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가오는 추석 명절을 앞두고 벌초를 하기 위해 고향을 찾았다. 그런데 가는 곳마다 눈길을 사로잡은 것은 가을 들녘의 풍요로움이 아니었다. 도로변과 들판, 산자락은 물론 강변까지 온통 빽빽하게 덮어버린 외래종 식물 ‘가시박’의 번식이었다.

불과 수년 전만 해도 농촌 들녘의 주범은 칡넝쿨이었는데, 이제는 그 자리를 가시박이 장악한 것처럼 보였다. 산림 정비사업단 관리일을 맡고 있는 형님은 칡넝쿨보다 더 제거하기 힘든 것이 가시박이라며 제거하는데 너무 많은 시간이 걸리고 제거해도 번식력이 왕성해 해마다 가장 손이 많이 가는 것이 가시박이라며 손사레를 쳤다.
손가락처럼 뻗어 나온 촉수가 닿는 곳이라면 인근 수목과 풀밭을 가리지 않고 기어올라 생태계를 집어삼키는 가시박. 실제로 강변에 조성된 산수유나무 단지는 가시박 줄기에 완전히 휩싸여 잎사귀조차 보이지 않을 정도로 고사 위기에 처해 있었다. 토종 생태계의 설 자리가 점점 좁아지는 지금, 외래종 유입 원천 차단과 초기 방제에 대한 경각심이 시급해보였다.

북미가 원산지인 가시박(Sicyos angulatus)은 박과의 한해살이 덩굴식물이다. 국내에는 1980년대 후반 대목(접붙이기용 뿌리 나무)으로 쓰기 위해 수입되었거나, 수입 곡물에 씨앗이 혼합되어 들어온 것으로 추정된다.
가시박은 번식력과 생장 속도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줄기 하나가 하루에 30cm 이상 자라며, 전체 길이가 4~8m에 달한다. 한 그루당 수천에서 수만 개의 씨앗을 맺는데, 이 씨앗은 물에 떠내려가며 강변을 따라 순식간에 확산된다. 그 심각성을 인정한 환경부는 지난 2009년 가시박을 '생태계교란 생물'로 지정했다.
가시박의 가장 큰 문제는 주변 식물의 생존을 불가능하게 만든다는 점이다. 가시박은 특유의 덩굴손으로 인근 수목과 풀을 감아 오르며 순식간에 넓은 잎으로 햇빛을 완전히 차단한다.
햇빛을 받지 못한 아래쪽의 토종 식물과 나무는 광합성을 하지 못해 말라 죽게 된다. 이른바 ‘식물 窒息(질식) 사폐’ 현상이다. 마을 주민들이 정성껏 심어놓은 산수유나무나 보호수, 유실수마저 가시박의 거대 그물망에 걸려 잎조차 피우지 못하고 고사하는 비극이 전국 곳곳에서 반복되고 있다.

현재 환경부와 각 지자체는 매년 예산을 투입해 가시박 제거 사업을 펼치고 있다. 그러나 현장에서는 "이미 손을 쓰기엔 늦었다"는 개탄이 나온다.
가시박 제거 작업이 대부분 덩굴이 무성해진 여름철 이후나 열매가 맺히는 가을철에 집중되는 탓이다. 이 시기에는 줄기를 자르거나 뿌리를 뽑는 과정에서 오히려 씨앗이 주변으로 흩어져 이듬해 번식을 부추기는 부작용이 발생하기도 한다. 또한 예산과 인력 부족으로 인해 주요 도로변이나 관광지 중심으로만 작업이 이루어지고, 산간 오지나 사유지 등 방제 사각지대는 방치되고 있는 실정이다.
전문가들은 토종 생물종을 지키기 위해서는 외래종의 유입을 사전에 차단하는 것이 최선이며, 이미 유입된 경우에는 발생 초기 대응이 승패를 갈라놓는다고 입을 모은다.

첫째, 제거 시기의 전환이 절실하다. 가시박은 씨앗이 발아하는 5~6월, 어린 모종 단계에서 뿌리째 뽑아내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다. 줄기가 자라기 전 유충 및 싹 단계에서 1차 제거를 완료하고, 꽃이 피기 전인 7월에 2차 작업을 실시해야 씨앗 형성 자체를 막을 수 있다.
둘째, 지속적인 '씨앗 은행(Seed Bank)' 관리다. 가시박 씨앗은 땅속에서 수년간 생존할 수 있으므로, 한번 발생한 지역은 최소 3~5년간 지속해서 예찰하고 관리해야 한다.
셋째, 민관 협력과 사각지대 해소다. 지자체의 한정된 인력만으로는 한계가 있는 만큼, 지역 주민과 공공근로 인력을 활용해 마을 단위의 자율 방제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 아울러 수입 물동량이 많은 항만이나 곡물 수입 창고 주변에 대한 사전 검역 및 환경 감시를 강화하여 새로운 외래종의 유입을 원천 봉쇄해야 한다.
토종 생태계가 파괴된 후 복구하는 데는 유입 차단에 드는 비용의 수십, 수백 배가 소요된다. 들녘을 덮친 가시박의 녹색 침습은 우리에게 생태계 안보의 중요성을 재차 경고하고 있다. 더 늦기 전에 정교하고 근본적인 방제 전략이 시급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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