 역시도 처음에는 내색하지 않..
2008.10.08 -
천상의 어머니께 보내는 농사일기
어머니 당신이 떠나신지 꼭 6개월이 지났습니다.어머니가 가시고 난 후 한동안 곡기를 끊으셨던 아버지도 이젠 밭일에 많이 익숙해지셨습니다.힘든 일은 큰 형님이 다 하시고 팔순 아버지가 하실 수 있는 일들은 대부분 예전에 어머니가 하시던 일이지만 팔순 아버지에게는 힘에 부치는 듯합니다.틈나는대로 저도 고향으로 가서 아버지를 도와드리려 하는데 시간이 여의치 않아 자주 가지는 못하다 이번 주 억지로 시간을 내서 고향에 다녀왔습니다. 어머니 없이 처음 짓는 농사는 걱정 안하셔도 될 것 같습니다.적당히 비도 내려주었고 병해충도 없이 너무도 잘 자라고 있습니다.어머니가 늘 심던 그대로 올해도 아버지는 고추와 옥수수 감자....그리고 조금씩 양배추와 상추 치커리 ....그리고 가지와 토마토를 심었습니다. 당신이 즐겨 ..
2008.06.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