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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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바이트하다 난생 처음 장발단속 당해 보니....
30년전 아르바이트를 추억하다... 벌써 30년이 훌쩍 넘은 이야기다. 대학 입학을 앞둔 79년초 친구들과 함께 아르바이트를 하기 위해 난생 처음 서울에 갔었다. 중학교 수학여행 때 그냥 스쳐간 적은 있었지만 서울 구석구석을 구경한 것은 이때가 처음이었는데 그때 웃지 못할 다양한 경험을 많이 했다. 처음 강남에 살던 친구 누나 집 쪽방에 기거하면서 각자 아르바이트 일자리를 찾기 시작했는데 사흘 동안 만만한 일자리를 찾지 못해 결국 선택한 것이 생활용품을 파는 일이었다. 그중 가장 대표적인 물품이 수세미와 비누 보리차 좀약 신발 깔창등이었는데 커다란 가방에 나누어 담고 집집마다 찾아 다니며 파는 일이었다. 대부분 가격이 오백원에서 천원 비싸야 이천원이었고 그중 판 가격의 40%가 우리 몫이었는데 첫날 친구..
2012.04.03 -
무전취식한 손님 때문에 경찰 불렀더니....
개업식 날 난동 부린 무전취식자 며칠 전 사무실 근처에 숯불갈비 음식점이 개업을 했다며 떡을 가져왔습니다. 떡본 김에 제사 지낸다고 점심 때 그곳에서 식사 하자는 형님 말씀에 음식점으로 향했는데 오랬동안 비어있던 상가가 깔끔하게 바뀐 음식점 입구에는 축하 화환이 가득했습니다. 그곳에서 양념 돼지갈비와 된장 찌개로 점심을 먹고 나오는데 술에 취한 사람이 개업식에 들어온 화환과 화초를 발로 차 넘어뜨리며 행패를 부리고 있었습니다. 주인장 이야기를 들어보니 개업날 음식을 시켜먹고 그냥 나가려고 해 돈을 내라고 하니 다짜고짜 개업식 화초와 화환을 넘어뜨리며 소란을 피웠다고 합니다. 놀라서 경찰을 부르겠다고 하니 경찰이 올 때 까지 다 부숴버리겠다며 30여개의 화환을 모두 깨고 넘어뜨렸다고 합니다. 결국 무전취식..
2012.03.03 -
찜질방에서 혼나던 손님 왜 그런가 했더니....
소란스런 찜질방 왜? 2주전 아들의 복학 때문에 서울에 다녀왔습니다. 그런데 대학생 전세 임대주택을 구하기 위해 아침 일찍 출발했지만 결국 방을 구하지 못해 하루를 더 묶어야 했습니다. 다음 날 다른 원룸을 보여주겠다는 부동산의 말을 믿고 아들과 함께 찜질방에서 하루를 묶기로 했습니다. 찜질방은 평일이라 사람이 많지 않았는데 목욕탕에서 몸을 씻고 찜질방으로 들어서려는데 갑자기 소란스런 소리가 들렸습니다. 한 사람이 찜질방 관리인에게 혼이 나고 있었는데 아무 대꾸도 없이 가만히 서있는 것을 보니 뭔가 단단히 잘못한 일이 있는 것 같았습니다. 목욕 시간이 유난히 길었던 손님 알고 보니... 마치 훈계를 하듯 손님을 다그치는 관리인의 말을 들을 요약하자면 평소에 이곳에 자주 오는 손님이었는데 목욕비만 내고 늘..
2012.02.27 -
무개념 주차 때문에 경찰이 출동했습니다.
어제 점심 때 일입니다. 설날이 이틀 앞으로 다가온 주말이라 관광지에는 벌써 차들이 붐비기 시작했는데 사무실에 함께 있는 형님이 고향을 가기 전 조촐한 종무식을 하자고 생선조림을 먹으러 가자고 하더군요. 잠시 후 시청 앞 부자식당에서 생선조림에 반주로 소주를 마시고 걸어서 사무실로 가고 있을 때였습니다. 생선구이 골목으로 유명한 갯배 부근으로 내려가는데 차들이 꼼짝을 못하고 있더군요. kbs 리얼다큐 1박2일로 유명해진 갯배 부근은 평소에도 생선구이를 먹으러 오는 사람들로 늘 붐비는 곳입니다. 주말이면 주차할 곳이 없어 애를 먹곤 하는데 어제도 그래서 그려러니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앞으로 가 보니 꽉 막힌 차량 사이로 경찰차가 보이더군요. 사고가 난줄 알고 급히 그곳으로 가 보았습니다. 차 한 대를 두고..
2012.01.22 -
남편의 왕따가 고맙다는 아내 왜?
몇년전 친구와 사무실을 함께 사용한 적이 있었다. 당시 새로운 사업을 시작하려다 사기를 당한 터라 물질적으로 큰 어려움을 겪는 것을 보고 친구가 먼저 제의를 했다. 사무실을 함께 사용하자고 했지만 실질적으로 모든 운영비는 친구가 대고 난 더부살이를 했는데 그 친구 덕분에 지금은 독립을 했고 따로 사무실로 차렸다. 지금도 그 친구와 자주 만나는데 만날 때 마다 꼭 들리는 곳이 있다. 바로 예전 사무실이 있던 인근의 당구장인데 당구대가 4대 뿐인 아주 작은 당구장이었다. 그곳에 오는 손님들 대부분 마을 선후배들이라 늘 왁자지껄했는데 당구장 한켠에 있는 작은 방에는 훌라나 포커를 하는 사람들 때문에 늘 담배연기가 자욱했다. 처음에는 동네 청년들이 재미삼아 하는 것이려니 하고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었는데 점점 판..
2010.10.06 -
아는 경찰에게 개업식 화분을 부탁했더니...
며칠 전의 일입니다. 사무실에서 같이 근무하는 형님이 친한 지인의 호프집 개업식을 축하해주기 위해 서울에 다녀왔습니다. 그런데 다녀온 다음날 점심 식사를 하는데 황당한 이야기를 해주었습니다. 개업식에 참석할 수 없을 것 같아 마침 개업하는 분의 먼 친척되는 분에게 개업식 선물로 화분을 대신 전해줄 것을 부탁했다고 합니다. 그분은 그 지역에서 오랜동안 경찰로 근무하는데다 개업하는 분과 잘 아는 사이라서 믿고 화분값 10만원을 건넸다고 합니다. 그런데 개업식에 참석하지 못할 것 같다고 미리 전화를 드렸음에도 불구하고 늦더라도 꼭 참석해달라는 간곡한 부탁 때문에 개업식날 오후에 부랴부랴 서울로 향했다고 합니다. 지역에서 불우한 이웃을 돕는 일에 앞장서고 또 봉사를 많이 해서 그런지 오후 늦게 도착했는데도 많은..
2010.05.20 -
사고나면 경찰보다 견인차가 빨리오는 이유.....
누구나 운전을 하는 사람은 사고가 날까 노심초사하고 또 운전을 하다 많은 사고를 목격하기도 합니다. 그때마다 늘 궁금한 것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어떻게 견인차와 구급차가 경찰 보다 빨리 현장에 도착할까 하는 점이었습니다. 예전에는 경찰의 무전기를 도청해서 사고가 난 지역으로 달려가곤 했다는데 그것이 범법행위라는 것이 알려지면서 도청이 사라졌는데 그런데도 불구하고 여전히 견인차는 사고가 난 지역에 제일 먼저 도착하곤 합니다. 요즘 함께 수업을 받는 아주머니는 근래에 황당한 경험을 했다고 합니다.타이어대리점에서 스노우타이어를 교체하고 집으로 돌아가는데 얼마가지 않아 갑자기 핸들이 심하게 떨렸다고 합니다. 바퀴를 금세 갈아 일시적인 현상이겠지 하고 계속 운전을 했는데 점점 소음이 심해지더니 갑자기 오른쪽으로 ..
2009.03.19 -
교통사고시 경찰보다 견인차가 빨리오는 이유는?
월요일 오후 2시경 공장에서 사무실 정리를 하고 바닥청소를 하고 늦은 점심을 먹었다. 작은 일이었지만 공구가 마땅치 않아 시간이 많이 걸렸다. 허기진 배를 채우고 아내와 함께 서울을 가려고 속초 방향으로 나섰다. 농협에서 잠시 볼 일을 보고 나오는데 갑자기 꽝하는 소리가 났다. 도로에서 사고가 났다. 승용차가 좌회전을 하려다 직진하는 겔로퍼와 접촉사고 났다. 자가용의 앞은 심하게 구겨졌지만 다행히 사람은 다치지 않았다. 그런데 사고가 난 후 얼마되지 않았는데 견인차가 경광등을 켜고 달려왔다. 뒤이어 또 한 대가 그리고 다시 한 대....경찰이 도착하기도 전에 6대의 견인차가 금새 사고현장에 도착했다. 예전에 교통사고가 난 후 견인차가 빨리 도착하는 이유중 하나는 경찰서에 교통사고 신고를 할 때 무전기의 ..
2008.10.23 -
연좌제로 평생 고통받은 아저씨의 눈물
아내의 가게에서 경비일을 맡고 계신 고향 아저씨는 나이가 73세에도 젊은이 못지 않은 열정이 있다. 지금은 나이들어 심심하다며 경비일을 맡고 있지만 젊은 시절에는 위문공연단을 따라 월남도 갔다올 정도로 노래실력을 인정받기도 했다고 한다. 그런 아저씨에게 평생 가장 고통스러운 것은 연좌제인데.....억울하게 당한 아버지의 죽음과 모함으로 평생 취직도 못하고 감시당하고 산 것을 생각하면 가슴이 답답하다고 한다. 6.25가 났을 때 15세였던 아저씨는 인민군에게 가족이 모두 붙잡혔다가 운좋게 도망쳐 나왔는데 그때 마침 서울에 있던 누님이 그 전쟁통에 가족을 찾아 고향을 내려왔다고 한다. 밀고 밀리는 상황이 계속되면서 인민군이 왔다가 가고 나면 경찰이 와서 치안을 담당하곤 했는데 그 전쟁통에 파출소에 온 경찰은..
2008.06.25 -
6.25 경찰을 위한 위안부가 있었다?
올해 73세 되신 경비아저씨는 아내의 가게에서 경비를 본다.가끔 들를 때 마다 내가 겪지 못한 이야기를 해주시곤 하는데 이번에는 6.25 때 돌아가신 아버지 이야기를 해주셨다.그때 아저씨는 열 다섯 살이었다고 한다. 원래 고향이 양양이었던 아저씨 가족은 해방과 더불어 서울로 가다 홍천군 서석면에 정착을 했다고 한다. 아버지는 목상을 해서 각지역을 돌아다니며 바쁘게 살았는데 예전에 여관을 하던 집에는 그곳의 경찰과 관공서 사람들이 머무르곤 했다고 한다. 그러던 1950년 6.25가 발발하고 남하하던 북한군과 내면 뱃재고개에서 치열한 전투가 벌어질 때 국군의 식량을 조달했는데 국군의 후퇴와 함께 가족은 피난을 포기하고 산속으로 숨어들었다고 한다. 그때 지리산 토벌군으로 갔다 돌아오지 않는 경찰의 아내도 있었..
2008.06.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