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양식 독서(2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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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문열 작가연보
이문열(李文烈, 1948- ) 1948년 서울 생, 1950년 고향인 경북 영양군 석보면에 이주. 1953년 안동으로 이사. 57년 서울로 이사, 59년 밀양으로 이사. 1961년 밀양 중학 입학했으나 그만두고 64년 검정고시로 안동고교 입학. 1965년 안동고교 그만두고 부산으로 이사, 이후 3년간 떠돌이 생활. 1968년 대입 검정고시를 쳐 서울대 사대 입학. 70년 자퇴 후 사법고시 준비. 1973년 76년 군생활. 77년 대구매일 신춘문예에 단편 「나자레를 아십니까」가 입선되고, 1978년 동아일보 신춘에 중편 「새화곡」이 당선되어 등단했다. 주요 작품으로는 「들소」(1979), 「사라진 것들을 위하여」(1979), 「달팽의 외출」(1980), 「이 황량한 역에서」(1980), 「금시조」(1981..
2008.02.26 -
구운몽 줄거리 감상하기
내용은 당(唐)나라 때 천축(天竺)으로부터 육관 대사(六觀大師)라는 고승(高僧)이 중국에 와서 큰 절을 세우고 제자를 모아 불도(佛道)를 강론(講論)한다. 그 중에서 가장 뛰어난 제자가 성진(性眞)이었다. 어느날 성진은 대사의 심부름으로 용궁에 가게 되었는데, 용왕의 융숭한 대접에 술을 몇 잔 마시고 돌아온다. 한편 선녀 위진군(魏眞君)은 팔선녀(八仙女)를 대사에게 보내 약간의 보물을 선사한다. 길 중간에서 팔선녀와 성진이 만나게 되어 서로 희롱하다 돌아온다. 절에 돌아온 성진은 선녀들을 그리워하며 속세의 부귀 영화만 생각한다. 끝내 그는 죄를 얻어 지옥에 떨어지고 다시 인간 세상에 환생하여 양소유(楊少遊)가 된다. 한편 팔선녀도 같은 죄로 지옥에 떨어졌다가 각각 다시 세상에 환생한다. 양소유는 차례로 ..
2008.02.26 -
구운몽의 작가 김만중의 작가연보
김만중(金萬重, 1637∼1692)은 조선 후기의 문신이자 소설가로 본관은 광산(光山), 아명은 선생(船生), 자는 중숙(重叔), 호는 서포(西浦), 시호(諡號)는 문효(文孝)이다. 조선조 예학의 대가인 김장생의 증손이고, 충렬공 익겸의 유복자이며, 숙종의 장인인 광성부원군 만기의 아우로서, 숙종대왕의 초비(初妃)인 인경왕후의 숙부이다. 그의 어머니 해평 윤씨는 인조의 장인인 해남부원군 윤두수의 4대손이고 영의정을 지낸 문익공 방(昉)의 증손녀이며, 이조참판 지(遲)의 따님이다. 서포의 어머니는 흔히 맹자의 어머니와 비유되곤 한다. 자식교육에 대한 어머니의 헌신적인 노력의 상징이라 할 수 있다. 조선후기의 문신, 소설가. 호는 서포. 조선조 예학의 대가인 김장생의 증손이요, 병자호란때 순절한 김익겸의 유..
2008.02.26 -
검은 고양이 /에드거 앨런 포우 줄거리 읽기
나와 아내는 애완 동물들을 길렀고, 그 중에서 나는 플루토라고 이름 붙인 고양이를 가장 귀여워했다. 몇 년이 지나면서 나는 알콜 중독이 되어갔고 동물들을 학대하고 아내에게도 폭언을 퍼부었다. 어느 날 밤, 나는 술을 마시고 고양이가 나를 피하는 느낌을 받자 자개 칼로 고양이의 한쪽 눈을 도려낸다. 그 뒤에도 여전히 나는 술에 빠져 살았고 고양이를 나무에 목매달았다. 그날 밤, 집에 화재가 났고 누군가에게 불이 났음을 알리기 위해 목매달린 고양이를 내 방을 향해 던졌다. 여러 달 동안 나는 그 고양이를 대신할 만한 놈을 찾았고 어느 날 밤, 술집에서 가슴에 흰 털이 있는 검은 고양이를 발견한다. 나를 따라온 고양이는 곧 나와 아내에게 귀염둥이가 되었다. 고양이를 데려온 다음 날 그 녀석도 플루토처럼 눈 하..
2008.02.26 -
에드거 앨런 포우 작가연보
에드거 앨런 포우(Edgar Allan Poe, 1809-1849) 미국의 시인이자 소설가이며 비평가로 1809년 보스턴에서 태어났다. 가난한 배우였던 아버지에게 버림받고 어머니마저 일찍 세상을 떠나자 숙부인 J. 앨런의 양자로 보내지지만 사이가 좋지 못했다. 14살 때 친구의 젊은 어머니를 열애해 훗날 유명한 서정시「헬렌에게」(1831)를 쓰게 되었다. 1826년 버지니아대학에 입학했으나, 노름과 방종한 생활로 많은 빚을 지고 양아버지의 노여움을 사서 퇴학당하기에 이른다. 그 뒤 보스턴에서 처녀시집「티무르, 기타 시집」(1827)을 익명으로 출판했으나 크게 주목받지는 못했다. 이어「알 아라프, 티무르 그리고 2류 시집」(1829),「포 시집」(1831) 등 두 권의 시집을 내지만 역시 인정받지 못했다...
2008.02.26 -
갈매기의 꿈/리처드 바크 본문읽기
갈매기의 꿈 - 리처드 바크 우리 모두의 마음 속에 깃들어 있는 갈매기 조나단에게 가장 높이 나는 갈매기가 가장 멀리 본다. 제 1 부 아침이었다. 새로 솟은 태양이 잔잔한 바다의 잔물결 위에 금빛으로 반짝이고 있었다. 해변으로부터 좀 떨어진 바다 위에서 고깃배 한 척이 물고기를 모으기 위해 밑밥을 물 속으로 던지고 있었고, 아침 먹이를 찾아 나온 갈매기 떼에게 전하는 (우두머리 갈매기의) 전달이 허공 중에 빛처럼 번쩍이자, 이윽고 수많은 갈매기들이 이리저리 날며 서로 다투면서 먹이 부스러기를 쪼아갔다. 바쁜 하루가 또다시 시작 된 것이다. 그러나 갈매기 조나단 리빙스턴은 고깃배와 해변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홀로 나와 외로이 비행 연습을 하고 있었다. 삼십미터 상공에서 그는 물갈퀴가 달린 두 발을 아래로..
2008.02.26 -
가난한 사람들 /도스토예프스키 본문읽기
가난한 사람들 표도르 도스토예프스키 4월 8일 더없이 소중한 나의 바르바라! 오늘 아침은 어쩌면 이렇게 멋있을까요? 창문을 열자 태양은 환히 빛나고, 새들은 지저귀고, 그야말로 모든 것이 싱싱하게 살아나고 있습니다. 저는 창 밖을 바라보며 당신의 모습을 떠올려봅니다. 바르바라, 기억나나요? 내가 당신에게 키스하던 때가? 그 때의 감정이 되살아나 지금 나는 아주 행복하답니다. 바르바라, 나는 이 방이 아주 마음에 듭니다. 참, 당신은 이 집의 구조가 어떻게 되어 있는지 모르겠군요? 우선 어두컴컴하고 불결한 긴 복도를 상상해 주십시오. 오른쪽은 창문 하나 없는 벽이고, 왼쪽에는 여관집처럼 셋방이 한 줄로 죽 늘어 서 있답니다. 난 부엌 한쪽에 칸막이를 하여 살고 있습니다. 혹 당신이 이상하게 생각할지도 모르..
2008.02.26 -
도스토예프스키 작가연보
도스토예프스키 (Fyodor Mikhailovich Dostoevskii) 1821년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퇴역한 군의관의 아들로 탄생. 15세 때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상트 페테르부르크 (St. Petersburg)로 보내져 그곳에서 학교를 다녔다. 공병학교로 진학하였으나 기술적인 학문을 좋아하지 않았던 그는 학교를 졸업할 무렵 소설가가 되기로 결심한다. 1844년 소설 번역으로 글쓰기를 시작한 그는, 1846년 가난한 청년과 소녀와의 사랑을 통해 빈민의 삶과 사회적 모순을 고발한 소설 『가난한 사람들』(Poor Fork)을 발표한다. 1848년 사회주의 이론을 연구하는 젊은 지식인들의 단체에 가입하여 활동하던 중 1849년 이 단체가 경찰에 적발되면서 감옥에 갇히고 총살형을 선고받지만, 총살되기 몇 ..
2008.02.26 -
현진건 작가연보
▶ 현진건(玄鎭健, 1900-1943, 빙허 憑虛) 경북 대구생(대구우체국장으로 아들로 출생) 일본 도쿄 독일어 전수 학원 졸업. 중국상해 호강대학에 다니다 귀국, 서울에 정착. ① 근대 문학 형성기의 선구자 역할 ② 김동인과 함께 근대 단편 소설을 개척 ③ 염상섭과 함께 사실주의 문학 개척 ④ 소설 문학에서 기교의 가치를 보여준 대표 작가 1)제 1기 : 체험소설(주로 1인칭) 1920년 에 단편 발표 후 문단 등단 1921년 등으로 문명 1922년 [백조(白潮)] 동인 등 1923년 2)제 2기 : 전형적인 사실주의적 경향 1924년 , 1925년 1926년 1927년 등 단편 발표, 염상섭과 함께 사실주의적 단편문학 개척 선구자적 업적 3)제 3기 : 그 이후 활동 미미 1936년 일장기 말소사건으..
2008.02.26 -
현진건의 '고향' 감상하기
고향 현진건 대구에서 서울로 올라오는 차중에서 생긴 일이다. 나는 나와 마주 앉은 그를 매우 흥미있게 바라보고 또 바라보았다. 두루마기 격으로 기모노를 둘렀고, 그 안에서 옥양목 저고리가 내어 보이며 아랫도리엔 중국식 바지를 입었다. 그것은 그네들이 흔히 입는 유지 모양으로 번질번질한 암갈색 피륙으로 지은 것이었다. 그리고 발은 감발을 하였는데 짚신을 신었고, 고무가리로 깎은 머리엔 모자도 쓰지 않았다.우연히 이따금 기묘한 모임을 꾸민 것이다. 우리가 자리를 잡은 찻간에는 공교롭게 세 나라 사람이 다 모였으니, 내 옆에는 중국 사람이 기대었다. 그의 옆에는 일본 사람이 앉아 있었다. 그는 동양 삼국옷을 한몸에 감은 보람이 있어 일본말도 곧잘 철철대이거니와 중국말에도 그리 서툴지 않은 모양이었다. "고꼬마..
2008.02.26